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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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여행에 쉼표를 찍어두자, 언제든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늘은 하얗고 바깥은 눈으로 물든 어느 겨울날, 6명의 학생의 학생 시절에 종지부가 찍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내기들의 청춘이 막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졸업 후 남은건 이제 봄방학 뿐이었다. 잠뜰이 방학때 무얼 할거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각별은 쉴 것이고, 공룡은 잘 것이며, 라더는 게임할 것이고, 수현은 놀러다닐 것이고, 덕개는 무엇이든 할 것이었다. 잠뜰은, 고등학생 시절에 조금은 기억에 남을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잠뜰이 모두를 불러세우곤 말했다.

" 우리 여행갈래? 졸업하면 다들 바빠서 많이 못 만날테니까. "

유난히 친했고, 어디든 같이 다녔으며, 무엇이든 함께 했던 6명. 그 6명이 찢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 같았지만 그건 생각보다도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이나 미련이 남았고, 그랬기에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잠뜰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제각기의 표현으로 수락을 표현했다. 그리고나선, 각별이 물었다.

" 어디로 여행갈건데? 그것도 중요해. 겨울이잖아. 오래 다니면 춥다고. "

" 딱히 상관없지 않나? 그냥 발 닿는 곳에 가는게 나을지도? "

어디든 가자. 공룡이 제안했다. 오래 다녀서 추우면 뭐 어때? 재밌으면 장땡이지. 장난스레 웃는 공룡의 모습에, 모든 이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단 한 명, 덕개를 제외하고. 덕개는 그 제안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덕개의 로망, 그것은 목적지 없는 배낭 여행이었다. 혼자서 가는 것도 좋고, 같이 졸업한 사람들과 간다면 더더욱이나 즐겁고 행복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덕개에게 공룡의 어디든 가자, 그 말은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런 덕개를 보곤 라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여름도 아니고, 겨울인데 어디든 가자니. 가다가 쉴 곳을 못 찾으면 큰일난다고. 감기 걸리고 난리 나. "

" 그 맛에 하는거지, 뭐. "

덕개한테 맞춰주자는 듯, 공룡이 라더를 향해 한 쪽 눈을 찡긋했다. 고집이 심해지기 전에 가자는 뜻이었다. 라더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곧 꼬리를 내리곤 마음대로 하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각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보곤 덕개가 신이 나서 폴짝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현이 그러다 넘어진다며 큭큭 웃었다.

장소는 어디든 발 가는 대로, 그리고 날짜는 이틀 후. 그렇게 정해진 날짜를 품에 안고 졸업식이 끝났다. 잠뜰은 장소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계획은 추억 만들기였으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짧고도 길었던 마지막 고등학교 생활을 끝마쳤다.

여행 전까진 하루가 다 똑같았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놀다가 다시 자고. 여행이 내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무언갈 잊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던 잠뜰의 머리에 전구가 반짝 들어왔다. 헐, 맞다. 여행! 조졌다, 준비 하나도 안 했는데. 하루하루가 비슷해서 날짜 개념도 잊어버렸나보다, 그리 생각하며 짐을 싸느라 요란한 밤을 보냈다. 그리고 여행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약속 장소에는 놀랍게도 모두가 제 시간에 모여있었다. 당연히 늦을거라고 생각했던 공룡조차도 제 시간에 도착했다.

" 와, 공룡이 제 시간에 도착한 건 처음인 것 같은데? "

" 뭐? 야, 아니거든~ 학교 다닐때도 제 시간에 도착했거든? "

" 응, 일주일에 네 번 지각~ "

졸업하고 나서도 투닥대는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공룡과 각별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늘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공룡이 제 시간에 나온 건 좀 놀라운 듯 했다. 공룡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냐며 잔뜩 화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여행의 서막이 밝았다. 6명은 어디를 갈 지도 정하지 않은 여행의 발걸음을 떼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날씨까지 도와주는 것인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포근한 날씨였다. 길을 걷다가 맛집이라는 수현의 이야기에 그 곳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각별의 감을 믿고 따라갔다가 다 같이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무턱대고 뛰어가던 공룡과 덕개를 라더와 잠뜰이 데려오기도 하고. 하루가 무척이나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그리고 신나게 돌아다닌 6명의 추억이 깊어지는 날이었다.

" 우리 근데, 여행 하루만에 이렇게 다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내일 볼 곳 없을 것 같은데? "

" 내일은 또 다른 곳으로 가야지. "

" 내일은 거기 어때? 그... "

왜, 우리 여름에 갔었던 곳 있잖아. 거기 겨울에 경치가 장관이라고 겨울에 또 가자고 약속했던. 라더가 문득 생각난 듯 제안했다. 그러자 수현이 그제서야 기억났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아, 거기 말이지? 거기를 잊고 있었네, 하며.

" 어... 거기가 어디였었지? "

" 뭐야, 설마 까먹은거야? "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잠뜰에게 각별이 짓궃게 웃으며 말했다. 너 빼고 다 기억하고 있어. 덕개도 기억하고 있다고. 덕개는 거기서 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각별을 노려봤다.

" 아무튼 내일은 거기 가면 되겠네. "

" 그니까 거기가 어딘데? "

" 가면 기억 나겠지, 바보야! 지가 가자고 해놓고 지가 까먹고 있네? "

공룡이 웃으며 잠뜰을 놀리곤, 암튼 내일 거기 갈거면 니네 일찍 자야됨~ 수고~ 하며 쏙 잠자리에 들어갔다. 진짜 이상한 애야, 잠뜰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마무리로 여행 첫 날에 마침표가 찍혔다.

비몽사몽한 채로 먼저 눈을 뜬 것은 덕개였다. 시간을 보니 오전 7시.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은 없었는데... 그리 생각하며 졸린 눈을 비볐다. 주변을 나머지 5명은 잠에 푹 든 것 같아보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던 덕개의 머리속에 전구가 반짝, 들어왔다. 맨날 자신을 놀리는 5명을 제대로 놀릴 방법.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나 가져온 펜으로 5명에 얼굴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라더의 볼에 상어 그림을, 잠뜰의 이마에 고래 그림을, 각별의 눈 옆에 별 그림을, 수현의 입 옆에 토끼 그림을, 그리고 공룡의 눈에 공룡 그림을 그려낸 덕개가 만족하며 펜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재빨리 밖으로 나가 산책하고 나서 돌아오는 척을 했다. 그 사이에 깬 건 라더였다. 라더가 제 볼을 가리키며 물었다.

" 야, 덕개야. 이거 누가 했는지 아냐? "

" 아니? 난 모르겠는데? "

덕개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답했다. 그 모습을 보곤 라더는 확신했다. 덕개가 했구나. 너 인마! 하며 소리지르는 라더의 우렁찬 목소리에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곤 각자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느라 정신 없었고, 덕개가 한 짓임을 알고 난 후엔 덕개의 눈에 개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시끄러운 아침이 지나간 후, 방을 빼곤 다시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어제 저녁에 말했던 곳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안 나는지 잠뜰이 계속 거기가 어디냐고 묻자, 수현이 물었다.

" 정말 기억 안 나? 왜, 우리 작년 여름에 갔던 거기. "

" 작년 여름? "

작년 여름이라고 하면, 기억나는 추억이 딱 하나 있었다. 막 방학을 했던 참이었다. 공기는 텁텁해서 숨이 막히고, 도시의 매캐함이 가슴을 꽉 막는 날이었다. 그런 날에 잠뜰이 모두를 불러 갔던 곳은 어느 한 바다였다. 여기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이쁘다고, 나만 아는 바다라고. 다음엔 겨울에 놀러 오자고. 그 날의 추억에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어뒀었다. 그제서야 기억난 듯 잠뜰이 아아, 하며 박수를 짝 쳤다.

" 이제 기억났냐? 정말이지~ 우린 다 기억하는데 약속한 본인이 까먹고. "

" 기억력 하고는. "

공룡과 각별이 큭큭 웃으며 잠뜰을 놀렸다. 남 놀리는데에는 정말 죽이 잘 맞는 둘이었다. 버스가 덜컹이며 그들의 추억에 마침표를 찍을 곳에 도착했다. 일 년만에 왔는데도 어제 온 것 마냥 기억이 생생했다. 그리고 6명 전원은 바다의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원한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은 맑고. 얼핏 보아도 푸른 바다에 햇빛까지 비추어지니 속이 뻥 뚫리는 듯 했다. 약간씩 비추는 해는, 바다의 푸름을 더욱 더 증폭시켜줬던가. 그제서야 명확하게 기억나는 작년 여름의 여행, 그리고 행복. 도시가 너무 싫어서 도망치듯 친구들을 데려왔던 이 곳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다시 오니 참으로 뭐랄까, 마음 한 구석이 찡하면서도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그리워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정말 여행의 끝임을 느꼈다. 아, 헤어지기 싫다.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다. 우리들의 추억에,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에.

" 있잖아, 다음에 또 여기는 못 오겠지? 다들 바빠서. "

놀랍게도 계속해서 환하게 웃고 있던 덕개가, 조금은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가 싫었던 건지, 수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아아아! 덕개 너는 즐겁게 여행 와서 기운 빠지는 소리 하네? 고등학생의 시절의 마지막 여행이지, 우리 추억의 마지막 여행을 만들고 있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다시 오면 되는거 아냐?! "

너 그 말 취소할 때까지 소리지른다?! 씩씩거리며 소리친 수현을 보곤 모두가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맞는 말이었다. 고등학생때의 여행에는 마침표가 찍어지겠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에는 아직도 쉼표가 찍혀 있었다. 저 쉼표가 마침표로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는 동안에는.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안해졌다.

" 맞네, 수현이 간만에 옳은 소리 했네! "

" 뭐라고? "

라더가 제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맞네, 맞네! 하며 다른 이들도 뒤늦게서야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의 이야기 덕분에 한껏 밝아진 분위기를 축복하는 듯이, 바다가 빛을 받아 더 푸르게 빛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붙었다. 푸르고 푸른 바다 모래사장에서, 6명은 다시끔 약속했다.

힘들고, 지치고, 다시 이 시절이 그리워지면, 우리 다시 이곳에 오자.

라고, 그렇게 약속했다. 바다가 마치 약속의 증인이라도 되어준다는 듯이, 맑은 햇살 아래 파도가 옅게 일렁였다.

Written by. 개갱
Drawn by.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