여행을 계획한 그들은 졸업식 바로 다음날, 즉 입춘이라지만 다시 한번 한파가 몰려오는 2월 4일에 1박2일로 스키장에 가기로 한다. 다들 어린시절엔 스키나 보드를 타봤다해도 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스키장과는 멀리서 살아왔기에 렌트도 해야한다며 셔틀버스를 오전으로 잡았다. 사실 새벽과 오전 두 차밖에 없다며 새벽 시간을 보고 식겁한 각별이 난 절대 저시간에 일어날수 없다며 오전차로 끊었다.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에서 다같이 비몽사몽한 채로 모였다. 각별과 가까이 사는 수현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각별까지 깨우느라 생고생 했다며 투덜거렸고 각별은 눈도 제대로 못뜬채로 아직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그건 비단 각별 뿐이 아니라 공룡과 덕개도 마찬가지 였지만. 셔틀버스를 타고 9시에 출발하자 마자 모두가 곯아떨어졌다. 전날 졸업식이라고 학교에서나 끝나고 나서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니며 체력을 허비한 탓에 다음날까지 그 피곤이 몰려왔기 때문에. 눈 감자마자 1초만에 강원도로 텔레포트 된 기분이라고 각별이 서술했다. 도착해서 예쁜 콘도에 감탄하다가 숙소에 도착해서는 다들 진이 쏙 빠져서 옷과 짐을 대충 던져두고 침대고 뭐고 잡히는방 아무데나 들어가서 이불도 안깔고 곯아떨어졌다. 아마 이불도 제대로 안깔고 자지 않았을까. 그들중 제대로된 정신을 챙기고 있는 이가 없었기에 아침은 잠이라는 마법으로 통채로 사라졌다. 해질녘 5시쯤 잠뜰이 맨먼저 일어났다. 그는 꽤나 정리를 잘하는 타입이라 일어나자마자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널브러져 있는 겉옷들을 걸어두고 호텔서비스에 전화해서 모자란 수건을 더 갖다달라하고 짐풀고 이따 야간 타려고 보드복 차려두고 사람들을 빼액 소리질러서 깨웠다. 물론 그정도론 안돼서 손수 호텔안 모든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군대 기상나팔을 재생해줬다. 효과는 굉장했다. 다같이 비몽사몽 일어나서 대충 챙겨입은 다음에 편의점가서 대충 간식먹고(그들이 모두,놀랍게도,아직도 잠결에 있었기에 모든게 속전속결 대충으로 진행되었다.) 3일권을 끊었는데, 덕개(놀랍게도 총무)가 주간권과 야간권이 아닌 그냥 풀으로 끊었단걸 깨닫고(덕개,20, 스키장 처음 와봄)당장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보드복 스키복으로 갈아입는다. 그 사이에 모든 인원이 덕개를 갈군것은 안봐도 비디오. 그들은 여천히 덕개를 갈구며 보드랑 스키를 렌트하러 걸음을 옮긴다. 우여곡절 끝에 렌트를 했지만,
-잠깐만, 영환아 너... 스키장 처음와봤다며. 보드..탄다고?
라는, 미래를 본듯한 각별의 잘 없는 걱정 내지 충고에도 영환은 꿋꿋이 모른 체 하며 보드를 렌트했다. 그런 영환에게 수현이 딱하다는 시선을 보낸다. 아무리 2일권이라 해도 그들에겐 사실 24시간도 보드를 못타는데(중간 설질 가는시간과 점심,저녁 시간 제외) 하루정도 배우면 그나마 즐길수나 있는 스키에 비해 즐기려면 일주일 정도는 연습해야 하는 보드는 브레이크만 배울게 뻔하다며 다들 영환을 말린다.
-다 조용히해! 보드가 간지나.
-너 그러다 허벅지 좆창나야 정신차리지...
중얼거리는 각별의 말은 이번에도 무시. 덧붙여서 중얼거리는 말은 조금 더 오싹했다.
-나 어릴때 보드배웠을때는 브레이크 고수되는데에만 2년 걸렸어.
응~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영환의 얼굴은 이미 후회로 번져있었다. 아, 괜히했다. 뒤늦게 영환이 후회하는걸 본 수현이 웃으며 자, 이제 렌트도 다했으니 가볼까~!! 하며 그자리를 재빨리 뜬다. 뒤에서 덕개의 고성이 들려오지만 이럴때만 협동이 잘되는 그들은 영환의 말이 안들린다는듯 활짝 웃으며 발랄한 걸음으로 스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각별의 그 말은 씨가 되었다. 영환이 아무리 스케이트 보드로 체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더래도(소문이라 과장의 요소가 많다.) 스케이트 보드와 스노우 보드랑의 차이의 간극을 이겨낼순 없었다. 게다가 오후 설질이 늘 그렇듯, 변방의 보드 고수라 불리었던 각별과 잠뜰 에게도 버거운, 피겨스케이팅을 해도 될 만한 빙판 이었는지라, 보드를 처음 타보는 영환이 유튜브로 배운 어색한 보드 자세를 하며 타는 보드가 1트만에 고꾸라지는건 지능이 아무리 딸려도 이미 예상 되었던 사실이었다. 날 세워서 타면 버거운 보드와는 별개로, 카빙이 기본 패시브인 스키는 빙상에서 날세워서 타는게 진미지~! 라고 외치며 수현과 공룡, 라더는 이미 저만치, 가뜩이나 설빙 위에 뿌려진 얼음마냥 뿌려진 눈들을 이리저리 스키로 밀어 뿌려대며 눈발만을 남겨둔채, 사라졌다. 각별은 주저앉아(보드는 서서 오래 기다리는게 불가능하다) 영환의 팔을 파닥거리며 왁왁 소리질러대는 생쇼를 보고있다가 이마를 짚으며(개콘이 왜 망했는지 알겠다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보드와 보드복이 젖는 기분이라 하고는 카빙솜씨를 뽐내며 사라졌다. 성질을 잔뜩 내며 덕개에게 브레이크 기술을 연마해주던 잠뜰도 슬슬 스키 타고 내려갔던, 배신자 새끼들(영환의 표현)이 다시 저만치 위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서 알아서 브레이크 잡고 내려오라며 영환을 버리고 공룡과 속도내기를 하며 번개같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영환은 거의 오열하듯 울면서 저린 허벅지에 힘을 잔뜩 주고 기본 브레이크 자세로 달팽이보다 느리게 슬로프를 내려왔지만, 짜증나는(역시나 덕개의 표현) 라더의 새빨간 헬멧과 수현의 보라색 헬멧속 이중으로 안에 쓴 모자에서 펄럭이는 토끼귀와, 공룡의 개빡치는(또한 영환의 표현) 초록초록한 스키복을 5번째 맞이하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솔의 스키 폴대를 조용히 내어달라 한채 그걸 잡고 내려갔다. 라더는 라더대로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도 꽤나 스키로 이름을 날렸기에 그닥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서 내려올 때 마다 영환을 쌩까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 인데 인사를 해준것도 고마워해야하는데, 화려한 스키복이 그렇게 많은데 귀신같이 제 스키복들을 알아보고 ‘이 배신자 새끼들아!!!!!’ 하고 외쳐대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을 끈채로 간지나게 슬로프를 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생각보다, 라더의 표현으로 ‘쪽팔렸다.’ 그는 의외로 그런 유행어들을 많이 입에 담고, 말을 많이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황에 적절히 끼어들어 적당한 드립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에 의외로 재능이 있었기에, 그정도 말은 이미 라더 입에서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다. 덤으로 특유의 말투와 표정까지 금상첨화, 라고 너스레를 떠는 공룡이 말했다.
사실 라더는 억울했다. 저는 각별과 크게 다를것 없이 그냥저냥 공룡과 잠뜰과 함께 영환을 아주 조금 갈군것 밖에 없는데 늘 막타는 그가 쳐서 그런지 영환은 항상 한솔과 수현, 공룡 잠뜰을 쌍으로 잡아서 욕하곤 했다. 제일 얄미운건 잠뜰이랑 공룡이 아닌가. 나는 왜.. 늘 억울하단 투로 중얼거려도 돌아오는 말은 꽥꽥거리는 영환의 너도 똑같애 서한솔!! 뿐이었다. 그래, 나는 그런다 쳐. 제일 매정한건 각별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래도 영환을 그나마 상대해 주는데, 저 인간은 피도 눈물도 메말라 버린건지 처음 몇번은 영환을 상대해 주다가 그새 질린건지 지 혼자 딴 일을 하고있다. 그리고 잊을 때만 되어서 와서 엉뚱한 말을 늘어놓다가, 공룡과 잠뜰의 열혈한 웃음과 지지(..?)과 함께 또 지혼자 뭘 하러간다.
지금도 또 멈춰서서 속도는 괜찮냐고 물을라 했더니 아 서한솔 개빡쳐! 거리면서 징징거리는 꼴이 중급코스에서(사실 어디서도 하면 안된다) 직활강으로 저새끼를 끌고 바닥까지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이성적이었기에 꾹꾹 눌러참았다. 그렇지만 그의 친구들이 선을 안넘을리 없다. 영환이 짜증나 있는 한솔의 속도 모르고 수현을 부추겨 한솔에게 스키로 촤라락 눈을 뿌려서, 덕개는 그날 직활강이 얼마나 무섭고 사춘기에 있는 남고생이(이젠 성인이지만) 얼마나 충동적일 수 있는지 잘 알게되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징징거리는건 참, 한심하다고 또 라더가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렇게 설질이 안좋았던 오후가 끝나고, 설질 재정비 시간이 다되어 그들은 슬로프를 떠났다. 생고생을 한 잠뜰(그나마 너는 초반에만 고생하지 않았냐며 틈새로 본인도 고생했다고 하는 잠뜰에게 라더가 일침했다.)과 라더, 덕개와는 달리 공룡과 수현, 각별은 지들끼리 경주도 하고 기술도 대결하며 아주 좋은시간 보냈다. 사실 오후엔 설질이 그들에게도 위험해 나름 사린거지만, 영환에게 붙잡혀 뒤돌아서 A자로 슬로프 내려가는 기법이나 익히게 된 라더에게는 매우 짜증나는 일이었기에 투덜투덜 거리며 콘도에 키를 꽂고 제 소중한 스키를 베란다에 세우고 눈에 젖은 스키복을 말리고 대충 얼굴만 씻었을 때는 어느새 밤이 될락 말락 한 시간이 되어 밥을 먹기로 한다.
한가지 또 문제가, 여기서 요리를 먹을 수 있을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는 잠뜰과 라더였는데, 라더는 더이상 생고생 하고 싶지 않다며 고기조차 굽지 않겠다 선언하고, 잠뜰은 밥만 하겠다고 했다. (각별: 야 그거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는거 아니냐?) 결국 저조한 참여율로 공룡과 수현을 고기굽는 조로 붙여놨는데, 그 둘이 어찌나 불안했는지 주위에서 각별과 라더, 덕개가 끊임없이 알짱거리며 훈수를 늘어놓았다. 고기를 굽다가 짜증 한도치를 초과한 수현이 소리를 지르며 고기를 영환의 얼굴에 뜨거운 고기를 던지려는걸 말리는 라더가 고기가 아깝잖아, 라며 보통 사람과는 다른 판정으로 가위를 들고 가라고 조언했으며, (수현: 넌 왜 아닌척하고있어!!!너도 똑같애 서한솔!!!) 슬슬 주변을 돌아다니며 신경을 긁는 각별에겐 한참전에 공룡이 각별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공룡: 김각별 나랑 한판 뜰래?! 각별:어 떠!!!떠 봐 한번!! 라더: 아 둘다 쫌 조용히해;;) 결국 난장판이 된 채로 덜익힌 햇반과(놀랍게도 잠뜰이 온갖 공을 챙긴것과는 별개로 귀찮아 졌다며 햇반을 한번에 6개를 돌려서 권장 전자레인지 분 수가 턱없이 모자랐다.) 조금 그을린 고기를 먹고, 야간 개장이 되기 전에 다시 스키와 보드를 타러 간다.
야간 설질이 정비 해도. 한두번에 쉽게 망가지듯, 처음 리프트를 타서 내려갈땐 정갈하고 단단하게 다져진 눈을 보고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기분과 함께 이리 저리 쏘고 다녔지만, 세네번만에 여기저기 언덕들이 생겨 다들 낮의 데자뷰에 이마를 짚는다. (다행히도 덕개는 본인의 실력을 통감하고 초급 슬로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고생하고 있다는건, 안봐도 뻔히 보이는 것...)
그래도 덕개를 제외한 5인은 빙판이 아닌이상 작은 언덕쯤은 유희로 생각해서, 스키나 보드를 타다가 데크가 들려도 그쯤은 묘미라며 즐기고 있었다. 그마저도 열번을 조금 넘어가는 순간 눈발이 다 날아가서 언덕 아니면 빙판길로 바뀌어 빠른 포기를 하고 내려갔다. (번외로, 가장 먼저 포기선언을 한 각별(그는 빙판이나 언덕보다 감자(뭉쳐있는 눈을 위장한 얼음덩어리들)를 더 싫어했다, 보드 긁힌다고.)과 공룡(그저 아무생각없이 각별을 따라다녔다 한다)은 덕개를 픽업하러 초급쪽으로 내려갔는데, 하필이면 자타가 공인하는 길치 삼인방이라, 리프트 몇개만 잘 타면 그들이 머무는 콘도에 도착 할 수 있었는데도 리프트를 잘못 타 결국 길이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스키장 최 하단까지 내려가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왔다 한다.) (각별: 아 나 이제 박덕개랑 손절한다. 덕개:누가할소리!!!!!!! 공룡: 다 닥쳐. 난 너희 둘이랑 손절한다.) 숙소에 지친채로 도착하자 우선 맨 먼저로 들어온 각별이 (길치 세명을 구제하기 위해 급한대로 통화를 했어서 추운 날씨에 방전 될락 말락 한 상태의) 폰을 충전해두며 들어온다. 와, 밖에 진짜 진심 개추워!! 이어서 느릿하게 보드신발을 벗으며 외치는 영환의 뒤로 공룡이 빨리빨리 못벗냐며 타박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아, 나 신발 처음 신어봤다고!! 이거 왜이렇게 안벗겨져?
-각별은 잘만 벗더만. 그럼 비키든가! 확그냥 밀어버린다.
안그래도 거실엔 티비 채널을 엄청나게 돌려댔는지 볼것도 없는 강원 방송에서 용케 재방송되는 야구경기를 찾아 그의 야구팀을 응원하는 수현의 고성과, 그 옆에서 상대팀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상대팀 이기라고 염불을 외고있는 잠뜰이 꽤나 시끄러웠다.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안타를 맞는순간 잠뜰의 환호성과 수현의 고성이 섞이자,(추가로 덕개와 공룡의 투닥거림은 덤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응원이고 염불이고 옘병, 이라며 라더가 중얼거렸다. 옆에서 어느새 덕개를 밀치고 겨우 숙소에 들어왔는지 공룡이 웃으며 뿌이뿌이뿌이 그의 손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라며 깝쭉댄다. 물론 그들 사이엔 그러다 쳐맞는다고 중재할 이가 공룡이 깝쭉대고 있는 라더 말곤 없어기에, 3초후 라더의 불같은 화를 마주하는 것은 안봐도 뻔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밤은 저물어갔고, 이왕 온김에 뽕은 뽑고 가야하지 않겠냐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그들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니, 들려 했다. 호텔 특성상 방이 최대 3개까지 밖에 없고, 침대방은 오직 하나여서, 그들은 침대방을 건 아주 공평한 게임,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다. 첫판. 비장한 가위,바위,보! 소리가 들리고,
-울버린!!!!
이라 외치는 공룡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진짜 뒤진다 정형준.
-아 노잼!!
-너 탈락. 너 제일 작은방에 이불도 덮고자지마.
역시나 많은 질타를 맞고 헛웃음을 치며 힝.. 이라 하며 작은방에 근신처분을 당한다. 이제 남은 사람은 5명, 침대는 하나, 방은 두개. 또다시 비장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가위바위보!
꽤나 많이 비겨 처음엔 비장했던 목소리들에 점점 힘이 빠져 가위바위보가 아닌 가위가위보로 변질된 가위바위보를 하다가, 결국 공룡이 핸드폰을 켠다. 사다리타기로 결정해. 결국 사다리타기 뽑는 순서도 겨우 가위바위보로 결정해서, (각별: 어차피 가위바위보 할꺼 왜 또 굳이 사다리타기 하는거야?) 다음과 같은 사다리타기가 완성되었다.
와, 와, 미친! 개쫄려. 덕개의 호들갑과 1번만 안걸리면 좋겠다 제발... 이라 중얼거리는 라더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첫번째, 덕개 순서. 비장한 사다리타기 브금과 안어울리게 덕개의 사다리는 두개의 교차점만 만나고 끝났다. 즉, 1번에 걸렸다는 뜻. 제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참동안 응? 상태에 놓여있다가, 3초뒤 엄청난 고성이 그의 목에서 질러진다. 아, 미친 내고막! 질색하며 덕개의 옆에있던 라더가 도망쳤고, 그에따라 한칸 앞으로 밀린 수현도 도망간다. 우리 덕개 격리조치 하는건 어때? 공룡이 제안했고, 각별이 쿼런틴 하겠습니다~ 라 하며 덕개를 작은방에 가둔다. 후, 지뢰 탈출. 한결 후련해진 목소리로 각별이 제 이름을 클릭한다. 사다리가 왜이리 조잡해?
결과는 침대방 옆 이부자리. 장난식으로 공룡이 침대 쓰는 사람의 하수인 자리라며 말했던 곳이라 각별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방에 갇혀서 울부짖는 덕개보다는 나은 자리라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깔러 침대방으로 향한다. 침대 주인 잠뜰만 아니여라,
다음은 수현차례. 제발 침대 걸리게 해주세요!!!!! 강렬한 외침과는 다르게 거실 티비옆 자리가 걸리자 기운이 팍 죽는다. 아, 저거 티비 옆에 있어서 불편한데. 투덜거리지만 역시 덕개보단 낫다며 각별의 뒤를 따라 이불을 깔러간다. 다음 라더!! 잇츠미! 시원시원한 기압과 함께 자체 브금(띠리리리띠띠 띠리리리띠띠)을 깔며 사다리를 돌리던 라더의 표정도 시무룩해진다. 거실, 황수현보단 낫네.
-어, 잠만 그러면? 남은건 잠뜰인데...
공룡의 중얼거림에 이어 구경하고있던 각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미친 개부러워!!!!!!!! 아까 걸렸을땐 그렇게 멀쩡하던 얼굴이 화내니까 그렇게 좋은지 잠뜰이 바닥을 구를 기세로 웃는다.
-아, 개웃기네. 각별, 침대 정리는 해뒀지?
하아아, 땅이 꺼질듯한 각별의 한숨과 그에 이어 잠뜰이 또 뒤집어지게 웃는다. 한편에선 공룡이 와~역시 잠뜰님~ 가위바위보에서 진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셨군요~ 라며 아부같이 입을 털고있었고, 한솔은 이게 이렇게 되냐며, 공룡에게 이 사다리 주작 아니냐고 묻고있었다. 따지려면 네이버한테 따져. 나도 지금 저 시끄러운 놈이랑 같이자게 생겨서 짜증나는데. 이 혼란한 틈에서 용케 또 들었는지 덕개가 방에서 야!!!!!내가더 짜증나거든 정형준!!!!!이라 외친다. 각별을 놀리는것에 포기 못한 잠뜰은 아직도 각별에게 야, 누나라고 불러봐 ㅋㅋ 하며 깝쭉대고 있었다. 진짜, 개시끄럽다. 조용히 라더가 중얼거린다.
***
어찌어찌 혼돈의 사다리타기가 끝나고, 잠자리 준비를 마친 그들이 잠에 드려 한다. 덕개는 오만상으로 공룡에게 시끄러우면 베개로 얼굴을 눌러 버리겠다 하고, 공룡은 무서워서 어쩌지, 미리 유서를 써놔야겠네~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덕개가 개빡쳐 정형준!!! 이라 소리 지르는건 덤) 각별은 아무것도 안듣겠다며 귀에 에어팟을 눌러끼고 잠뜰보다 먼저 잠들었고, 라더와 잠뜰은 새로 만들어 졌다는 롤 모바일을 몇판 하고 승리하자 후련한 마음으로 각자의 방(라더는 방이랄것도 없지만)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평화로움 과는 거리가 먼 밤이 저물어간다.
***
다음날, 시끄러운 군대 나팔소리가 호텔에 울려퍼진다(알람은 잠뜰이 맞춰뒀다). 제일 먼저 일어난건 잠귀 밝은 한솔. 아 미친, 이라 말하며 귀를 후비며 일어났지만, 이 알람을 끄면 그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수현의 귀에다가 스피커를 뒀다가, 작은방에 들어가서 잠꼬대하는 공룡과 이에 몸부림치는 덕개, 마지막으로 침대방에서 고이 자고있는 잠뜰과 여전히 에어팟을 꾹 눌러쓴채인 각별을 깨웠다.(각별은 손수 에어팟을 빼고 깨웠다.)
.. 진짜 악마새끼 아냐 저거? 잠에서 혼비백산하여 깬 각별이 중얼거렸지만, 사실 모두의 속마음과 같았다. 어쨌든 분명한건, 쟤가 우리한테 미쳤다고 할 자격은 없는듯. 공룡이 덧붙였다.
아침은 대충 어제 남은 햇반과 편의점에서 털어온 3분카레와 3분짜장으로 때웠다. 나중에 식당에서 먹으면 되지. 라고 무심히 중얼거리는 각별의 말을 모두 수긍하고 덜익은 햇반과 어딘가 부족한 맛의 카레 짜장을 먹었다. (번외로, 수현은 맛이 부족하다며 둘을 섞어먹다가 식성이 왜그러냐는 덕개의 질타를 받았다. 물론 수현이 덕개에게 꿇리진 않아서 남의 식성에 왜 참견하냐며 더 질타를 맞았지만.)
아침은 쌀쌀했다. 쌀쌀하다는 말로 정의하기엔 추위에게 미안할 정도로. 사실 추웠다. 매우, 엄청나게, 아주, 많이. 다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달달 떨고있고 덕개는 5초에 한번씩 춥다고 내뱉었을 만큼 심각한 추위였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수현이 작작좀 해 영환아~ 라며 갈궜다.) 그렇게 추운만큼 설질은 최상이였고, 리프트를 10번 타고 올라가도 10번 내내 꽤 설질이 좋았다. 슬로프가 꽤 긴 스키장이라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에 견디는 칼바람이 춥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걱정했던 영환도 호텔 근처 무난한 슬로프만 타겠다 선언했고, 그에 모두 안심하고 각자 최애 슬로프로 갔다. 각별과 잠뜰은 최상급 슬로프를 타러 곤돌라로 향했다. 공룡은 최상급이 아니라 옆에있는 제일 긴 슬로프를 타보고 싶다며 함께 향했고, 수현과 라더도 자연스럽게 곤돌라로 향했다. 상황을 뒤늦게 알아차린 각별이,
-어, 우리 덕개빼고 다 모였네^^
라 말했다. 매정한 친구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다. 그들은 최상급 슬로프에 가기도, 최 상단 슬로프에 가서 논스톱으로 맨 밑까지 내려가기도 하며 추위도 잊을만큼 즐겁게 놀고 있었다. 슬슬 두고온 덕개의 생각이 났는지 잠뜰이 덕개에게 전화를 건다 몇번 웃다가, 다들 이제 내려가자~ 라며 아직도 광토마처럼 날뛰는 남고딩들을 양몰이하듯 이끈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야, 라고 중얼거리는 라더의 옆에서 수현이 덕개가 뭐래? 짜증내? 라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거기에도 응? 가보면 알아~ 라고 대꾸하며 다시 곤돌라를 타고 돌아온다.
곤돌라 입구에서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는 갈색머리의 인영이 보인다. 쟨 헬멧이랑 보드는 어따놔두고 저기서 저러고 있대냐. 공룡이 중얼거린다.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이어 별 관심 없는듯 입맛을 짭짭 다시며 중얼거리며 옆 푸드트럭으로 홀린듯 순간이동을 시전한다. 그런 공룡을 붙잡으며 덕개에게 우리 이제 밥먹으러 가볼까~? 라며 잠뜰이 물었고, 그게 1시간동안 너희만 기다린 나한테 할 소리냐?! 라고 덕개가 빽 소리질렀다. 야, 쪽팔려. 조용히해. 라더가 주위를 둘러보며 작게 말했고, 그제서야 덕개가 한톤 낮춰서 빠르게 중얼거린다.
-난 너희를 믿었던만큼 슬러프도 믿었는데 너흰 아무런 부담없이 날 여기다 두고 사라졌고 그런후부터 여기엔 사람들이 몰려와 발 디딜틈도없이 보드와 스키로 가득차서,
-즉석작사 ㅁㅊㄷ, 래퍼해봐라 영환아.
-됐고 밥이나 먹자니까? 나 배고파
영환의 혼이 담긴 랩에도 다들 배고픔과 질림으로 쌩깠다. 하아, 한숨을 내쉰 영환이 자리 맡아뒀다며 식당으로 터덜터덜 들어간다. 이어 따라 들어가는 각별이 헬멧 없던게 이것때문이였냐며 은근 섬세하다며 웃는다. (이어 공룡이 소름끼친다고 중얼거렸다.)
땀흘리고 운동하고 코끝과 귀가 빨개진채로 다들 식당에 들어간다. 헬멧과 장갑을 한곳에 지저분하게 쌓아두고(그리고 이를 라더가 조용히 정리하는 중 이였다) 그새 시켜왔는지 식판을 받아들고 돈까스가 부먹으로 나왔다며 툴툴거리며 널브러져 있는 장갑들을 밀어내고 돈까스와 나온 국물을 한입 떠먹는 각별과, 그 옆에서 또 어느새 시켜왔는지 우동을 흡입할 기세로 먹는 공룡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이어 식판을 받아와 돈까스를 고고한척 자르다가 덕개가 옆에서 밀치자 고고는 치워버리고 또 그새 성내는 수현과 아직도 메뉴 고르는 덕개가 어우러져 꽤나 정신사나웠다. 잠뜰이 옆에서 덕개의 메뉴에 훈수를 두자, 그런건 제발 여기서 하지 말라며 라더가 내쫓는다. 창가쪽 자리에서 슬로프가 보여서 화려한 빛깔의 헬멧과 보드,스키들과 사람들, 창가 야외 테이블에서 꼬마가 먹고있는 오뎅에서 나오는 김, 코끝과 손이 다 새빨개져도 눈사람을 작은 손으로 꾹꾹 누르는 아이, 보드를 타고있는 인형으로 슝슝거리며 마냥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가 지나가고, 그 햇빛만은 따스하여 분위기에 휩쓸려 음식이 그저 그래도 허기와 어우러져 이세상의 진미 마냥 느껴진다. 밥을 먹다가도 티격태격 하지만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가 그들의 졸업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듯 했다. 아무생각없이 떠들고 놀다가도 이제 이게 진짜 졸업여행이고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지겹도록(문이과 통합이라 반이 안바뀌었다.) 붙어다녔던 친구들의 얼굴을 볼수 없겠구나, 싶은 어색한 그리움이 지나가서 문득 다같이 상념에 젖었다. 주마등 처럼 기억이 스쳐지나가려는데 그새 음식을 시켜왔는지 하하하! 거리며 옆에 앉는 덕개때문에 다 깨졌다. 그래, 우리가 뭐 이렇지. 바뀌었으면 어색할것 같다고, 문득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성인이지만, 아직 어린 그들의 첫 여행이 그렇게 마무리 되어간다.
***
-야 서라더! 빨리와, 안그럼 안찍힌다?
-내가 제일 앞에 있을거거든? 조용히 하고 웃어.
-아, 황수현! 내 얼굴 가리지 말라고!
-ㅋㅋㅋㅋㅋㅋㅋ덕개얼굴 가려야지
-각별, 니 키 큰거 알겠으니까 내 뒤에있는 브이 치워라.
-어케알았지.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으려 덕개가 질리도록 탄 슬로프의 리프트와 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사진을 찍는다. 아무리 혼비백산해도 그들의 얼굴에는 모두 꽃이 핀듯 활짝 웃고있다. 문득, 아주 문득 우리가 더 커서 나이를 먹더래도 오늘의 이 소소한 여행은 꼭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fin.
Written by. 사랑
Drawn by. 한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