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_비속어·사망·유혈·교통사고 요소○_
_스크롤은 천천히 부탁드립니다._
2021년 2월 3일 오전 10시. 들성고등학교는 운동장부터 각종 교실까지, 쉼터부터 강당까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아, 사람 많은 거 존나 싫어. 야 그래도 막내 졸업식인데 와야지. … 그건 그래. 김각별과 박잠뜰은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아, 형들, 누나! 여기에요, 여기! 박덕개는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을 위해 와준 이들에게 위치를 표했다가 이내 소리가 너무 컸던지 주변 눈치를 보며 팔을 슬쩍 내린다. 어휴… 알았어, 갈게! 서라더와 황수현은 그런 박덕개에게 아주 크게 대답을 해주었고 정공룡은 덕개에게 같이 팔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 다 같이 강당 내부로 들어선다. 이들은 북적북적 거리는 다른 학생들을 뒤로 하고 무난한 자리를 선정해 앉았고 조금 뒤 강당의 무대가 열렸다.
지금부터, 들성고등학교 제 6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들성고등학교 대강당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퍼졌다. 크나큰 들성고 대강당에는 학교 선생님들과 제 6회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과 작년, 재작년 졸업생들, 이제 고2 고3으로 올라가는 후배들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우선, 사전에 안내한 것과 같이 1부는 졸업장 및 상장 시상식이 있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1부를 모두는 박수로 맞이했다. 사실, 지금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대략 250명 정도 되는 이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으니까. 아주 조금 특별한 일이 있다면, 박덕개가 전교생 중 5명에게 줄까 말까 한 정도의 상장을 받았다는 것. 박덕개를 볼 목적으로 온 이들에게는 꽤나 즐겁고 흥미 있는 일이었다. 이야- 우리 막내 대단한데? 리얼, 이 형은 네가 참 자랑스럽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 위를 올라가는 박덕개를 바라보며 저 멀리 서 있던 몇 명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덕개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교장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던 상장이 마침내 박덕개의 손으로 전달 받자 멀리서 우리 막내가 짱이다! 와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내릴 때 아주 조금 박덕개의 표정이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긴 했지만 별 탈 없이 상장을 받고 무난하게 제자리로 돌아온 박덕개였다. 아, 개쪽팔려. 우리는 하나도 안 쪽팔린데? 아 네네, 그러셨어요.
어느덧 졸업식을 시작하고 대략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상으로, 들성고등학교 졸업식 제 1부를 마칩니다. 1부를 끝마치는 말이 울리자 마자 학생과 학부모들, 그 외 관객들은 하나둘씩 슬슬 일어나 운동장으로 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 그러네. 김각별은 주변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바라보며 박잠뜰에게 또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박잠뜰도 지금은 별 말 하지 않고 인정했다. 사람이 정말 많긴 많았나보다. 그래, 뭐… 박덕개를 지금이 아닌,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나 볼 수 있는 것은 꽤나 귀찮은 거였을 테니까. 대강당 문을 헤집고 나간 후 생각보다 많은 시간 동안 이동했다. 그래봤자 5분 될까 말까의 정도였지만. 이들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계단을 거쳐 1층까지 달려갔다. 휘잉- 마침내 1층 중앙 문을 거쳐 밝은 운동장에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와, 2월이 이렇게 춥나. 형, 2월이니까 추운 게 아닐까. … 그런가,. 황수현과 박덕개는 쓰잘데기 없는 하찮은 대화를 계속 해나갔다. 졸업식 제 2부는 축제. 자유롭게 친구들과 작별도 하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졸업 축제이다. 한 쪽에는 학급 별로 롤링페리퍼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또 다른 한 쪽에는 먼저 졸업한 선배들 중 일부가 작은 행사들을 열고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는 공연도 진행 중이었다. 박덕개는 몇 초간 공연을 보며 넋을 놓고 있더니, 금방 롤링페이퍼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와, 나도 드디어 여기서 롤링페이퍼를 쓰는구나. 진짜, 우리 반 롤링페이퍼에 혼자 끄적였던 네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아 아니 그건 정공룡이 그랬잖아~! 박잠뜰이 박덕개를 보고 하는 말에 박덕개는 입을 삐죽였다. 자, 우리는 조금씩 둘러보고 있을게. 덕개는 반 친구들이랑 롤링페이퍼 쓰면서 놀다가 와. 그래, 고등학교 마지막 날인데 놀건 다 놀아야지. 김각별과 서라더의 말로 덕개는 반 친구들이 몰려있는 롤링페이퍼 쪽으로 달려갔다. 아, 덕개 왔다! 덕개야 이것 좀 봐봐, 존나 웃겨. 그런 박덕개는 반 친구들이 밝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슬슬 구경 가자. 근데 덕개 두고 우리끼리? 어차피 조금 이따가 다시 만나서 놀 건데 뭐. 박덕개를 제외한 이들은 롤링페이퍼 반대 방향에 있는 행사와 음식들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약 15분 동안 박덕개는 반 친구들과 함께 롤링페이퍼를 채워 나갔고 그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은 오뎅 국물을 마시며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 안 오던 사이에 새로운 거 많이 들어왔네…. 어, 재작년에 정공룡 몸개그 했던 곳 저기 맞지? 미친, 왜 그걸 지금까지 기억해. 오랜만에 찾아온 학교라 그런지 더욱 추억에 빠져들어갔다. 15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우리 이제 슬슬 돌아가자. 덕개랑 다시 만나야지. 응, 롤링페이퍼 쪽으로 가면 되겠지? 뜨거운 오뎅국물을 후다닥 모두 마시고, 롤링페이퍼들이 나열되어 있는 운동장 끝부분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야, 덕개 어디 갔냐? 몰라, 엇갈렸나. 비록 박덕개와의 동선이 엇갈리기는 했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박덕개 어디갔냐~! 라며 큰소리로 찾아다니는 이들이다. 허, 너는 또 여기에 무슨 낙서를 하는 거냐? 낙서 아니거든. 아 얘 미쳤나 봐 ㅋㅋㅋ. 나 이거 사진 찍어도 됨? 응, 찍어 찍어. …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아다니지는 않는 이들이다. 어, 저기 덕개 온다! 와아 정공룡 드디어 보이네!!! 어찌저찌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 정공룡과 박덕개는 몇 년만에 본 친구처럼 반갑다는 표정으로 달려갔다. 얘들아, 너무 시끄… 러운데? … 아. 너무 높은 텐션으로 소리쳐서인지, 생각보다 큰 소리를 내어버렸고 괜히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우리 카페라도 갈까? 좋네, 얘들아, 카페나 가자. 겨울의 온기보다 차가운 분위기를 애써 외면한 채 서라더와 박잠뜰은 이들을 데리고 들성고등학교 근처 카페로 이동하였다. 박덕개와 정공룡도 머쓱해진듯, 조용히 그들을 따라갔다.
띠링,.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까운 카페의 문을 열었다. 반짝이는 유리문을 열자 경쾌한 종소리가 이 여섯 명을 맞아주었다. 와, 이제야 좀 따뜻하네. 황수현은 양쪽 팔을 쓸어내리며 편안한 감정을 내뱉었다. 덕개, 빨리 자리 아무 데나 골라서 앉아. 음료도 알아서 시키고. 알았어, 할 거 더럽게 많네. 음료는 그냥 내가 내키는 대로 주문한다? 이들은 카페에 들어오고 나서 꽤나 시끄럽게 웅성대더니, 그러다 금방 조용하게 변했다. …. 위잉-. 조금 전 진동벨도 울렸도 가져왔고. 기본적인 세팅은 끝났다. 아까보다는 한결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여섯 명끼리 수다나 떨기로 했다. 진짜, 우리 막내 다 컸어, 고등학교 졸업도 하고. 그래, 나 이제 어른이라고. 덕개 초등학교 입학할 때도 우리 여섯 명 다같이 있었는데. 하, 나는 아직도 그 날이 잊혀지지 않아. 12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해, 나도 기억 못하는걸. 이야, 그럼 우리 14년 만난거야? 아니 왜 내 말에는 반응이 없는데. 별 의미있는 대화들은 아니었지만, 14년 동안 쌓은 추억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보냈다. 아 맞아 덕개야, 나 너한테 보여줄거 있어. ? 뭔데.
카톡-
아, 그러게 까먹고 있었다. 사진 찍기로 해놓고 그냥 왔네. 이런거 챙기는건 역시 빨라…. 내가 좀 그렇기는 하지. 아, 인정하면 말 취소함. …. 빨리 한 번 읽어봐, 재미있는거 많더만. 응응, 알았어.
에, 이거 공룡형 글씨체인데? 커피를 마시며 조금 전 받은 롤링페이퍼 사진을 쭉 훑어보던 박덕개가 황당하다는 말투로 정공룡을 바라보았다. 아, 그거 이미 너 빼고 다 봤어. 우리 여행 갈 거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행약속을 잡은 정공룡과 이들을 보며 박덕개는 더더욱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남의 졸업식 롤링 페이퍼에다가 이런거 써놨네, 그 와중에 이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보고 답까지 덧붙였어. … 그나저나 웬 여행? 아, 그냥! 2년 전 그때도 좀 생각나고… 우리끼리 여행 안 간지 너무 오래 된 것 같아서. 음… 괜찮긴 하겠네. 그럼, 오늘 바로? 응 좋아! 박덕개는 정공룡의 생각보다 쉽게 여행이라는 의견을 동의했고 분위기는 점점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로 찼다. 박잠뜰과 서라더, 김각별은 세세한 계획 구성에 돌입했다. 형들, 누나.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해야하나? 여행은 그냥 즉흥적으로 가서 노는거야. 듣고보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좋아 그냥 스케이트장 갔다가 밥 먹고 불꽃놀이까지 보고 깔끔하게 오자, 콜? 이걸 바로 그렇게 정해버리네, 난 콜. 나도 좋아. 결국 여행 박덕개의 투덜거림을 받은 정공룡의 즉흥적인 계획대로 여행은 간단한 당일치기로 결정 되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는걸로. 좋아좋아.
우리 203번 버스 타는거 맞지? 응응, 맞아. 와, 완전 기대된다! 진짜, 우리 2년 만에 가는건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기 전부터 시끄럽게 기대하는 이들이다. 잠시후 203번 버스가 도착합니다. 끼익- 덜컹. 삑. 쌀쌀한 공기로부터 빠져나와 버스 안 특유의 향을 맡기 시작할 쯔음 이 여섯 명을 태운 버스는 문을 닫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 그 어딘가에서만 느껴지는 따듯하면서도 시원한 햇빛이 버스 창가로 내리쬐었다. 한 시간 조금 덜 걸리겠지? 음… 아마 그럴걸? 차 안 막히면 46분에서 47분 쯤? 쓰읍, 졸업식 날이라 차 막힐 수도 있어서 애매하네. 불꽃놀이 시간은 7시 30분…, 지금은 1시 30분 조금 안됐네. 뭐… 차 막히더라도 놀건 다 놀고 올 수 있어. 아, 졸업식에서 힘을 너무 많이 썼나. 나는 이제 이어폰 꼽고 잘래. 알았어, 알았어.
또 다시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버스 의자에 앉아서. 끼익- 삑. 덜컹. 아, 잘잤다. 나 왜 벌써부터 힘 빠지냐 ㅋㅋㅋ. 텐션 낮추지 말고, 빨리 가서 놀기나 하자. 오랜시간 버스에 박혀있던 이들은 기지개 한 번씩 쭈욱 피고 스케이트장 쪽으로 달려갔다. 다같이 논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더욱 신나는 발걸음으로 달려갔다. 300 사이즈는… 없으려나. 아니, 저기 있는 것 같은데. 씁, 이건 너무 큰가? 누나, 그거 우리가 봐도 너무 커보여. 오우, 수현이 미끄러지겠다 잡아줘야지. 헤헤, 너무 오랜만에 타서 감 다 잃었나봐. 들뜬 마음으로 신발을 갈아신고 부푼 마음으로 어렵지만 과감하게 걷기 시작한다. 아니 적어도 헬멧은 써야하지 않을까요 님들? 아 맞다, 잊어버릴 뻔 했네. 딸칵-. 헬멧착용까지 완료하고 이제서야 스케이트장 안으로 들어간다. 2년만에 타는거라, 제일 못 탈까봐 걱정되네. 그때는 내가 가장 잘 탔는데. 그 정도는 괜찮아, 똑같이 우리도 안 탄지 2년 됐거든. 김각별과 박잠뜰이 흘리듯 말을 뱉은 것을 기점으로 모두 장 안에 발을 들였다.
공중에 떠있는 듯 하면서도 바닥에 날이 떨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것. 그게 스케이트의 묘미이다. 얇지만 날카로운 날이 얼음과 접촉하는 순간 가볍게 앞으로 질주하는 속도를 즐기는 것. 그게 스케이트의 묘미이다. 야 덕개야, 넘어지겠다! 얼음에 온 몸을 맡긴 채 전력으로 달려가는 박덕개와 그를 보며 너무 빠르다며 말리는 이들, 같이 가자며 뒤쫓아가는 이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밝고 순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히기라도 하겠다, 조심히 달려! 응, 난 안부딪히거든~? 정공룡은 박잠뜰의 말은 신경 쓰지도 않는 채 박덕개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 달려갔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차가운 온기 속 이들은 마치 한여름 처럼 춥다는 감정을 잃어버리고는 계속 달렸다. 와, 미친! 쾅. 너무 열정적으로 달리다가 스케이트 장을 둘러싸고 있는 봉에 몸을 들이박기도 하고, 혼자 신나게 미끄러지다가 자빠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마치 10대로 돌아간 것 마냥 신나서 아픈 것도 모르고 얼음 위를 힘차게 달려 나갔다. 낮은 온도인데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이들은 힘이 다 빠졌다는 듯이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장 밖에 나와 의자에 앉는다. 이야, 우리 얼마나 많이 논거냐? 그래 봤자 우리 1시간 놀았어, 아직 놀 수 있는 시간 짱 많다구. 그렇게 1시간 논게 벌써 네 시네, 진짜 시간 금방 간다. 4시… 벌써 4시네, 4시 치고는 꽤 어두워서 자각을 못 하고 있었어. 나도, 이제 슬슬 봄일까 했는데, 아직은 겨울이 맞나 봐. 해가 이렇게 금방금방 지는 걸 보면. 이들은 가파른 숨을 고르고, 땀을 조금 씩 닦아내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고, 다시 일어나볼까? 너무 오래 앉아있는건 또 별로야, 시간 금방 가서 많이 못 논단 말이야. 그랭, 님들아 이제 일어나자! 박잠뜰의 다시 놀자는 말로 모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날카로운 날로 휘청휘청 걸어가 장 안으로 쏙 들어간다.
어, 아까보다는 사람 많이 빠졌네. 그러게, 이제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이들이 버스에서 막 내리고 도착하였을 때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것을 본 여섯 명은 오, 잘 됐다. 라며 아까보다 조금 더 빡세고 편하게 놀 수 있게 시동을 걸었다. 얘들아, 그래도 조심히 놀아라, 그러다가 진짜 다친다! 이들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아 일부러 미친 듯이 달린 서라더와 황수현, 정공룡은 김각별의 말을 듣곤 넹~ 이라며 대답하더니 이내 다시 달려간다. 와, 미쳤네 형 말을 무시하네. ㅋㅋㅋ, 야 김각별, 박덕개. 우리 쟤네 잡으러 가자. 에, 에? 아 알았어 나 데려가! 박잠뜰이 저 셋을 노려보는 시늉을 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옆에 있는 둘을 끌고 곧장 서라더와 황수현, 정공룡을 추격하러 나선다. 그리고 곧 이곳에는 이들의 가쁜 숨소리와 날과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헉, 헉, 헉, 헉. 덥썩. 쾅. 김각별은 이미 힘들다며 멈춰섰고, 박덕개는 달려가다 넘어졌고, 박잠뜰이 온 힘을 다해 침착하고 신속하게 달려간 결과는 황수현의 어깨를 덥썩 잡음과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아아악. 황수현은 아악라는 말을 무한반복하며 일어났고 서라더와 정공룡, 김각별과 박덕개도 해탈했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박잠뜰과 황수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야야 괜찮아? ㅇㅇ,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이제 진~짜 제대로 몸 다 풀렸으니까 진~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박잠뜰은 밝고 크게 소리치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곤 쌩, 달려간다. 아 미친 같이 가! 또 이렇게 한참을 얼음 위에서 보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꽤 많이 놀았다. 힘들다는 말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우리 뭐 좀 먹자, 배고파. 진짜, 존나 배고프다. 저번에 그 떡볶이집? 당연하지. 이들은 신발을 스케이트에서 운동화로 갈아신고 가까운 떡볶이집 한 곳으로 간다. 여기 떡볶이 주세요! 박덕개가 주문한다. 탁. 와 감사합니다~. 금방 나온 떡볶이를 포크로 집어 후 불어먹기 시작한다. 정말 여기는… 맛집이야. 마지막으로 온 지 진짜 오래 됐는데, 한결같이 맛있단 말이야. 이들은 공복을 맛있는 떡볶이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양도 많아서 실컷 먹었다. 이들이 먹어도 먹어도 잘 줄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배 터질 정도로 많이 먹고 나서야 떡볶이는 바닥을 완벽하게 드러내었고 이들은 배부른 몸을 이끌고 또 다른 장소로 향한다.
여기 맞지? 응, 맞을걸?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시간, 이들은 하나의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나 어떡하지, 완전 떨려. 그러니까, 너무 기대된다! 진짜 예쁠 것 같아! 황수현고 정공룡, 서라더는 조금 뒤 보게 될 풍경을 생각하며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를 몇 분 끌고 있자 어디에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 챈 황수현은 바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고 그 광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와, 대박…! 황수현이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가르킨 곳에는 어둑한 밤하늘에 밝게 터지는 불꽃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펑펑 거리는 소리에 놀라 하늘을 쳐다보곤 넋이 나간 듯 한참동안 그 빛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 형형색색의 빛이 반짝였다. 이들의 하늘의 아름다운 색이 물들었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진다. 불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높이 높이 올라가 터져 다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반복하면 반복할 수록 날은 점 더 어둠으로 휩싸여간다.
아이고, 진짜 힘 다 빠졌다. 김각별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 버스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툭 기대며 말한다. 그러게, 피곤하다. 날도 어둑어둑 하니까 자고 싶으면 자고, 나도 잠깐 자련다. 박잠뜰의 말로 서라더도 조용히 잠을 청했고, 박잠뜰도 노곤노곤한 듯 잠에 들었다. 김각별은 안대와 담요를 어디에선가 꺼내 피더니 제대로 작정하고 골아 떨어졌다. 박덕개는 잠을 자지 않는 황수현, 정공룡과 잡담을 하는 듯 싶더니 금세 잠에 들었다. 이들은 전혀 안 그런 듯 보였지만 각자 머릿속으로 이 여섯 명이 여행을 간 또 다른 과거의 날을 회상하게 된다.
2019년 이맘때였다, 박잠뜰과 김각별이 들성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을 하던 그날. 박덕개와 서라더, 정공룡과 황수현은 꽃다발을 든 채 제 4회 졸업식 관객으로 참여했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졸업장을 받을 때엔 박수를 쳤고, 그들이 박덕개가 받은 것과 똑같은 그 상장을 수여받았을 때엔 환호를 했다.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이들 중 가장 먼저 성인이 된 둘을 응원하며 즐거운 졸업식을 보냈었다. 우리 여행이나 갈래? 정공룡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야, 그걸 남의 졸업식 롤링페이퍼에 적냐? 이것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어디로 가려고? 뭐… 스케이드장 정도? 허, 스케이트장을 2월에? 왜, 갈 수도 있지. 얘들아, 그래서 우리 의견은? 정공룡과 김각별은 다른 이들의 반응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주도적으로 당일 여행 계획을 세웠다. 자 그럼 정리! 버스 타고 스케이트장 갔다가, 간단하게 뭐든 먹고 불꽃놀이 보고 오는 코스. 맞지? 정확해. 과거에도 이들끼리 간 여행이 많이 있지만 마치 처음 가는 것 처럼 당차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들성고등학교 옆 상가 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203번 버스를 기다리다가 일어난 채로 잠에 들 뻔한 황수현과 그런 황수현에게 춥다고 들러붙는 정공룡,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박잠뜰과 서라더, 너까지 어른 되면 다같이 술이나 마시자며 무심한 듯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김각별과 좋다며 웃어 대는 박덕개까지. 모두 10대와 20대 사이 경계를 밟고 있는 빛들이다. 어 버스 왔다! 끼익- 덜컹. 삑. …. 버스에 오른 모두가 의자에 앉자 스케이트 장으로 출발한다.
나 발 사이즈 까먹었어. 헐, 일일이 찾아야겠네. 자신에게 맞는 스케이트와 헬멧을 찾고, 몸을 간단하게 풀고 스케이트 장 안으로 들어간다. 야, 조심해! 어어, 알았어 속도 줄일게. 위태위태 하면서도 충돌 없이 쌩쌩 잘 달리며 상쾌한 기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쾅.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휭.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스케이트 장 안에서 여섯 명은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슬슬 해가 지자 이들은 작은 천막으로 쌓인 분식집에서 간식을 먹기도 하였다. 와, 여기 맛집이네. 라며 허겁지겁 먹어 대는 여섯 명은 이렇게 허기를 채웠다. 다음에 왔을 때 여기 또 와야겠다. 응응, 양도 딱 좋고 맛도 있고!
정말 밤이 깊어지자, 아니면 해가 져가자 갑작스럽게 하늘 위로 빛이 날아갔다. 펑 하며 퍼지는 불꽃에 예쁘다며 사진도 찍고, 하루 종일 초롱초롱 한 눈으로 감상도 한다. 박덕개와 정공룡은 크게 박수도 친다.
와, 재밌었다. 응응, 진짜 재밌게 놀았다. 불꽃놀이 완전 예쁘지 않았어? 리얼, 엄청 짱이었어. 늦은 겨울 저녁 나른한 몸을 이끌고 스케이트 장 앞 버스 정류장 벽에 기댄다. 또 다시 끼익- 덜컹. 삑. …. 한가로운 시간의 따뜻한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아, 피곤해. 지금 시간 좀 애매한데, 잘래? 아니아니, 그냥 깨있을래. 이따가 집 가서 엎어지면 되겠지 뭐. 열정적으로 놀았던 탓인지 더욱 힘이 빠졌던 이들은 아까보다는 텐션이 많이 낮아진 채로 다시 동네로 출발한다.
203번 버스는 달렸다. 똑같은 경로로, 똑같은 시간에, 평범하게. 그냥 계속 달렸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동차 한 대가 점점 이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어두운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던 차가 반대편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 저러다가 사고 나겠는데?
우리… 큰일 나는 거 아니야?
… 얘들아 뭐든 꽉 잡아. 빨리!
덕개야, 덕개야 피해!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9시 경, 들성중학교 앞 사거리에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작스럽게 이상이 생겨 속도를 주체할 수 없었던 운전자가 결국 손님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들이박았습니다. 버스는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된 채 뒤집혔으며….
피해자 총 아홉 명 중 사망자는 8명, 부상자는 1명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사고였다. 정말, 정말 불가피한 상황의 사고였다. 이러한 사고로 여덟 명의 사람이 한 순간에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유일한 생존자 조차 삶의 전부를 잃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 모르고 지낸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많은 그들이 자신 하나를 살리겠다고 몸부림 쳤고, 적어도 자신만큼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 그렇다, 이들은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들의 몸이 자동적으로 박덕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박덕개의 머리를 다치치 않게 손으로 막아주었고, 몸으로 막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박덕개는 살았다.
기적은 여기에서 또 한 번 일어난다. 이것이 기적일지 저주일지는 모르지만. 박덕개가 정신을 차려갈 때 쯤, 박덕개의 눈에는 박잠뜰과 서라더, 김각별과 정공룡 그리고 황수현까지. 이들이 보였다. 박덕개가 평소에 영혼을 보던 인간은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박덕개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더듬 거리던 말들은 박덕개를 더 침묵 속으로 향하게 했다. 우리도 잘… 모르겠어, 이게 뭐야? … 2년 뒤 네 졸업식을 하는 날 밤. 그때까지 너랑 있을 수 있대. 누가? … 그러게. 이들은 울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는 지는 둘 째 치더라도, 다시 볼 수 있다는 슬픔과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펑펑 울었다. 그 날이, 2019년 2월 초 어느 날이었다.
다시 현재, 2021년 2월 3일 밤으로, 돌아왔다. 끼익- 삑. 덜컹. 점점 이별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들은 아무말 없이 걸었다. 들성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모두 고개를 떨군 채로, 걸어갔다.
이제… 진짜 가는거지? … 응. 어두운 밤의 운동장에 박덕개의 물음표와 서라더의 마침표가 울렸다. 박덕개가 울음을 겨우 참듯 입을 씰룩거렸다. 야, 울지마~ 그래도 같이 2년동안 같이 있어 줬는데. 그건 또 그러네,. 정공룡은 가라앉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두운 분위기를 애써 올리려 장난끼 있는 말투로 박덕개를 진정시켰고 다행히도 박덕개는 그런 정공룡을 눈치채고 같이 웃어주었다. 형, 형들도 울지 마. 정공룡과 박잠뜰은 울지 않았다. 박덕개도 정공룡의 말로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 김각별 또한 눈물방울을 아주 조금 글썽거릴 뿐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라더와 황수현은 울고 있었다. 눈물 방울이 점점 커지다가 볼을 따라 쭉 미끄러져 내렸다. 얘들아, 울면 안되지. 마지막까지 울 수는 없잖아. 괜찮아, 뚝. 박잠뜰이 눈물을 흘리는 서라더와 황수현을 다독여주었다. 박덕개, 혼자 잘 살 수 있겠냐? 야, 나도 이제 스무 살이거든? 허, 야~? ㅎ, 우리 이제 동갑이거든. 가만히 있던 김각별이 건넨 말에 박덕개는 '야'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대답했고 어이없어하는 김각별에게 이제 우리 동갑이라며 으쓱였다. 아, 이건 반박할 수가 없네,. 아니야, 반박해도 돼요 형. 둘은 웃으며 장난섞인 말을 주고 받았다.
아, 이제 우리 가야하나봐, 더 있으면 정말 안 될것 같네. … 응, 다들 잘가요. 가서도 나 잊지 말고. 우리가 너를 어떻게 잊냐,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을게. …안녕. 황수현은 최대한 밝게 대답해주었고 서라더도 인사의 손짓을 하며 '안녕'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 덕개야, 졸업 축하해! 박잠뜰의 확실하지 않은, 하지만 모두가 확실하길 바라는 다음의 기약과 의미있는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덕개를 제외한 모두는 점점 투명한 형체로 변해갔다. 그리고 끝내 완전히 덕개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허망한 사고 그 후 2년. 결국 모든 것이 끝났다. 모두가 같이 있어 모든게 따뜻했다고 느꼈던 박덕개는 점점 공허함과 차가움에 닿고 있다. … 큰일났다, 벌써부터 보고싶네. 박덕개는 허전했다, 아주 많이. 20년간 살아가며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볼 틈이 없었던 박덕개는 지금 느껴지는 이 고요함을 적응할 수 없었다. 박덕개가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낄 순간이 올 때마다 항상 곁에서 지켜줬던 이들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곁을 떠났고 박덕개는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역시 정적이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박덕개는 울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 힘들어 할 뿐 무너지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다음을 기약한 박잠뜰의 말을 되새기고, 되새기고, 또 되새겨가며 일어났다. 2021년 2월 3일, 밤의 하늘은 점점 더 검은 빛을 향해 덧칠해져만 갔다. 의미가 불확실한 무언가의 기적이 일어난지 2년, 그 기적의 끝이 겨울의 어두운 달과 함께 저물었다.
Written by. 백색소음
Drawn by. 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