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분의 1 >
덕개가 눈을 떴다. 햇살이 희미하게 방 안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휘리릭,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문이 열린다.
철컥!
“이야- 우리 숙소 좋다, 그치?”
공룡이 방방 뛸 기세로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피실피실 웃음이 세어나오는걸 막지 못한다. 수현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엄청 큰 여름 별장을 빌려준다지 뭐야! 추천해준 덕개도 덕개지만 내가 예약하는데 공 좀 들였다구!”
각별이 설렁설렁 박수를 쳐주고는, 제일 먼저 현관을 사수하러 뛰어간다. 다른 사람들도 하하 웃으며 각별의 뒤를 따라 달렸다.
탁탁, 탁, 탁,
불규칙한 발걸음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덕개가 운동장을 돈다. 웅성웅성, 높아졌다 낮아지는 말소리가 썩 기분좋지는 않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쏴아아아-
“이런, 모처럼 여행을 왔는데 비라니. 이거 꼼짝없이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겠는걸?”
라더가 불퉁하게 말한다.
“어차피 산골이라 사람도 없고, 나가도 할 것도 없는걸.”
잠뜰이 어깨를 으쓱이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난 애초에 나갈 생각도 없었는데...?”
각별이 거든다. 옆에서 수현이 집돌, 집순이들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덕개가 하하 웃는다.
“그럼, 각자 방이나 정할까?”
덕개가 웃으며 제안한다. 공룡이 옆에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오, 덕개 오랜만에 좋은 생각?”
잠뜰이 말하고는 내가 먼저라며 뛰어가는 공룡을 쫓아간다.
-풀석.
힘들게 하루를 마친 덕개가 침대에 뛰어든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기분 좋다.
사각사각-
“오, 덕개 의외로 사과 잘깎네? 칼질에 재능있나봐!”
수현이 소리높여 덕개를 칭찬한다. 각별이 짖궃게 말을 얹는다.
“유일한 재능이라서 문제지.”
“아, 우리 덕개 괴롭히지 마 각별!!”
“에이, 덕개가 할 줄 아는게 얼마나 많은데~~”
공룡과 라더가 차례로 웃으며 말한다.
“아, 덕개가 할줄 아는거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수현이 넌지시 웃으며 말을 꺼낸다.
“아, 숙소 얘기좀 그만해!!! 너 잘한거 알겠으니까!!!!”
아하하하, 웃음 소리가 울려퍼진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톡톡, 톡,
아침이슬이 떨어졌다.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커튼이 없는 문이 열린다, 또 다시.
철컥-
“아, 재밌었다. 다들 잘자~”
공룡이 손을 흔든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으로 사라진다.
아침 해가 눈부시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거실로 모인다.
“어 뭐야, 각별이랑 수현은 아직도 자나?”
6분의 4.
“쟤네 또 여행와서 밤 늦게까지 폰하다 잔거 아니냐? ㅋㅋㅋㅋ”
공룡이 다크써클을 달고는 말했다. 옆에서 라더가 가장 피곤해 보이는건 너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럼 우리끼리 놀지 뭐.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
잠뜰의 말에 모두 찬성한다.
이윽고, 주방에는 사람들이 밥 먹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달그락 달그락—
모두가 밥을 다 먹어갈 무렵, 환한 햇살이 방 안을 흝었다. 바람도 거들어 창을 두드렸다.
아, 바람 소리가 기분 좋다. 덕개는 그렇게 생각했다.
솨아아-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이닥친다. 덕개가 여행에 온 이래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각별의 방문이 열려 있다. 찢어진 커튼이 반항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잠뜰과 공룡, 라더.
6분의 3.
덕개가 웃는다.
“이제 너희들이 하고싶은 대로 해.”
“덕개야... 이게... 왜... 무슨...”
잠뜰이 덜덜 떨며 말한다.
“거짓말이지? 각별이... 너가 그런게 아니지? 제발... 그런거라고 말해 줘...”
공룡이 애원하듯이 말한다.
“나한테 복수를 하든, 경찰에 신고를 하든, 목적을 이뤘으니 상관 없어. 왜, 라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어. 나의 쉼표란 이런거야. 나에겐 붓이 있지. 이걸로 누구에게든 쉼표를 그려줄 수 있어.”
심판자의 모습이 그랬을까. 쇠로 된 붓을 들고, 그 애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난 이제 쉬고싶어. 정말이야. 그러니 날 죽이든 감옥으로 보내든, 맘대로 해.”
마음대로 해라, 라는 말이 그렇게 잔인할 수 없었다.
몸에 힘이 풀린 라더가 무릎을 꿇는 소리가 난다.
풀석-
쇠창살 속에서, 덕개가 침대에 몸을 던진다. 청춘은 끝났다.
처음부터, 6분의 1.
양심은 영혼의 창문이요, 악은 그 창문을 덮는 커튼이다.
-더그 호튼-
Written by. 몽타지
Drawn by. 자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