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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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한겨울임에도 햇살은 따뜻했고, 살짝 부는 바람은 기분 좋게 얼굴을 간지럽혔다. 수능이 끝난 후 근 1년 만에 보는 아이들의 미소는 더없이 밝았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웠던 만큼, 청춘을 떠나보내기엔 더없이 슬픈 날이 아니었을까?


. . .


    "그럼, 이로서 제 16회 하늘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칩니다. 157명의 졸업생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의 앞날을 하늘 고등학교가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졸업식의 여운을 만끽하며 복작복작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잠뜰, 각별, 수현과 라더. 그리고 공룡과 오늘의 주인공 덕개는 빠져나왔다. 아니, '덕개의 손에 끌려 나왔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덕개가 이리도 그들을 황급히 끌고 나온 이유인즉슨, 덕개의 가쁜 숨 뒤에 이어지는 말에 있었다.


    "있잖아요. 나 진짜 갑작스러운 것도 알고, 형들이랑 누나가 준비한 거 많다는 것도 알아요. 근데 나 오늘 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들어 줄 수 있어요...?"

덕개의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6명이 모두 함께 여명동 투어. 좀 더 사족을 붙이자면 모두의 추억이 담긴 여명동의 장소들을 여명동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러보자는 것이었다. 그럼... 의문이 생긴다. 할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은 졸업식 날에 굳이? 몇 수년을 살아 질려도 이미 질렸을 법한 동네를?


 그러나 그들은 덕개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여명동과 쌓아온 추억은, 여명동은. 차마 보낼 수 없는 아릿한 청춘과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쌓은 추억이 여간 많아야 말이지. 그리고 덕개는 그 중에서도 여명동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 5명이 모두 고등학교를 먼저 졸업한 후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고 홀로 남아 계속 여명동과 함께했던 덕개. 끈끈한 유대감? 애착? 그 이상의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덕개의 청춘을 그리 만든 것이 아닐까.



그래, 보러가자.


 한 마디면 충분했다.  





. . .


... 진짜 정공룡답다.

 여명동 투어라면 자신이 제일이라며 공룡이 운전대를 잡아 이끈 곳은 다름 아닌 그들의 중학생 시절 청춘을 책임졌던 피씨방이었다. 카운터엔 항상 서비스를 주던 익숙한 형 대신 낯선 누나가 있었다. 그래도 밝은 웃음은 그 형을 꼭 닮았다. 6명 모두 오랜만에 온 피씨방 이지만 그들이 항상 찾아가던 자리를 발걸음이 먼저 기억했다. 어느새 몸은 푹신하고 커다란 의자에 모든 걸 맡긴 뒤였다. 60개의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이며 교차되는 타건 음과 경쾌한 로그인 소리는 언제 들어도 설렜다.

항상 각박하고 가혹한 청춘의 도피처로 삼았던 피씨방이었다.  뻥 뚫려 있지만 어딘가 답답했던 학교와는 달리, 창문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밀폐된 공간이지만 숨통이 트였었다.

마냥 어려서 그런 줄만 알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아도 중학생 시절의 그들은 꽤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올 수 있는 공간이 피씨방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아팠던 청춘도 이해하고,  이젠 고이 떠나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


. . .


  와, 여긴 진짜 그대로구나.

중학생 시절, 쓰라린 청춘의 또 다른 도피처였던 노래방이었다. 이번엔 잠뜰이 가장 신난듯 그들을 데리고 왔다.

방음이 완벽하진 못한 탓에 먹먹하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사랑 노래와 락 음악이 그 시절 흥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에도 익숙한 듯 들어선 6번 방. 모두가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오른쪽 벽면에 다닥다닥 붙었다. 누가 봐도 정공룡 글씨체인 보드마카로 큼직하게 써놓은 6명의 이름 석 자가 사이좋게 모여있었다.

    "와... 이거 아직까지 아무도 안 건들고 있구나"

    "저렇게 크게 써 놓았는데, 나 같으면 찾아내서 복수할까 후환이 두려워서 못 건들겠다."

    "ㅋㅋ, 인정."

공룡의 배짱만 한 낙서의 이야기가 한창일 때,  밀폐된 방 안에서 익숙한 인트로가 울렸다. 그 노래. 아마 그들에게 청춘을 노래로 표현해보라 한다면, 입을 모아 부를 노래가 아닐까 싶다.  다 같이 놀러 갔던 섬마을에서 들은 노래는 아직까지도 노래방만 가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같이 가만히 잠뜰의 선율을 감상하다, 클라이막스가 되자 저마다 마이크에 모여들어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철없고 유치해 2개 밖에 없는 마이크를 들고 싸우던 그 때로 돌아간 듯 그들은 그 순간을 즐겼다.

하늘을 뚫을 듯 시원한 고음에 담아, 노래방과의 청춘도 이젠 날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 . .


야... 방금 전에 노래방 갔다와놓고, 음소거라도 시키게...? 도서관이 뭐냐.

범생이 아니랄까봐, 자신은 운전은 무섭다며 각별을 시켜 온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사실,  수험생 타이틀을 내려 놓은지 얼만 지나지도 않은 덕개에겐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 했지만. 나름 수능이 끝나고 오는 도서관은 색달랐다.
항상 녹초가 되어 들어 온 열람실은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가장 조용한 전쟁터.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떠난 열람실에서 묵묵히 펜을 움직이고 있을 때면 혼자라는 생각에 다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청춘이라 하면, 청춘이긴 하지. 아주아주 외로웠던. 그러나 덕개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수험생의 신분이 아닌,  일반인으로. 홀가분하게 도서관을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 그의 옆엔 모두가 있으니까.

생각에 잠긴듯한 덕개의 뒤로 5명은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입을 모아 속삭였다.


    "수고했어, 덕개야."

    "근데 너... 대학 들어가면 다시 집처럼 들락날락해야 해."


. . .


... 뭐냐?

... 뭐가?

황수현꼴은 내지 않겠다던 각별이 그들을 의기양양하게 데리고 간 곳은


    "너 한 바퀴 돌았지."

    "ㅇㅇ"

    "...ㅎㅎ 넌 그냥 넘기고 라더가 정한 장소로 바로 가자. 우리 길 잃겠다."

    "엉ㅎㅎ"


그냥 그랬다.


. . .


여긴...?


낮에 한 졸업식 현수막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하늘 고등학교.


  "우리 6명 다 하늘 고등학교를 졸업했잖아. 그래서... 어쩌면 청춘의 모든 날을 보낸 건 학교가 아닐까 싶더라고. 이젠 덕개도 졸업했고, 이대로 연이 끊어지는 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학교랑 작별 인사? 라도 할까 해서..."

모두가 서두를 쉽게 떼지 못했다.  말을 하면 목이 메어올 것만 같았고,  고개를 들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모두가 말 없이 교문을 지나 갈 뿐이었다.

 ... 분위기 왜 이렇게 쳐졌어- 오늘 좋은 날인데. 이러면 라더가 데리고 온 의미가 없잖아. 자자, 우리 오랜만에 다같이 옥상 올라갈까? 이 시간대에 가는 건 처음이잖아.

잠뜰의 말을 들은 그들은 모두가 소리 없이 웃음을 짓더니 발이 이끄는 대로, 계단을 올랐다. 모두가 졸업하고 난 후, 그들의 생각이 날까 덕개도 발을 들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덜컹,
끼이익-


옥상 문을 열자 맞바람이 치며 폐부 깊은 곳 까지 여명의 공기가 들어왔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그래, 이랬었지... 이렇게 아름다웠었지. 이렇게...

이렇게...

청춘은 이랬었지.


모두가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리도 오래 잊고 있었던 그들의 청춘 앞에서, 이젠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지나 간 청춘 앞에서, 감히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저기, 우리 사진이라도 찍을까?"

어느새 품속에서 폴라로이드를 꺼낸 수현이었다.
그래,  마냥 청춘을 보내주기보단, 간직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들었다.

청춘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자, 우리 사진도 찍었겠다. 이젠 진짜 보내줍시다."

   

그 날은,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한겨울임에도 햇살은 따뜻했고, 살짝 부는 바람은 기분 좋게 얼굴을 간지럽혔다. 붉게 물든 노을은, 모두를  감싸안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어쩌면 청춘을 보내주기엔 가장 좋은 날이 아니었을까?



잘가, 나의 청춘.

Written by. 챔니
Drawn by. 초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