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부름」
각별 오빠가 죽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싫어하던 오빠는 허무맹랑한 사고로 떠났다. 오빠가 떠난 날 아침에는 비가 왔었고, 그 탓에 바닷가 바위는 평소보다 미끄러웠다. 오빠는 그 바위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좋아했다. 유행하는 노래의 가사나, 복도에서 뛰던 공룡이가 교무실에 끌려갔다는 얘기나,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 따위의 농담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오빠는 유독 그 바위를 좋아했다, 어쩌면 사랑했다. 바위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져내리는 파도, 눅눅한 공기에 스며든 짠내, 숨 막히는 더위와 반대되게 차가운 물방울. 그 모든 것을 각별 오빠는 사랑했고 동시에 동경했다. 바위에 걸터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각별 오빠를 잡아당기며, 그러다가 빠진다고 잔소리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각별 오빠는 정말로 바다가 되어버렸다.
경찰은 단순한 사고라고 했다. 뭍에서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죽는 사고가 흔하다고 했다. 그날 봤던 것을 모두 써달라며, 진술서를 내미는 경찰에게 나는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어떻게 그런 사고로 사람이 죽을 수가 있어요. 평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날이었는데.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물안개가 낀 것마냥 흐릿한 장면들이 어지럽게 지나갔다.
그러니까, 각별 오빠가 바위에 서 있었어요. 같이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각별 오빠는 뭔가 기뻐보였어요. 무슨 대화였는지 기억은 안 나요. 정말로요. 누가 손으로 가려버린 것 같아요. 확실한 건 그리고나서 오빠가 한번 웃었고, 동시에 차가운 물방울이 뺨에 튀겼어요. 오빠 발이 미끄러졌었나봐요. 만져보니까 바위가 축축했어요. 미끄러웠어요. 그런데 각별 오빠는 수영을 할 줄 안단 말이에요. 그날 파도가 거셌긴 했지만. 알아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이건 신문 한 구석에도 실리지 못할 만큼 작은 일이라는 걸. 그래도, 형사님.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흔한 사고예요.
진술서를 다 쓰자 경찰은 말했다. 기억 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떠올리려 애쓸 필요 없다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뇌가 스스로 지워버린 장면은 떠올려봤자 독이 될 뿐이라며. 나는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긍정의 뜻은 아니었다. 그저 1분이라도 빨리 경찰서를 나가고 싶었다. 마침내 경찰은 이만 나가도 좋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는 급하게 일어서며 대충 입을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정작 감사한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경찰서를 나왔을 때 하늘은 아직 밝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려 휴대폰을 꺼내니, 그리 많은 양은 아닌 알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양동아리 단톡방. 영영 지워지지 않을 1이 새겨진 메시지들이 카톡방을 메우고 있었다. 빠르게 카톡들을 훑었다. 덕개와 라더는 말이 없고, 수현이와 공룡이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잠뜰 누나 끝났어?
아직 안 끝났을 거야. 오래 걸린다고 아까 그랬잖아.
그런가. 하긴, 끝났으면 톡했겠지.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두어 마디 더 덧붙일 법도 한데, 다들 약속이나 한듯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기야. 선배 장례식을 어제 치룬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 기운은 남아 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덕개는 오빠의 사진을 볼 용기가 없다며 끝내 오지 않았지만. 수현이는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었고, 공룡이는 울음을 꾹꾹 누르더니 장례식장을 나올 때야 토해냈고, 라더는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연신 문질렀었다. 그렇게 장례식은 끝났다. 마을 어른들은 대부분 참가하지 않았고, 해양동아리를 제외하곤 그나마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몇이 찾아온 게 전부였다. 애초에 작은 마을이라 참가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신문 한켠에 실릴 가치도 없는 죽음이어서인지, 아니면 무언의 약속이라도 했는지. 초라하게 치뤄진 장례식은 3일도 채우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그 후 각별 오빠가 어디로 갔는지는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각별. 이제는 주인 없는 이름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17살. 사정으로 중학교를 1년 꿇음. 그 짧디 짧은 17년 평생을 이 자그마한 섬마을에서 살아온 사람. 바다를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동경한. 어쩌면 바다 그 자체가 되기를 선택했을지 모르는 사람. 바다와 청춘이란 단어를 좋아해서, 바다와 청춘이 닮았다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러니까, 우리 해양동아리 부장.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어디선가 쿵쿵 하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해가 쨍쨍한 한낮인데도 이상하게 졸렸다. 누가 눈꺼풀을 강제로 잡아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막기 위해 베개로 머리를 감쌌다. 그제야 눈꺼풀에 가려진 시야가 완전히 어두컴컴해졌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 속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느샌가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
“나, 여름방학에 뭍으로 전학 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늘 그렇듯 바위에 걸터 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는 각별 오빠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빠는 덤덤했다. 푸른 바다를 담은 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깊게 일렁였다. 꼭, 꿈을 꾸는 것처럼.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전학. 매년 학교에서 들었던 단어였지만, 각별 오빠의 입에서 나오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다른 애들한테도 얘기 했어?”
“아직. 전학가는 건 방학 끝나기 직전이거든. 어차피 우리 내일 만나서 놀 거니까. 너한테만 미리 얘기해주는 거야.”
“안 그래도 우리 동아리 인원 없는데, 부장까지 전학 가면 어떡하나…….”
“그러니까 너한테만 미리 얘기해준 거잖아. 2학기부터 부장 네가 해야 하니까.”
각별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람에 검은빛 머리카락이 잔잔히 흩날렸다. 여전히 오빠는 미소짓고 있었다. 어딘가에 홀린 듯 멍한 눈동자가 시선을 잡아 끌었다. 각별 오빠.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자 오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찬 탓인지, 여름인데도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울 방학에 놀러와. 우리가 뭍으로 갈 수는 없잖아.”
“글쎄, 바쁘면 못 올 수도 있지만 노력해볼게. 우리 후배들 얼굴 봐야하니까. 잊어버리면 큰일 나.”
“설마. 몇 년을 부대꼈는데 그렇게 금방 잊어버리겠어?”
“농담이야, 농담.”
장난스러운 웃음이 오빠의 입가에서 터졌다. 왜인지 따라 웃어야 할 것만 같아서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보며 깔깔대다가, 각별 오빠는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 이래가지고 해양동아리 떠나기 싫은 건데.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문득 각별 오빠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던 것은 어디가고 감정 하나 묻어나지 않는 표정으로. 그저 멍하니,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가만히.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의 눈을 따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서로 채도가 다른 푸른색이 잔잔히 일렁였다. 바람소리 가득한 침묵이 울려퍼지고. 마침내 각별 오빠는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움직였다. 잠뜰아. 나는 바다가 참 좋아. 부드럽고도 잔잔한 미소가 각별 오빠의 얼굴에 번져갔다.
“바다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잖아.”
차가운 액체가 뺨에 닿았다. 동시에 높게 솟아오른 물기둥이 얇은 무지개를 자아냈다가 떨어졌다. 이상하게 눈이 따가웠다. 몇 번 눈을 비비다가 그것이 바닷물이 튄 탓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각별 오빠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웃고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황급히 바위 밑 바다로 시선을 내리자. 그곳에는 물 밑으로 가라앉는 각별 오빠의 모습이 흐리게 얼룩져 있었다. 자그마한 공기방울이 수면으로 올라와 톡톡 터졌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새하얗게 부서져내렸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을 깜박이는 사이, 그 얼룩은 푸른색에 완전히 잠겨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이 차가웠다. 어두컴컴한 시야 속, 뻗은 손에 부드러운 이불이 잡혔다. 꿈이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참아왔던 숨을 터트렸다. 갑자기 많은 공기가 들어온 탓인지 먼지가 목에 달라붙어 따가웠다. 억지로 기침을 뱉었다. 폐가 뒤집힐 것처럼 세게, 삼켰던 모든 것을 뱉어내기라도 할 것마냥 기침을 했다. 기침은 눈꼬리에 매달렸던 눈물이 떨어졌을 즈음에야 그쳤다. 어느새 창 밖에는 아침해가 희미하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유 모르게 눈이 따가워 손으로 비볐다. 꼭 바닷물이 들어간 것처럼. 몇 번이나 깜박여도 따가운 게 가시지 않아 결국 눈물을 흘렸다. 손으로 슬쩍 눈물을 닦았다. 속눈썹 한 가닥이 묻어났다.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명 꿈에서는 바닷물이 눈을 따갑게 눌렀었는데. 꿈에서 깼을 때는 웬 가느다란 속눈썹만이 눈을 찌르고 있었다. 문득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와 무릎을 끌어안았다. 꿈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을 느리게 맴돌았다. 각별 오빠가, 뛰어들었어, 바다로, 그 끝없이 푸른 물 속으로. 조각난 말들이 어설프게 짜여져 문장으로 튀어나왔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던데, 지금 떠오른 장면들은 분명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다. 사실 각별 오빠가 사라진 것이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충격을 받더라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실이 있었던 건지. 애써 서러움을 누르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조용한 해양동아리 반톡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오전 10시까지 해랑카페로 집합.
각별 오빠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싫어했다. 현실적인 이야기와 논리적인 토론을 자주 펼치쳤다. 예지몽이라던가 마법세계 따위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오빠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 오빠의 사고를 쫓기 위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쥐었다. 꿈이지만 꿈이 아닌 그날의 장면을 손에 쥐고. 겨우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내밀었다. 이상하게 눈이 따가웠다. 이번에는 속눈썹이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페는 조용했다. 덕개는 오늘도 불참, 라더는 아직 자고 있는 건지 카톡을 보지 않았고, 공룡이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조금 늦게 온다고 답했다. 그 덕분에 10시에 카페에 모인 건 나와 수현이뿐이었다. 수현이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카운터로 향했다. 단정하게 정리된 새까만 뒤통수에 대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는 짤막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누나.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덕개는 안 온다 했고, 공룡이는 늦는다고 했어. 라더는 나도 모르겠다.”
“걔네 세 명은 주문 안 해도 되겠네. 그럼 딸기 라떼 하나, 초코 라떼 하나, 레모네…….”
수현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헛기침을 뱉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레모네이드. 각별 오빠가 자주 마시던, 오빠의 눈동자처럼 노란빛을 띠던 음료. 수현이는 어색하게 메뉴판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딸기 라떼랑 초코 라떼 한 잔씩이요. 테이크아웃으로. 지갑에 있던 돈을 대충 세보니 7000원. 천원짜리 다섯 장을 수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가게를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뺨에 부딪혔다. 희미한 짠향이 이곳이 섬이라는 걸 알려주듯 코를 스쳤다. 누나, 우리 어디로 갈 거야. 높낮이 없는 의문문이 귀에 닿았고, 나는 슬쩍 수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한 갈색의 음료가 수현이의 플라스틱 컵안에서 흔들렸다.
“그 바위로 가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각별 오빠가 좋아하던 곳 말야.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딸기 라떼와 함께 삼켰다. 수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애초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위는 그 바위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그렇게 흔하고 널린 바위 중에서도 각별 오빠가 그 바위만을 좋아한 까닭을 우리는 아직 몰랐다.
바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덜대는 출입금지 테이프만이 간신히 바위 끝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수현이는 슬쩍 무릎을 굽히더니 테이프를 떼어냈다. 테이프는 힘없이 떼어졌다가, 수현이가 손을 놓자마자 바다 쪽으로 휘날리듯 떨어졌다. 구태여 말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테이프는 보여주기 식 일처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기도 했고.
바위에 앉자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가 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어쩌면 오늘이 파도가 거센 날일지도 모른다. 꼭 각별 오빠가 사라졌던 날처럼. 수현이는 그나마 덜 젖은 곳을 골라 앉았다. 바위 위에 있던 모래알들이 바다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래서 누나, 할 얘기가 뭔데?”
“……사고가 아니었어.”
어금니 사이에서 얼음이 잘게 부서졌다. 빨대에서 입안으로 밀려들어온 단맛이 혀를 자극했다. 뭉개진 딸기 과육을 얼음 부스러기들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꿈에서 맞았던 바닷물만큼이나 차가운 느낌이었다. 수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물린 입에서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환청이 들릴 것만 같았다. 바람 탓에 수현이의 초코라떼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달기만 한 음료를 입에 머금은 채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도 우리는, 나는. 각별 오빠와 나란히 앉아 마주보고, 서로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며…….
“뭐야. 갑자기 왜 잡아, 누나?”
“무서워서.”
“뭐가 무서운데? 아, 각별형이 여기서 미끄러져서…….”
“……각별 오빠는 미끄러진 게 아니야.”
숨이 막혔다. 내뱉는 말이 목구멍을 틀어 막는 기분이 들었는데도. 혀는 부지런히 해야 할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스스로 뛰어내린 거지.”
파도 소리가 귀를 가득 메웠다. 어느새 텅 빈 플라스틱 컵에서 메마른 단내가 피어올랐다. 수현이는 말이 없었다. 초코 라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가만히 수현이의 눈을 응시했다. 주황빛 눈동자가 수면에 비친 노을처럼 일렁였다. 수현이 눈은 꼭 바다 같아. 언젠가 각별 오빠가 중얼거렸던 말을 곱씹으며 수현이를 잡아당겼다. 눈동자 속 바다가 크게 흔들렸다.
“뭔가 잘못됐어. 잘은 모르겠지만,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건 확실해.”
각별 오빠는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각별 오빠가 아니고, 각별 오빠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지만. 모르고 지내 온 시간보다 더 많은, 서로를 알고 지내 온 시간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설렁 바다가 정말로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고 한들. 그렇게나 좋아하던 청춘의 반도 끝마치지 않은 사람이 기꺼이 남은 삶을 바다에 바칠 리가 없었다. 바다를 동경하는 것과 바다가 되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그러니까, 한 번 찾아보자.”
왜 각별 오빠가 바다가 되어야만 했는지. 바다가 사람을 홀린다는 건 또 무슨 얘기인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작게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라더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 방금 일어났는데 지금이라도 갈까? 지금 시각은 11시. 슬슬 공룡이가 올 시간이었다. 응, 그럼 바위로 와.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곧 알겠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네 명이서 앉았지만 바위는 여전히 넉넉했다. 두 명이 더 앉아야만 꽉 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으로 바위 표면을 더듬었다. 여전히 축축했지만 미끄럽지는 않았다. 각별 오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 후. 라더는 말이 없었고, 수현이와 공룡이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간간히 들리는 대화에서 각별 오빠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바다에 관련된 단어만 몇 번 등장할 뿐이었다. 슬쩍 라더의 어깨를 두드렸다.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누나, 무슨 일이야. 라더의 눈동자가 느리게 일렁였다.
“아니,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디로 갈 건데?”
“글쎄. 나도 모르겠어. 일단 각별 오빠네 집부터 가려고.”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젖은 부분이 찝찝하게 느껴졌다. 라더는 별 말 없이 몸을 일으켰고, 수현이와 공룡이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위에서 나오기 직전.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바다는 평소보다 훨씬 푸른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도 어서 여기로 뛰어들라는 듯. 파도를 타고 잔물결이 길게 퍼져나갔다.
실례합니다. 각별 오빠랑 같은 동아리인데요…….
초인종을 눌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높게 울려퍼지는 소리만이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렸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나봐. 수현이가 중얼거렸다. 이유 모를 음산함이 피부 위를 스쳐갔다.
“내일 다시 올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잖아.”
“잠깐만. 저기, 문…… 열려 있는 것 같은데?”
라더는 더듬대며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대문이 조금씩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대문의 틈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첩이 내지르는 소리도 점점 높고 따가워지고 있었다. 경첩의 비명소리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마침내 대문은 활짝 열려 집의 모습을 여과없이 내보였다. 감춰지지 않은 날것의 풍경이 눈을 가득 채웠다.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피부를 껴안던 음산함의 정체가 선명해졌다. 각별 오빠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각별 오빠의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이었다. 억지로 심호흡을 하며 난장판이 된 마당을 지나쳤다. 그리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이번에도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안을 보여주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거실. 눅눅한 먼지 냄새가 훅 풍겨왔다. 뒤따라온 수현이와 공룡이, 그리고 라더의 떨리는 호흡이 공기를 울렸다.
“……뜰 누나. 각별 형 뭍으로 이사간다고 했었지. 혹시 언제 이사간다고 했는지 들었어?”
“들었지. 방학 끝나기 직전이라고 했어. 아니, 분명, 이렇게 빨리 이사간다고는 안 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분명 일러도 다음달에야 이사간다던 집이 일주일도 안 되어 떠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훌쩍 떠나버릴 수가 있는지. 애초에, 이렇게 작은 섬마을에서 누군가 이사간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었다. 애써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두통을 억눌렀다. 상황을 이해하려 억지로 돌린 사고회로가 불타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사고회로를 멈춰세우는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고요하고 낮지만 어딘가 모르게 떨리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각별 오빠 방문 앞에 서 있는 라더가 보였다.
“여기, 각별 선배 방으로 와봐.”
“왜. 거기에 뭐라도 있어?”
“……여기는 아무것도 사라진 게 없어.”
꼭 이 방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라더는 조금 머뭇대며 덧붙였다. 슬쩍 라더의 어깨 너머로 엿본 방은 전에 본 것과 다를 바 없이 깔끔했다. 여전히 각별 오빠가 썼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옷걸이에는 학교 교복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라더는 무언가에 홀린 듯 방으로 발을 옮겼다. 수현이와 공룡이도, 조심스레 발을 떼기 시작했다. 둘을 뒤따라 각별 오빠의 방에 들어서려는 순간.
마음대로 방에 들어가지 말랬잖아.
문득 각별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에 있는 건 텅 빈 공기 뿐이었다.
무언가 단서가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오빠의 방은 평범했다. 흔한 중학생의 방. 문제집이 꽂혀 있고, 방학식이라며 바리바리 싸들고 온 교과서가 있었으며, 하다못해 서랍까지 뒤졌는데도 별 다른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끽해야 며칠 쓰다만 다이어리 하나가 전부였다. 공룡이는 두근대는 표정으로 다이어리를 펼쳤고, 시시한 내용만 적혀 있다며 실망한 표정으로 다이어리를 닫았다. 그러니까, 꼭 평소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처럼 굴었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를 애써 가라앉히려는 것마냥. 수현이는 공룡이를 슬쩍 흘겨보다가, 별 다른 말 없이 그저 오빠의 쓰러진 책가방만을 다시 세웠다. 생각해보니 수현이가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바위에 있을 때만 해도 잔잔하게 말을 내뱉었던 수현이는. 각별 오빠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마냥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어라 말을 걸까 고민하다가 곧 그만두었다. 애써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것보다 스스로 뱉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흘러. 각별 오빠의 방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야 수현이는 겨우 말을 꺼냈다. 방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입술이 달싹였다.
“……나, 여기 더 못 있겠어.”
“왜 그래, 괜찮아?”
“모르겠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속이 너무 울렁거려. 토하고 싶어.”
라더는 다급히 수현이의 등을 토닥였다. 누나, 우리는 잠깐 나가 있을게. 라더의 말에 별 말 없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더의 팔에 이끌려가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주황빛 눈동자가 시선을 스쳤다. 그 반짝임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 둘은 현관문 너머로 사라졌고. 희미하게 울음을 토해내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각별 오빠의 집에서 나와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 수현이는 붉어진 눈가를 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라더는 괜히 수현이의 눈치를 살폈으며, 공룡이는 묵묵히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곁눈질해서 본 화면에는 해양동아리 단톡방이 띄워져 있었다.
“아, 나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해.”
갈림길에 이르러 발을 멈췄다. 수현이와 공룡이, 그리고 라더의 집은 직진, 우리집은 오른쪽으로 가야 나왔다. 괜히 발끝에 채인 돌을 툭툭 찼다. 늘 갈림길에서 헤어져 혼자 걸었던 길이지만 오늘따라 혼자 걷고 싶지 않았다. 바다 끝까지 잠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써 미소를 띤 채 작별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우리 내일도 만날 거지?”
덕개가 내일은 나올 수 있대. 수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눈가를 문질렀다. 바다에 번진 노을처럼 붉어진 눈가가 시야에 잡혔다. 느리게 셋의 얼굴로 시선을 끌어올렸다. 어디선가 바다내음이 풍겨왔다.
“그럼, 만나야지.”
생각도 하기 전에 혀가 마음대로 움직여 말을 뱉어냈다. 어쩌면 생각 속에 숨어 있던 말이 그대로 튀어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만날 거야?’하며 느릿하게 입을 움직였다. 짠물에 푹 젖은 말이 늘어졌다.
“나는 괜찮아. 공룡이는?”
“당연히 나도 괜찮지.”
바람에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갈색, 검정색, 빨간색이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휘날렸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아침 10시에 해랑 카페에서 만나는 거야. 아침에 보냈던 문자를 다시 한번 더 읊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고개가 흔들렸다. 그럼 내일 봐.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발을 옮겼다. 길게 뻗은 그림자가 발을 뒤쫓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눈을 떴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각별 오빠가 서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바위 끝에 선 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오빠의 눈을 마주보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깊게 일렁이는 눈은 수면에 비친 정오의 햇볕마냥 노란빛으로 반짝였다. 각별 오빠. 어렴풋한 목소리로 각별 오빠의 이름을 불렀다. 이유 모를 기시감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거기 있으면 위험해.”
한참 만에 내뱉은 말은 겨우 그것 하나뿐이었다. 각별 오빠는 눈꼬리를 휘어 웃더니 작게 입을 움직였다. 괜찮아, 바다는 위험하지 않아. 어릴 적부터 바다의 위험성에 대해 질리도록 들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가만히 각별 오빠를 응시했다. 가슴 어딘가에 얹힌 말들이 튀어나오지 않아 목구멍을 쿡쿡 찔렀다. 무언가 잘못됐다. 뺨에 닿는 바람도 코를 스치는 바다내음도 마치 바다를 마주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직감은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가짜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조심스레 각별 오빠의 눈에서 바닥으로 시선을 끌어 내렸다. 얹혔던 말들이 단어가 되고 글자가 되어 입안에서 메아리치다가 다시 삼켜졌다.
그러니까, 분명 이 상황을 예전에도 본 것 같은데. 그때는 오빠가…….
뒷말은 풍덩, 하는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황급히 바다로 눈을 돌렸다. 점점 멀어져가는 각별 오빠의 뒷모습을 열심히 갉아먹는 푸른색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오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빠의 손 대신,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난 파도의 파편이 부딪혔다. 분명 이것은 꿈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꿈이 아니었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떠올린 것은 흐릿해져가는 바닷속 얼룩이었고. 떠올린 장면 속에서 나는 손조차 뻗지 못 한 채 그저 얼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애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라더가 미리 주문해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테이블 위에서 반짝였다. 고마워. 짧은 감사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빨대를 타고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커피의 맛이 썼다. 설탕 넣을 걸 그랬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일어나기 귀찮아서 그냥 마시기로 했다. 혀에 쓴맛이 맴돌아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사고회로가 굳어 있는 탓인지. 어제 꾼 꿈이 머리를 거세게 조여왔다.
“누나.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별 거 아냐. 그냥, 꿈자리가 사나워서.”
다음 말은 구태여 내뱉지 않았다. 애초에 내뱉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각별 오빠가 내 앞에서 또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어. 꿈에서도 그걸 막지 못 했어. 오빠가 뛰어내린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 하고, 이번에도 각별 오빠가 사라지는 걸 지켜보기만 했어. 그 이야기를 덤덤히 늘어놓을 만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녹은 얼음 탓에 묽어진 라떼를 삼키며 수현이가 물었다. 어제와 달리 눈가에는 붉은기가 싹 사라진 채였다. 얼음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젖은 공기를 타고 울렸다. 잠시 답 없는 침묵이 흘렀다. 막상 모이긴 모였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또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꼬인 의문이 머릿속을 빙빙 돌고 또 돌았다. 한참만에 덕개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수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저기,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각별 선배가…… 바다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고 했지?”
“응. 그때 그렇게 말했었어. 근데 그건 왜?”
“백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혹시 도서관에 바다가 사람을 홀린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해서…….”
각별 선배가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덕개의 뒷말을 가로채듯 공룡이가 덧붙였다. 덕개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고. 나는 그런 덕개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떼어냈다. 도서관. 섬에 단 하나뿐인 도서관은 늘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가끔 독서록을 쓰러 온 학생 몇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치고 앉아 있는 어른 몇 명이 전부였다. 나는 잠시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갔던 때를 떠올리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가자. 이제는 물맛이 더 진해진 아메리카노의 마지막 한 모금을 삼켰다.
도서관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고, 이제 겨우 예닐곱살 쯤 되었을 어린 아이 몇만이 동화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괜히 몇 번 기침을 뱉었다. 도서관의 조용한 공기가 답답할 정도로 어색했다.
“뭐부터 찾아볼까? 이 넓은 곳에서 어디 먼저 찾아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검색이라도 하고 가는 게 낫지 않아? 무식하게 이 넓은 곳을 다 뒤질 수는 없잖아. 야, 거기 도서관 오자고 제안한 사람. 뭐 좋은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며 공룡이는 슬쩍 덕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동시에 다른 눈들도 모두 덕개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레 모인 시선에 덕개는 어,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머뭇대는 모양새로 말을 내뱉었다.
“2층 제일 구석 책꽂이에 바다와 관련된 책들만 모아놨다고 들었어. 정확히는 우리 섬의 바다.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니 다섯이서 찾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오, 덕개 너.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대?”
“공룡 형처럼 맨날 놀러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모르지. 나처럼 도서관에 다니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거라고!”
“덕개야. 죽고 싶어?”
덕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메롱. 놀리듯 혀를 한번 내밀고서는. 2층으로 뛰어올라가는 발소리가 도서관 안에 크게 울렸다. 따라 뛰기 시작한 공룡이의 뒤를 수현이도 성큼 쫓기 시작하고. 라더의 목소리가 둘의 뒤로 내던져졌다.
“야 도서관에서 뛰면 어떡해! 너네가 애냐?”
“라더야. 너도 도서관인데 소리 지르지 마.”
괜스레 라더의 팔을 툭툭 치자 라더는 머쓱한 듯 웃었다. 어쩐지 몸에 긴장이 풀려 헛웃음이 났다. 마냥 가라앉아 있는 건 역시 해양동아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각별 오빠도 분명 이걸 원했을 테니. 각별 오빠. 입안으로 조심스레 이름을 굴려보았다. 혀끝에 닿은 글자가 따가웠다.
“……그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나랑 덕개가 찾아볼게. 그 다음은 라더랑 공룡이. 저기는 뜰 누나 혼자 할 수 있지?”
“당연하지. 끽해봐야 다섯 권도 안 되는데.”
나는 옅게 웃으며 손으로 표지를 쓸었다. 손가락에 진득하게 먼지가 묻어났다. 으, 먼지. 나도 모르게 제멋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와, 뜰 누나 쪽에 책들 먼지 봐. 얼마나 관리를 안 한 거야…… 몇 년 묵힌 먼지 같은데.”
“원래 이쪽은 잘 관리를 안 하더라. 뭔가 사정이 있나봐.”
덕개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종이가 서로를 스치는 소리, 표지가 닫혔다 열리는 소리. 도서관에 걸맞는 소리와 이따금 터지는 재채기 소리만이 간간히 울려퍼질 뿐이었다. 공기를 떠도는 먼지를 삼키며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먼지 탓에 목이 칼칼했다. 물 한 잔 마시고 올래? 수현이가 물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남은 책은 두 권 남짓. 그 중 푸른 표지의 책을 들어 펼쳤다. 새파란 바다 그림이 눈을 가득 메웠다.
순간.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침묵을 뚫고 울려퍼졌다. 조심스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책을 붙든 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덕개의 모습이 보였다.
“……형들, 그리고 누나. 이것 좀 봐봐.”
“왜 그래? 거기 뭔 내용 있어?”
“옛날에 한 인어가 살고 있었다…….”
**
그 인어는 인어 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어였다. 바다는 아직 어렸던 인어를 따스하게 품어줬고, 인어는 그런 바다를 부모처럼 여기며 자라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인어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하나 남은 그 인어마저 탐내기 시작했다.
인어의 살을 먹으면 영생을 살 수 있다지.
인어의 눈물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진주라지.
인어의 피는 어떠한 병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지.
그렇지만 이제 다른 인어들은 죽어버렸어.
하지만 아직 인어가 한 마리 남았잖아?
사람들은 바다로 눈을 돌렸다.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다. 인어는 그런 바다 속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인어는 죽었다.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바다는 인간들이 인어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했고. 막지 못 한 자신을 자책하다가 그 중 하나의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다음날 인어를 죽이는 데에 가담했던 사람 한 명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그런 인간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바다는 미리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다는 섬의 인간들에게 저주를 내렸다.
저주는 섬의 사람들을 홀렸다.
바다는 저주에 홀려 스스로 뛰어내린 인간들을 잡아먹었다.
**
“……바다가 사랑하는 인어를 죽인 사람들은 여전히 저주에 묶여 있다.”
덕개는 거기까지 말하고 책을 덮었다. 탁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저주. 사람을 홀려 바다로 뛰어들게 만드는 저주. 머리가 지끈거려 무심코 신음을 내뱉었다. 이해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러니까, 각별 오빠가 그 저주에 홀렸다는 거잖아. 겨우 내뱉은 말이 조각나 어지럽게 흩어졌다.
공룡이는 황급히 덕개가 들고 있던 책을 빼앗았다. 인어, 저주, 그리고 각별 선배. 뭉개진 발음이 공룡이의 입에서 중얼중얼 흘러내렸다.
“말도 안 돼. 세상에 이런 게 어디 있어. 각별 선배가 저주 때문에 죽었다니.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으라고?”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도 많으니까. 솔직하게 이런 저주가 아니면…… 각별 형이 바다에 뛰어들 이유도 없고.”
“그래도 이게 뭐야. 야, 황수현. 너는 고작 그런 이유로 각별 선배가 죽었다는 걸 믿을 수 있어?”
“말이 안 되는 건 나도 인정해. 그렇지만 이 이야기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난 못 믿어.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 있었던 사람이, 그렇게 잘 살았던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저주로 죽었다는 걸 어떻게 믿냐고.”
“……공룡아.”
나는 아직도 각별 형이 죽은 게 믿기지가 않아.
수현이는 느리게 공룡이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수현이의 눈꼬리에서 무언가 반짝였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곧장 수현이가 소매로 문질러버려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각별형이 그날 저녁에 카톡 준다고 했거든.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그랬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뜰 누나한테 전화가 왔어. 각별 형이 바다에 빠졌다고. 그걸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이 죽었대. 같이 웃고 떠들던 형이 죽었대…….”
라더는 슬쩍 수현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괜찮아,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옅게 들렸다. 이제 호흡이 거칠어졌는데도, 수현이는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기침이 수현이의 목에서 터져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믿을래. 안 그러면 각별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평생 믿지 못할 것 같아.”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들은 것처럼, 청량하면서도 무언가가 깊게 빠져드는 소리.
도서관을 나오고서도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목적지는 몰랐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입은 꾹 다문 채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을 뿐이었다. 바다의 저주가 어째서 각별 오빠에게 닿았는지는 몰랐다. 왜 하필 오빠여야 했는지도 몰랐다. 인어를 죽인 것은 인간이 맞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인어를 죽인 인간은 아니었다.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 하겠지만. 그것이 한창 청춘에 들어선 각별 오빠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한참을 떠돌던 발이 멈춘 것은 바닷가 앞에서였다.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해졌을 바다내음이 코를 스쳤다. 얘들아, 우리 저 바위에서 쉬었다가 가자. 느리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바위를 가리켰다. 각별 오빠가 좋아하던 바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쉬기 좋게 평평하게 생긴 바위였다.
바위는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덕개가 넘어질 뻔한 걸 잡아줬더니, 덕개는 누나도 조심하라며 옅게 웃어주었다. 어쩐지 그 미소가 낯설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덜 젖은 곳을 골라앉아도 바지가 젖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참. 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뭔데. 뜰 누나?”
“……어제 꿈에서 각별 오빠가 나왔어.”
말을 내뱉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번이 두 번째야. 각별 오빠가 내 앞에서 바다로 뛰어드는데. 나는 그걸 말리지도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어. 시야가 이상하게 흐렸다. 눈을 문질러보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꼭 안개라도 낀 마냥.
“이제 그만 갈까? 너네 저녁 먹어야지. 배고프겠다.”
“저녁 먹고 들어가면 안 돼?”
“뭐 먹을 곳은 있고?”
“그건 그렇긴 한데, 집에 가기 싫단 말야.”
덕개는 괜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집에 혼자 있는 거 싫어. 동아리가 끝날 때마다 내뱉던 덕개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투정 같기도 했지만. 그런 덕개의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평소 덕개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정체 모를 무언가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슈퍼에서 뭐라도 사 먹고 들어가자. 다른 셋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기 바위 엄청 미끄럽다. 야 황수현. 나 좀 잡아 줘.”
이러다가 넘어지면 큰일나겠다, 그치.
“공룡아, 손 똑바로 잡아. 너 무거워서 힘들단 말야.”
재수 없게 그런 소리 하지 마. 무섭다고.
“내가 무겁긴 뭐가 무겁냐! 네가 똑바로 안 잡고 있잖아.”
어, 잠깐만, 야 파도 오잖아!
“알았어. 하나 둘 하면 일으켜준다. 하나, 둘…….”
수현아! 공룡아!
무의식으로 손을 내밀어 수현이의 팔을 잡았다. 갑자기 바위에 크게 부딪힌 파도가 산산조각나 바위 위로 흩어졌다. 미끌, 수현이의 발이 갈 곳을 잃은 것과 동시에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간신히 수현이를 끌어당겼다. 바위 바로 끝에서 멈춘 몸이 아슬아슬하게 위로 올라갔다. 공룡이는 그저 가만히 굳어 있었고. 라더는 넘어진 수현이를 다급히 살폈다.
“수현아 괜찮아? 안 다쳤어?”
“어,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파도가 왜 오고 난리야. 뜰 누나가 안 잡아줬으면 공룡이랑 너희 둘 다 바다에 빠질 뻔…… 아니다. 그래도 다행이네. 멍은 안 들었어. 일어날 수 있겠어?”
“일어날 수 있어. 괜찮아. 좀 놀라가지고…… 뜰 누나는 파도 올 거 어떻게 알았대?”
고마워. 수현이는 그렇게 덧붙이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각별 오빠가 바다로 빠져들기 직전 지었던 미소처럼.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무사하니까 다행이지.”
수현이와 공룡이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유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둘이 바다에 빠지는 장면이 스쳐지나갔다는 것도, 이전에 겪었던 것마냥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도.
어쩌면 오늘이 처음 맞는 오늘이 아닌 것 같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웃는 게 전부였다. 라더와 함께 수현이를 일으켜주었다. 하늘 끝에서 번지는 붉은빛이 수현이의 눈동자마냥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내일은 1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는 거야. 각별 오빠가 남긴 물건들을 한 번 찾아보자. 그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모래사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네 개의 그림자가 우리의 뒤로 길게 늘어졌다.
**
어제도 각별 오빠가 바다로 뛰어드는 꿈을 꿨어. 너무 생생해서 그게 꿈이 아닌 줄 알았지 뭐야. 오빠의 손목을 잡았는데 따뜻했어. 어쩌면 따뜻한 게 아니라 뜨거웠던 걸지도 몰라. 그 짧은 순간에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어쨌거나 오빠의 손목을 꽉 잡았지. 그렇지 않으면 오빠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저 깊은 바닷속으로 영영 가라앉을 것만 같았어. 오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 잔물결 같은 미소 때문인지 이상하게 울컥했어. 가면 안 돼.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에 오빠는 웃었고, 나는 조금 더 오빠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지. 그때 오빠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입이 움직였는데도 파도 소리 탓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노이즈가 잔뜩 끼어버린 것처럼 말야. 오빠는 내 손 위에 손을 올렸지. 그리고 힘을 주어 떼어냈어. 분명 나는 한 번 더 오빠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붙잡지 못 했어. 무서웠나봐. 아니면 오빠의 눈이 너무나 푸르러서일지도 모르고. 이상하지. 오빠의 눈은 노란빛이잖아. 수면에 비친 태양을 색으로 정의한다면 분명 오빠 눈동자의 이름을 붙였겠지. 그렇지만 그때 본 오빠의 눈은 분명 푸른색이었어. 그렇게 보인 건지 정말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는 잔잔하게 웃은 후.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을 중얼거렸지.
잠뜰아. 바다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잖아.
당연히 알지. 어떻게 내가 모를 수 있겠어. 그런데 꿈속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그래서 멍하니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솟아오른 물기둥과 뺨에 튄 바닷물이 느껴지고나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어. 아, 이번에도 나는 오빠를 구하지 못 했구나.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야. 오늘은 학교에서 만나기로 했어. 해양동아리니까. 어쩌면 오빠의 기록이 더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지만 이제 오빠는 여기 없네.
아침이 밝아오고 있어. 이제 애들이랑 만날 시간이야.
**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두 명쯤은 운동장에서 놀 법한데도 비둘기 몇 마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덕개는 미리 창문이 열리는지 확인해봤다며 웃고 있었고. 수현이와 라더는 약속 시간에 딱 맞게, 공룡이는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막 일어난 듯 졸린 티가 역력한 모습이었다.
“학교가 1층밖에 없어서 편하네. 창문만 열려 있으면 마음껏 들어갈 수 있고.”
“도둑 들기 좋겠다는 얘기 아냐?”
“그런가? 그래도 뭐, 덕분에 우리도 몰래 들어갈 수 있으니까.
괜히 쌤 눈에 띄면 골치 아프잖아. 작게 덧붙이며 창문을 열었다. 익숙한 교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창틀을 넘었다. 오랜만에 맡는, 종이와 나무 향이 뒤섞인 특유의 교실 냄새가 훅 풍겼다.
“뜰 누나. 각별 선배 번호 몇 번인지 알아?”
“아마 3번일걸. 응, 거기 사물함 맞아.”
“자물쇠 걸려 있는데?”
“비밀번호야 뻔하지. 0423 해봐.”
라더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자물쇠를 돌렸다. 0, 4, 2, 3. 마지막 숫자를 맞추는 것과 동시에 철컥 소리가 났다. 아, 열렸어. 사물함의 경첩이 삐걱거렸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면 녹이 더 잘 슨다던데. 그런 탓인지 경첩의 삐걱 소리는 내게, 어쩌면 우리에게 있어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소리가 없으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물함 안에는 공책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지에 바다가 그려져 있는 자그마한 공책이었다. 서랍과 사물함을 다 비우라는 공지는 있었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각별 오빠도 방학식이면 늘 사물함에 교과서를 쑤셔넣곤 했다. 아무리 전학을 간다고 해도 오빠라면 자그마한 선물 하나쯤은 놔두고 갈 것이라 생각했고. 예상대로 사물함은 비어 있지 않았다.
“펼쳐봐. 안에 뭐 적혀 있어?”
“기다려봐. 천천히 읽어보자. 어쩌면 그냥 편지일지도 모르잖아. 저주랑은 관련 없이.”
“그래도, 각별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니까.”
수현이의 말에 괜스레 입술을 깨물었다. 각별 오빠가 남긴 마지막 물건, 마지막 흔적. 공책을 펼치자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문단이 나누어져 있는 걸 보아서는 일기처럼 보였다. 작게 심호흡을 뱉은 다음.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혼자 바다에 갔다…….
**
바다는 늘 묘한 기분이 든다. 푸르기만 한 것 같은 바다가 하늘색에 따라 다른 색으로 물들여지는 걸 지켜보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가 좋다. 구태여 이유를 찾지 않아도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최근 바다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도 바다는 좋아했지만, 최근 들어 바다에만 가 있는 기분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뛰어들고 싶어지는 충동이 인다. 누군가 어서 뛰어들라며 속삭이는 느낌. 그렇지만 그건 바다가 파랗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청춘을 쫓고 싶어 하는 것처럼 파란 물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건 정상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바위에 앉아 있고. 바다는 내 밑에서 파도를 부수어내고 있으니.
바다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던데. 어쩌면 그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봐봐. 지금도 나를 부르고 있잖아.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건 정상이 맞다 정상일 수밖에 없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중 그런 충동에 휩쓸려 본 적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보라고 해 어떻게 바다를……
요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한동안 바다에 가지 말아야지.
바다가 나를 불렀다. 어서 이리로 오라고 했다. 그걸 말하는 바다의 목소리는 참 슬퍼보였다. 왜 슬퍼, 너는 나를 잡아 먹는 건데. 나를 먹어서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어에게 사과해야지. 인간들에게 복수해야지.
바다야 사실 너는 인어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왜 그랬어?
엄마가 방학 직전 뭍으로 이사간다고 그랬다. 싫다고 말하니 내 상태가 좋지 않단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해요. 아니 멀쩡하지 않아요. 바다가, 바다가 자꾸 내 머릿속에서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어. 바다 아니 인어가 속삭이고 있어요 바다로 뛰어들래요 뛰어들어서 푸른 물을 삼키고 푸른 물에 잠기래요 나는 바다가 되고 싶은데 이렇게 하면 바다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다는, 바다는.
바다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고 했잖아. 바다야. 너는 그동안 어떻게 버텼니.
그렇지만 바다를 보면 나도 모르는 내가 튀어나오는 기분이라.
바다야 제발 남은 우리 아이들은 홀리지 말아줘 아니 인어야 제발 우리 해양동아리 애들은 살려줘 걔네들은 잘못 없잖아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걔네 잘못은 아니잖아 나는 내 청춘을 바다로 만들게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나는 결국 뛰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바다의 저주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니까 걔네들은 우리 애들은 청춘을 끝까지 즐길 수 있게 해 줘 언젠가 뭍으로 떠날 때 그 애들이 청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게 해 줘 그러니 인어야 제발
내가 사랑하는 후배들을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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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고개를 떨구었다. 각별 오빠는 언제부터 저주에 홀려 있던 건지. 그렇다면 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속으로만 앓고 있었는지. 어째서 바다가 아니라 인어에게 우리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 건지. 공책을 덮었다. 언젠가 들은 적 있던 오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얘들아. 나는 너희가 무사히 청춘을 끝마쳤으면 좋겠어. 아마 그때도 우리는 바위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억지로 끄집어 낸 기억 속에서 여전히 오빠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고. 분명 바다에 뛰어든 것은 오빠의 의지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러나 오빠는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바다의 저주가 오빠를 옭아매고 있었기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빠에게 주어진 결말은 하나뿐이었다.
“저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바다 말고 인어도 같이 나오는 걸까?”
“여기에 있는 부분?”
“응. 각별 선배가 꼭 바다와 대화한 것처럼 쓰여 있는데. 보면 ‘인어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인어야 우리 해양동아리 애들은 살려줘’처럼 인어에 관련된 부분이 많이 나오잖아.”
공룡이는 문장 하나하나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각별 오빠의 장례식날, 울음을 억눌렀을 때처럼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왜 인어한테…… 우리를 살려달라고 하는 거지? 저주는 바다가 내린 거잖아. 바다가 인어를 사랑해서 내린 거잖아.”
“……어쩌면 인어가 바다를 증오했을지도 모르지.”
덕개의 말에 힐끗 시선을 돌렸다. 덕개는 덤덤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 그게 무슨 뜻이야. 반쯤 잠긴 목소리로 수현이가 물었다. 옆에서 라더가 수현이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바다는 인간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설마 바다가 그런 힘 하나 없었을까. 그러니까, 일부로 인간들을 막지 않았다거나.”
“그렇다면 저주를 왜 내렸겠어. 바다가 멍청이도 아니고.”
“……그러게,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다. 만약 그랬다면 바다가 멍청이지.”
자기가 사랑하는 것 하나 못 지키는 바보. 덕개는 느리게 중얼거렸다. 꼭 누군가는 원망하는 어조였다. 각별 오빠를 죽게 만든 바다에 대한 원망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 대한 원망인지. 원망이 닿은 곳을 쫓으려다가 쓸데없는 생각 같아 그만두었다. 어쩌면 갑자기 라더가 목소리를 내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 저주에 대해 더 자세히 알 방법은 없을까? 이 내용대로라면 우리도 위험하다는 거잖아. 우리뿐만이 아니라 섬에 사는 사람들 모두 언제 홀릴지 모르는 일이고.”
“아니 잠깐만. 그보다 이 저주가 오래전부터 계속 이어졌다면 뛰어내린 사람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왜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
“……아, 생각났다.”
수현이는 느리게 입을 떼었다. 어렸을 때라 기억은 흐릿하지만, 분명 들은 적이 있어.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수현이의 말 하나하나를 사고회로에 꽂아넣었다.
“우리 섬에서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최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대. 처음부터 없던 사람인 것처럼.”
“그게 무슨 소리야? 없던 사람처럼 대한다고?”
“생각해봐. 경찰이 각별 형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치부하고,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장례식도 사흘을 못 채우고, 어른들도 대부분 안 오고. 바다의 저주를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겨우 17살 된 사람이 죽었는데?”
“책에서도 그랬잖아.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인어까지 욕심으로 죽여버렸다고. 그런 추악한 모습을 떠벌리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 말하며 수현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따라서 나도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각별 오빠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로 치부된 이유가 고작 그런 것이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게 무서워 수많은 이들의 죽음에 입을 꾹 다물고 살았단다. 분명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분노도 일지 않았다. 화가 날 가치도 없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지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그냥 울고 싶었다.
“……저기. 형들, 그리고 누나. 우리 가야 할 곳이 있어.”
“어디. 경찰서? 아니면 어른들 있는 곳?”
“그게 아니라, 도서관. 도서관에 버리는 책들 모아놓은 곳이 있거든. 그냥 버리는 책이 아니라 특별관리대상이라고 들었어. 이유야 뭐…… 뻔하지?”
어쩐지, 덕개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날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폭풍이 온 날의 바다처럼. 거칠게 일어났다가 부서지는 파도가 덕개의 목소리 위에서 날뛰었다. 덕개의 말에 느리게 고개를 까딱이며. 나는 각별 오빠의 공책을 다시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라더가 건네준 자물쇠로 잠그는 것까지 마쳤다. 각별 오빠가 왜 남의 공책을 함부로 보냐며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물론 오빠가 지금 우리를 안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오늘도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었다. 직원들은커녕 저번에 봤던 꼬마애들도 없이 텅 빈 채였다. 덕개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지하를 향해 살금살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어릴 적 기억을 더듬었다. 직원들조차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곳. 호기심에 내려가봤다가 굳게 잠긴 철문을 본 기억은 있었지만. 바로 끌려나와 크게 혼났던 것이 지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거기 잠겨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자 덕개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 비밀번호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는 그냥 주워들었다는 답이 전부였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자. 묵은 먼지 냄새가 종이 냄새와 뒤섞여 강하게 코를 찔러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지 않은 것인지 구석에는 거미줄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코를 감싸쥐었다. 발만 내디뎌도 먼지가 피어올라와 목이 답답했다. 산소가 아니라 먼지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덕개야. 너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해?”
“나는 밖에서 망 보고 있을게. 혹시 어른들 오면 안 되잖아. 책 별로 없으니까 누나랑 형들이서 찾을 수 있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개의 말대로, 대충 쌓여 있는 책들과 서류들은 한눈에 봐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 명이 읽어도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은 양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혔다. 지금까지 계속 이 방에 자리했을 침묵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상하게 각별 오빠의 집과 사물함에서 들었던 경첩 소리가 생각났다. 누군가 소리 지르는 것처럼, 따가우면서도 높게 찔러대는 소리.
먼지 섞인 공기 위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떠돌았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인어의 값, 인어를 사냥했던 과거, 어째서 섬 사람들이 뭍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지 등등. 점점 속이 울렁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억눌렀다. 입을 꾹 다문 채 눈으로 하나하나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어, 잠깐만 이거 봐봐.”
“라더 뭐 발견했어?”
“여기 바다의 저주와 관련된 게 있는데…….”
라더는 말꼬리를 흐리며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닳아 글자조차 흐렸지만, 대강 알아볼 수는 있었다. 라더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더듬대는 모양새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바다는 인어를 사랑했다. 그러나 바다는 인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자연의 섭리, 나아가 인간의 ……에 개입할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의 바다의 저주는 바다의 저주가 아니다. 바다의 저주는 사실 인어의 저주다.”
“뭐 중요한 내용은 죄다 지워졌냐? 그래도 제일 중요한 부분은 멀쩡하네.”
“……있잖아. 바다의 저주가 인어의 저주라는 게 무슨 말일까. 분명 저주를 내린 건 바다잖아.”
라더의 말을 받아 느리게 입안에서 굴렸다. 바다의 저주. 인어의 저주.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선명해지기 전에 흩어졌다. 바다는 분명 인어를 사랑했다. 그러나 인어의 죽음을 막지는 못 했다. 그리고 각별 오빠의 공책 속에서 바다는…….
“인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어.”
각별 오빠의 공책은 그랬다. 바다로 뛰어들라고 얘기하는 바다의 목소리가 슬퍼보였다고. 왜 인어를 사랑하지 않았냐고. 바다는 정말로
Written by. 도보park
Drawn by. 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