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기 전
“ ...뭐? ”
각별은 벙찐 얼굴로 잠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별 뿐만이 아니였다, 다른 이들도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라더는 이마를 짚고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 지금 농담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
“ 말 그대로야, 농담 아니고. ”
“ 그 말이 믿길 것 같아요? 누나가 시한부라니?! ”
덕개는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잠뜰은 마치 당연했던 일이 있어났다는 듯 덤덤히 덕개의 말에 답하였다.
“ 믿기지 않을거란 거 알아, 하지만 사실인걸? ”
“ 그게 아니라...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했잖아. ”
“ 그치, 근데 주말 사이에 좀 아파서 병원 가보니까 그렇다는 걸 어쩌냐. ”
“ ...그래, 좋아. 일단 그렇다 치고, 그럼 얼마나 남았대? ”
공룡의 한숨 섞인 말에 잠뜰은 씁쓸히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는 천천히 말했다.
“ 글쎄, 아마... 그래, 아마도 그 때가 졸업식 날일거야. ”
“ 이야, 그게 제일 비참한데? 너 게다가 수시로 대학까지 붙었잖아. ”
“ 그치, 애초에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
잠뜰은 각별의 말에 답하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지금 감은 눈을 뜨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귓가에 울려퍼지는 귀 아픈 알람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고 창문 밖에서 비쳐오는 눈부신 햇살이 눈을 간지럽히고 있길 바랐다.
그냥 재수없이 꾸었던 개꿈에 ‘아, 씨- 꿈.’이라고 중얼거리며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잠뜰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컴퓨터실 안,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의 시선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는 현실이었다, 잠뜰은 그 때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 그래도 너무 신경쓰지 마, 그래봤자 지금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걸. 그냥 평소처럼 지내면 되는거야. ”
“ 아니, 그게 가능하겠냐고. 하루 아침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
“ 그건 그렇네, 일단 난 먼저 집에 가볼게. 어쨌거나 곧 동아리 끝날 시간이니까. ”
잠뜰은 공룡의 말에 받아치고는 자신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일 보자, 잠뜰은 짧게 웃으며 그 말을 내뱉고는 컴퓨터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이들은 멍하니 잠뜰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천천히 가방을 챙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PC방을 가자는 둥 오늘은 걸어갈 거냐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겠지만 오늘은 조용했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
귀 아픈 알림소리에 잠뜰은 부스스 눈을 떴다.
핸드폰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고 잠뜰은 졸음이 가득한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알림을 껐다.
그 후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잠뜰의 일상이었지만 지금의 잠뜰은 다시 일으켰던 몸을 눕히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학교에 지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잠뜰은 애써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돌아누웠다.
어쨌거나 자신은 졸업식 날 죽을테고 남은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2~3주 남짓, 잠뜰과 그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님은 맞벌이라 이미 일하러 나간 상태였기에 아무도 잠뜰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도 이해해주시겠지, 잠뜰은 그렇게 생각하며 처음으로 학교를 빠졌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란 종이에 쉼표를 써넣었다.
—————
그 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공룡은 태평하게 교실 안 자기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고 라더와 수현은 매점에 있었다, 덕개는 도서 반납을 위해 도서관에 각별은 교실에 있기 갑갑해 복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일상 안에 녹아들어있을 때 안내방송이 학교 안에 울려퍼졌다.
‘ 게임개발부 부원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3층 3학년 교무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미다, 게임개발부 부원들은... ’
그 방송을 들은 다섯은 각자 의문을 품은 채 교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모두 모였을 때 조용히 있던 덕개가 소곤소곤 질문했다.
“ 선생님이 왜 우리 불렀는지 알아? ”
“ 나야 모르지, 근데 이상하다... 왜 우릴 부르신거지? ”
“ 그것도 3학년 교무실에. ”
“ 혹시...우리 평소에 게임하면서 농땡이 부린다고 혼내러 온건가? ”
“ 그랬으면 동아리 담당쌤이나 총괄하는 쌤께 불려갔겠지. 두 쌤 다 3학년 담임은 아니라고. ”
“ 애초에 보고서는 꾸준히 제출했고 게임도 만들고 있는 건 맞잖아, 물론 코딩할 줄 아는 사람이 나 뿐이라 나만 구르고 있지만. ”
“ 그럼 왜 부르신거지? 하필 우리 게임부 애들을 말이야. ”
“ ...근데 뜰누나 어딨어? ”
라더가 그렇게 말했을 때 어떤 선생님이 그들에게 걸어왔고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 미안해, 너희의 소중한 쉬는 시간을 이렇게 빼앗아서. ”
“ 괜찮아요, 근데 저희는 왜 부르신거죠? ”
“ 그게...잠뜰이가 학교를 결석했어. 그것도 아무 얘기없이, 무단으로. ”
“ 네? 걔가요? ”
그 말에 다들 귀를 의심했다, 잠뜰이 학교를 무단으로 빠졌다니?!
잠뜰은 모범생이었다, 놀 때는 확실히 놀기는 했지만 성실히 수업을 듣고 임하는 학생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랬던 잠뜰이 이렇게 학교를 빠진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 지금 선생님도 전화해봤는데 안 받고 부모님도 모른다고 하더라, 자신도 내 연락 받고 전화해봤는데 안 받는다고 해서... 혹시 너희가 알지 않을까 싶어서. ”
“ 저희도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네요, 그럴 누나가 아닌데... ”
“ 일단 저희도 전화해볼게요, 안 보면 메세지라도 보내보고 학교 끝나기 전에 잠뜰한테 답장오면 말씀드릴게요. ”
그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번 더 미안하다고 얘기했고 다섯은 괜찮다고 하고는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
“ 내 말이, 누나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
“ 어쩐지 잠뜰 반 지나갈 때 애가 안 보이더라니, 도서관이나 매점에 갔나 했는데... ”
각별은 그리 말하며 바쁘게 핸드폰을 만지더니 잠뜰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화 연결음에 각별은 전화를 끊고 다른 이들에게도 한 번씩 전화해보라고 말했고 이에 다들 한 번씩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이도 같은 결과가 돌아왔고 결국 각별이 메세지를 보내는 걸로 마무리를 지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거의 끝나가는 쉬는 시간에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고 각별은 계속 핸드폰을 바라보며 잠뜰의 답장을 기다렸다.
걱정스러웠다, 자주 투닥거리고 장난도 쳤지만 그래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나 친해졌던 친구였다.
그렇게 종례 때 쯤 각별은 잠뜰의 답장을 확인했다.
어디냐는, 왜 학교에 안 왔냐는 메세지에 잠뜰은 집에 있다며 몸이 별로 안 좋아서 그랬다며 자느라 연락을 못했다고 하고 있었다.
각별은 눈썹 한 쪽을 꿈틀 올렸다, 분명 거짓말 같다는 느낌이 세게 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각별은 잠뜰의 담임에게 찾아가 메세지에 대해 말했고 서둘러 항상 게임개발부가 모이던 교문으로 바쁘게 향했다.
각별은 잠뜰에게서 온 메세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며 입을 떼었다.
“ 나만 이거 거짓말 같아? ”
“ 그런가? 근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었으려나? ”
“ 어제 그 일 때문 아니야? 그...병 관련해서. ”
“ 아마도, 일단 집에 가보자, 잠뜰 상태 좀 봐야할 것 같아. ”
공룡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뜰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다섯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말한 이유들은 추측일 뿐이지 확실하지는 않았다.
잠뜰의 집에 도착해 라더는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편한 복장의 잠뜰이 문을 열어주었고 자신을 찾아온 그들을 보고 상당히 당황한 얼굴빛이었다.
“ 뭐야, 너희 왜 온거야? ”
“ 누나가 학교 빠져서, 일단 들어간다? ”
“ 하아, 진짜... 그래, 일단 들어오고...뭐 함부로 건들지는 마라. ”
“ 이야, 잠뜰 집이다! ”
“ 야, 공룡! ”
신발을 벗고 냅다 뛰어들어가는 공룡을 보며 잠뜰은 소리를 질렀고 이를 한심하게 보며 다른 이들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뜰은 간식이라도 가져오겠다며 주방 쪽으로 향했고 잠깐의 침묵 이후 각별이 말을 꺼냈다.
“ 몸은 좀 어때? ”
“ 응? 뭐, 쉬니까 좀 나아졌어. 웬일로 걱정이래? ”
“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중학생 때부터 친했는데. ”
“ 우웩, 너무 오글거려서 그런다. 너야말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 혹시 내일 죽을 일 있어? ”
“ 정작 아픈 건 너잖아, 사실 너 학교 아파서 빠진 거 아니지? ”
그 말에 잠뜰은 잠시 멈칫했지만 애써 다시 말을 이어갔다.
“ 그럼 뭐 때문 같은데? ”
“ 어제 우리한테 얘기했던 것 때문이지. 그 병 관련 얘기 말이야. ”
잠뜰은 그 말에 침묵했다, 그저 손에 들고 있던 과자봉지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 ...곧 저녁 때인데 밥 먹고갈래? ”
“ 말 돌리는 거 봐라, 말 돌리는 거. ”
“ 그건 그거고. 오늘 두 분 다 야근이라 나 혼자 밥 먹어야하기도 하고, 너희 슬슬 배고플 거 아냐. ”
“ 누나가 사는거야? ”
“ 아무래도? 너희가 손님이잖아, 내가 원치는 않았지만... ”
“ 좋아, 우리 피자 시켜먹자! ”
“ 무슨 피자가 좋을까? ”
“ 난 고기 올려진거면 다 찬성. ”
“ 있어봐, 메뉴 좀 확인해보게. 어디보자, 쉬림프....치즈... ”
잠뜰은 시끌벅적한 그 대화 속에서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놓고 핸드폰으로 메뉴를 살피고 있었다.
주문을 마친 뒤 그들은 평소처럼 게임기를 꺼내와 몇몇은 게임을, 몇몇은 구경을 했다.
더없이 일상적이었다, 그랬기에 덧없던 것이라 잠뜰은 생각했다.
—————
잠뜰의 집에 찾아갔던 이후로 잠뜰과 각별 사이에서는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갔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갔다.
둘 외의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둘만의 일이니까 괜히 참견해봤자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졸업식을 하기 딱 1주하고 반이 남았던 날, 그 날은 분명 게임개발부가 있던 날이었다.
각별은 일찍 끝난 종례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컴퓨터실로 향했다.
이제 슬슬 졸업이었기에 빨리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을 완성시켜야했다.
그게 이 게임개발부의 목표였고 게임개발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컴퓨터실에 들어갔을 때 각별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책상에 걸터앉아있는 잠뜰, 각별은 놀란 눈으로 잠뜰을 바라보다 말을 걸었다.
“ 뭐야, 너희도 종례 일찍 끝내주셨어? ”
“ 수능까지 다 본 3학년인데 이제 우린 거의 출석일수 채우려고 나오는거잖아. 그러니까 종례는 당연히 일찍 끝내주셨겠지. ”
“ 그건 또 맞네, 요즘 몸 상태는 어때? ”
“ 그냥 그래, 언제부터 날 걱정해줬다고. ”
“ 이전부터 계속 걱정해줬잖아,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
각별의 말에 잠뜰은 책상에서 내려와서는 흘깃 각별을 째려봤다.
“ ...쓸데없는 참견이야. ”
“ 뭐? 저기요, 뭐가 쓸데없는데.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 치부해도 되는거야? ”
“ 내가 언제 걱정해달랬어? 멋대로 나에 대한 자기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하는 말일 뿐이잖아. ”
“ 그것도 있다고 쳐, 그래도 우린 중학생 때부터 친했잖아. 당연히 걱정하는게... ”
“ 그 놈의 중학교, 중학생! 그 때부터 친했으면 뭐가 달라? 너도 결국은 내 심정을 이해 못하잖아! ”
잠뜰은 버럭 각별에게 소리를 질렀고 이에 각별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잠뜰은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난 이 병이 걸리고 싶어서 걸린 줄 알아? 나도...나도 살고싶어, 죽기 싫고 무섭다고! ”
“ 알아, 알고 있으니까 일단 진정... ”
“ 너라면 진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나도 졸업하고 하고싶은 게 많아. 학교 졸업해서 대학도 다녀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같이 대화 나누면서 술도 마셔보고 싶고 먼 곳으로 여행도 가보고 싶고 또...! ”
고개를 푹 숙여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발견한 잠뜰을 말을 잇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닦지 않고 흘리고 있는 잠뜰을 본 각별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 저...괜찮아? ”
“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동아리 빠졌다고 해줘. ”
잠뜰은 쓰윽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는 책상에 올려뒀던 가방을 쥐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각별이 붙잡기도 전에 문을 연 잠뜰이 본 것은 다른 게임개발부 부원들, 공룡은 잠뜰을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 뭐야, 잠뜰이 왠일로 일찍 컴퓨터실에 와있대~? ”
잠뜰은 잠시 공룡을 바라보다 대답없이 뛰어가듯 그들을 지나갔다.
무안하다는 듯 공룡은 실소를 내뱉고는 각별을 바라보았다.
“ 둘이 무슨 일 있었어? ”
“ 보아하니 맞는 것 같네. ”
이마를 짚고있는 각별을 보며 수현은 그리 답했고 라더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는 질문했다.
“ 선배, 뭔 일이었길래 누나가 그냥 가요? ”
“ 그러니까, 하아...좀 싸웠어. ”
“ 잠시만, 둘이 싸웠다고? 어쩌다 그랬는데? ”
조금 복잡한데, 각별은 자신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눈을 굴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뜰이 눈물을 흘리는 건 각별도 처음 본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화를 낸 적도 처음이었다.
각별은 천천히 입을 떼어 둘이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다른 이들은 그 말을 잠자코 들었다.
—————
잠뜰은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왜 자신이 각별 앞에서 그렇게 감정을 쏟아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렇게까지 화를 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
잠뜰은 내뱉은 혼잣말은 방 안을 맴돌다 허공에 산산히 부수어졌다.
다시 코 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에 잠뜰은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지금까지 잘 숨겨왔는데, 괜찮은 척 해왔는데, 그런 생각에 잠뜰의 눈에서는 의지에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순된 두 바램이 얽히어져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느낌이었다.
결국 잠뜰의 선택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숨죽여 우는 것이었다.
—————
다음날이 되고 잠뜰은 다시 학교를 나왔다.
게임개발부원들과 몇몇의 소수의 선생님만 제외하면 잠뜰의 병을 모르고 있었기에 잠뜰은 그 날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반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를 하며 놀고 있을 때 친구 중 한 명이 잠뜰에게 다가와 누군가 잠뜰을 찾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 말에 교실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긴 잠뜰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라더를 발견했다.
“ 어? 라더야, 여긴 왠일이야? ”
“ 그냥, 오늘도 급식 같이 먹을거냐고 물어보러왔어. ”
“ 응? 당연하지, 그런 걸 왜 물어봐~ ”
“ 그게...각별 선배랑 싸웠다면서. ”
라더의 말에 잠시 잠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평온하게 웃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 아, 조금 싸웠어. 근데 별 일은 아니고... ”
“ 어쨌든 오늘은 같이 먹자, 누나랑 상의하고 싶은 것도 있거든. ”
“ 어? 상의하고 싶은거라니, 그게 뭔데? ”
“ 비밀이야, 뭔지는 같이 급식 먹으면서 얘기하자. ”
그 말과 함께 라더는 짧게 웃어보이고는 가보겠다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잠뜰 또한 따라 웃으며 라더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점심시간에 무엇을 상의할지 의문을 가지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자 게임개발부원들이 모두 모였다.
잠뜰과 각별은 조금 어색해보였지만 그래도 무난히 밥을 먹던 중 제일 빨리 급식을 해치운 공룡이 숟가락을 탕- 내려놓고는 말을 꺼냈다.
“ 좋아, 그럼 이제 상의를 해볼까? 주제는 우리 게임개발부가 갈 졸업여행! ”
“ 졸업여행? 뜬금없이 그게 무슨... ”
“ 게다가 게임개발부에 졸업자라고는 두 명 뿐이잖아. ”
공룡의 말에 잠뜰과 각별은 어리둥절해하며 반문했고 급식을 다 먹었는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있는 수현이 그 질문에 답하였다.
“ 우리들 아이디어야, 뜰누나 일도 있고 각별 형 없으면 이 동아리도 폐부될텐데 추억이라도 더 쌓는 게 어떤가 싶어서. ”
“ 끝인데 좀 즐겁게 마무리해도 되잖아~ ”
“ 좋아, 그걸 의논했다고 치자. 근데 과연 부모님과 선생님이 허락해주실까? ”
머리를 짚으며 내뱉은 잠뜰의 말에 조금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잠뜰과 각별을 제외한 이들은 그 말에 난처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각별도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 그래, 일단...며칠 생각 중인데. ”
“ 한...3박 4일? ”
“ 졸업식날까지? ”
“ ...응... ”
조곤조곤 각별이 내뱉은 말에 공룡은 마치 무언가를 잘못한 아이마냥 눈을 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각별은 눈동자를 한바퀴 굴리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 너희도 힘든 계획인 거 알지? ”
“ 저...하지만 선배... 한 번만 우리 얘기 들어주면 안돼요? 누나도 말이야. 우리도 정말 많이 고민해서 결정한... ”
“ 그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야. ”
잠뜰은 그렇게 말하고는 식판을 들고 남긴 음식을 버리러 사라졌고 각별도 젓가락 끝으로 애꿎은 남은 밥을 건드리다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둘이 사라지고 난 후의 내려앉은 침묵은 무겁게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마치 빛조차 들지 않는 심해처럼, 조금이라도 숨을 잘못 쉬었다가는 그대로 무겁고 검푸른 물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다.
라더는 저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천천히, 조심스레 내뱉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잠뜰과 각별의 말이 맞았다, 지금 이런 때에 불쑥 여행을 떠나는 건 힘들었다.
라더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둘을 설득하는 건 둘째치고 자신들이 짠 여행 계획의 조금의 가능성은 보여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라더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들은 이에 흠칫 놀라고는 라더를 바라보았다.
“ 우리, 살짝 과감해져볼래? ”
그 말을 내뱉은 라더는 싱긋 웃어보였다.
—————
각별은 그저 교실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종례를 기다렸다.
점심 때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지만 각별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애써 이를 지워내려했다.
“ 가-악~~~별~~~!!!!!! ”
귀를 찌르는 큰소리에 각별은 흠칫 놀라고는 한 손으로 이명이 옅게 들려오는 귀를 눌렀다.
시선을 옮기자 보인 것은 교실 밖에서 손을 마구 흔들고 있는 공룡과 귀를 막고 공룡을 째려보고 있는 덕개였다.
왜 온걸까, 각별은 그런 의문을 가지며 시끄럽다며 자신의 담임에게 혼나고 있는 공룡을 바라봤다.
말 그래도 짧은 종례였다, 이를 마치고 각별은 가방을 집어들고는 공룡과 덕개에게 향했다.
“ 이번에는 뭐길래 날 보러온거야. ”
“ 각별형, 우리가 진짜 엄청난 소식을 가져왔어! ”
“ 갑자기? 진짜 뜬금없다. ”
“ 시끄럽고, 어쨌든 따라오시라~ ”
공룡은 그렇게 말하고는 각별의 손을 낚아채고는 복도를 달려갔다.
각별은 갑작스럽게 받은 가속에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며 투덜거렸고 덕개는 자신을 두고가지 말라며 바삐 뒤를 따라 뛰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항상 그들이 만났던 교문 앞, 그 곳에는 잠뜰과 라더, 그리고 수현도 서있었다.
각별은 숨을 헐떡이고는 흘러내리는 땀을 팔로 슥 닦았고 공룡은 킥킥 웃어댔다.
“ 진짜 저질체력이네, 각별~ ”
“ 입 다물어, 갑자기 끌어서 달린 게 누군데... ”
“ 아이고, 알겠습니다~ 뉘예뉘예~ ”
“ 이게...?! ”
각별은 그리 말하며 도망가려는 공룡의 뒷덜미를 붙잡았고 공룡은 팔을 버둥대고 있었다.
잠뜰은 이를 잠시 바라보다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꺼냈다.
“ 자,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부른 용건은? 아까 점심시간에 말했던 여행 때문이야? ”
“ 아 맞아, 그것 때문에 부른거지? 라더야, 너 가방에서 그것 좀 꺼내줘. ”
“ 이미 꺼내고 있거든? ”
라더는 덤덤히 말을 내뱉으며 가방 안에서 꺼낸 파일에서 6장의 종이를 꺼내었고 한장씩 각자에게 나눠주었다.
각별은 그 종이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 잠시만, 이거 혹시...현장체험학습 신청서야? ”
“ 네, 맞아요. 척 보면 쓰여져 있잖아요? ”
“ 아니, 지금 각별 말은 그게 아니잖아. 왜 여기에 선생님들 도장이 다 찍혀있냐는거지. ”
잠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모님 란을 제외하고 모든 도장이 찍혀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물론 이걸 꺼낸 라더는 인간이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어쨌든 수현이 천천히 상황 설명을 하였다.
“ 솔직히 나도 많이 놀랐어, 갑자기 라더가 우릴 교장실로 끌고 가더라고. ”
“ 이야, 혹시 우리 게임개발부 고발하러 가는건가 했잖아~ 진심 심장 쫄려 뒤지는 줄 알았어~ ”
“ 넌 좀 뒤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 야, 각별 말 다했어? ”
“ 아까 그것까지 쌤쌤이야. ”
각별은 그리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얄밉게 혀를 쏙 내밀어보였고 공룡은 부글부글 끓는 짜증에 각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덕개의 저지에 무산되고 말았다.
수현은 차가운 공기에 조금 목을 다가듬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어쨌든 갑자기 들어가서는 교장 선생님께 부탁하더라고, 나 라더가 그러는 거 처음 봤어. ”
“ 누나 병을 이용한 건 일단 사과할게, 근데 별 방법이 없기도 했고 교장 선생님이니까... 다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
라더는 그리 말하며 잠뜰에게 두 손을 약간 들어보였고 덕개는 반쯤 신나 재잘거렸다.
“ 그렇게 우리도 합세했고, 쨘~ 이렇게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얻었습니다! 사실 진짜 허락을 받을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말이야. ”
“ 진짜 라더가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는 건 처음 봤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냐? ”
“ 내가 뭔 기계냐? 나도 여러 감정표현 할 수 있고 또...그 얘기 좀 그만해, 부끄러우니까... ”
“ 그 때 라더 표정 진짜 사진 찍어뒀어야 하는데~ ”
“ 우리가 알던 얼음왕자, 라더형이 맞는가. ”
“ 얼음왕자는 무슨, 그만하랬지. ”
라더는 추위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발개진 얼굴빛으로 툴툴거렸고 다들 이에 웃어보였다.
각별은 자신의 손에 쥐여진 졸업여행 티켓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마지막 도장이나 사인만 받으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앞섰다.
그렇게 그들은 교문에서 헤어져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이 종이가 어릴 적 읽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왔던 황금 티켓이길 바라며, 아까의 걱정을 잊은 채 각별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바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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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다들 허락은? ”
덕개의 질문에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던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이에 덕개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 어...이걸 물어볼 타이밍이 아니였던건가...? ”
“ 일단 난 맡았어. ”
잠뜰은 덕개의 말에 답하고는 자신 앞에 놓은 과자를 한 줌 쥐어 입 안에 털어넣었다.
“ 야, 잠뜰! 하나씩 집어먹으라고, 가뜩이나 과자 적은데. ”
“ 그럼 니 돈주고 사오시던가~ 우리 집에 있는 과자가 이것 뿐인 걸 어떡하라는거야~ ”
“ 과자 남은 거 있으니까 공룡 넌 좀 조용히해. 어쨌든 어떻게 허락 맡은거야? ”
“ 나야 뭐...다 알잖아, 그거. 얘기하니까 조금 더 즐기라면서 허락해주시더라. 그래서 너희는? ”
“ 뭐, 엄청 조르니까 허락은 해주셨어. 문제는 그 후의 학원 보충이지만~ ”
수현은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조금 찡그렸고 음료수를 마시던 라더는 입에서 캔을 떼어냈다.
“ 나도 일단 허락은 맡았어. 이래저래 사정 얘기하니까 결국은 허락해 주셨더라. 각별 선배는요? ”
“ 아, 나도 오케이 받았어. 난 특별 전형으로 이미 취직까지 했으니까 그냥 놀다오래. ”
“ 이야, 어떻게든 허락 맡았네들? 난 허락 안해줄 거 같아서 내가 도장 슬쩍 찍어서 냈어. 가서 설명하려고. ”
“ 너도 참 배짱 하나는 두둑하다, 너희 부모님이 엄청 노발대발하실 것 같은데? ”
“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서 덕개, 너는 허락받았어? ”
“ 당연히! 못 받았지... 그래서 사인 따라해서 냈어, 공룡처럼 일단은 저지르고 보려고. ”
“ 나의 동료가 여기 있었군. 나의 전우여, 함께 이 여행을 함께 하게나. ”
“ 정말이지, 잘도 논다. ”
각별은 한심하다는 듯 공룡을 바라보며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입안에 털어넣었고 이에 옆에 있던 수현은 자신이 먹으려 했다며 소리를 질렀다.
수현의 비명(?)에 잠뜰은 수현을 한 대 때렸고 공룡은 이에 빵 터져 웃음을 터뜨렸다.
덕개도 웃겼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어댔고 라더도 즐거운 듯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여섯은 그 날도 잠뜰의 집에서 즐겁게 놀다 헤어졌다.
졸업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여행 전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잠뜰은 이를 되뇌이며 캘린더에 이를 표시했다.
여행이 조금은 즐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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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행 당일, 잠뜰은 자신의 짐이 든 캐리어를 옆에 세워둔 채 약속 장소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피어오르는 입김에 잠뜰은 괜히 후우- 숨을 내뱉어봤다.
잠뜰의 입에서 피어오른 입김은 맑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과 어우러져 잠시 수놓여졌다가 이내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저 입김도 구름이 되고 싶었을까? 잠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김이 사라진 자리를 계속 응시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란 걸 잠뜰도 알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입김과 자신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잠뜰은 슬쩍 하늘에 손을 뻗어봤다.
“ 잠뜰, 뭐해? ”
그 목소리에 잠뜰은 황급히 팔을 내리고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 서있던 것은 각별, 각별은 옅은 입김을 흘려내며 잠뜰 대신 말을 이어갔다.
“ 아직 너 밖에 없어? ”
“ 그러게, 내가 좀 일찍 나오기도 했어. ”
“ 나도 나름 일찍 나온건데... 늦지는 않았지? ”
“ 응, 아직 약속시간 조금 전이야. ”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한 잠뜰이 내뱉은 말을 이후로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기껏 해봐야 하는 대화는 정말 형식적인 대화 뿐, 그 대화도 마치 공중에 흩어지는 입김처럼 잠시 후면 끊겨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약속장소에 도착한 라더와 수현이었다.
“ 어? 뜰누나랑 각별형 와 있었네? ”
“ 누나, 우리 늦은 거 아니지? ”
“ 응, 딱 맞춰서 왔어. 덕개랑 공룡은 몰라? ”
“ 덕개는 신호 놓쳤다고 좀 늦을 것 같다고 했고 공룡은...둘 다 잘 알잖아. ”
“ 그래, 잘 알지. 그 지각빌런, 얘 진짜 평소처럼 늦으면 버스 놓칠지도 모르는데. 잘못하면 우리 기차도 놓친다. ”
각별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야기를 하며 2~3분 정도가 지나있었고 저 멀리서 덕개가 바쁘게 달려오고 있었다.
“ 아, 미안. 계속 신호등 타이밍이 안 좋아서... ”
“ 걱정마, 네가 꼴찌는 아닌 게 다행이지. 아니, 다행이 아닌가? ”
“ 왜, 또 공룡 형 안 왔어? ”
“ 그래, 이 자식은 언제쯤 오려나? ”
“ 심각하네, 전화해봤어? ”
“ 이제 해보려고. 진짜 지금 일어났으면 죽여버릴거야, 이 자식. ”
“ 그건 죽여도 싸다, 일단 전화는 내가 걸어볼게. ”
수현은 그 말을 하며 공룡에게 전화를 걸었고 잠깐의 연결음 이후 공룡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 어, 수현아! 갑자기 왜 전화했어? ”
“ 아, 공룡아! 그게... ”
“ 너 얌마, 왜 이렇게 늦냐. ”
“ 아, 뭐야. 각별 왜 니가 대답하는데. ”
“ 조용히 하고 왜 이렇게 늦냐고. ”
“ 이번에는 대답, 잠뜰이 하네? 이거 설마 스피커폰이야? 아, 젠장... ”
“ 내가 맞춰볼까? 너 지금 집에서 나왔지? ”
“ 어...음...그건 아닌데... 쳇, 이래서 눈치 빠른 라더는 싫다니까! ”
“ 장난 그만 치고 오기나 해, 형. ”
“ 알겠어, 5분 내로 갈 수 있어! ”
“ 너 분명 5분 넘어서 온다. ”
“ 나도 동의. ”
“ 각별이랑 잠뜰 둘 다 샤랍샤랍. ”
“ 어쨌든 끊을게. 빨리 와, 공룡아. ”
수현의 말을 이후로 전화는 끊어졌고 정확히 7분 뒤 공룡이 도착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던 공룡은 자신만만하게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 자, 5분 내로 왔지? ”
“ 뭐래, 7분 걸렸거든? ”
“ 그런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 주는거라고~ ”
“ 어쨌든 이제 달리자, 우리가 타야할 버스 곧 도착해. ”
수현의 말에 잠뜰과 라더가 앞장 서 달려갔고 다른 이들도 따라 달려갔다.
그렇게 다행히 버스에 탑승하는 걸 성공한 그들은 자리에 반쯤 주저앉았다.
공룡은 방금 뛰어왔는데 다시 이렇게 뛰어야 했냐며 툴툴댔고 각별은 애초에 네가 늦지만 않았으면 이럴 일 없었다고 반문했다.
둘의 작은 말싸움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조용했고 히터의 따뜻함이 몰고 온 졸음에 하나 둘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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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기차역을 나오자 그들을 반겨주는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 저 멀리에서는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이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에 모두가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 와, 바다다! ”
“ 이렇게 여행 온 거 너무 오랜만이다~ ”
신난 덕개의 말에 수현도 웃으며 그 말에 답했다.
일단은 짐을 풀기로 하고 숙소로 가기 위해 그들은 다시 버스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잠시 후 숙소에 도착한 그들은 짐을 풀었고공룡은 도중 툴툴대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진짜 오랜만에 여행온 건 좋은데 진짜 힘들다. 아침부터 뛰지를 않나, 기차에 대체 몇 시간을 있었던거야? ”
“ 니가 늦게만 안 왔으면 우리 모두 아침부터 뛸 필요 없었다. ”
“ 아, 배고프다. 우리 뭐 먹을까? ”
라더의 말에 공룡은 능청스레 말을 돌렸고 이에 다들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대충 음식은 시켜먹기로 하고 오늘은 이래저래 힘드니 숙소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바쁘게 핸드폰을 바라보며 무엇을 시킬지 찾아보는 잠뜰의 옆에는 다들 옹기종기 모여 각자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계속 읊어댔다.
잠뜰은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다며 공룡에게 소파 위에 올려진 쿠션을 던졌고 이를 맞은 공룡을 보며 나머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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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날이 찾아오고 그들은 숙소 근처의 바닷가로 향했다.
물론 여름이 아닌 겨울이었기에 그들이 걸치고 있는 수영복이 아니라 패딩이었지만 그래도 다들 바닷가를 본다는 것에 기대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바라보며 여섯은 계단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발개진 코 끝에는 입김이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그들의 느꼈던 겨울 바다는 고요했고 오직 파도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잠뜰은 눈을 감았다, 마치 소라껍질 안에서 맴도는 듯한 파도소리가 잠뜰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그 때 불쑥 공룡이 계단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
“ 나랑 같이 해변 들어갈 사람~ ”
“ 어, 나! 나! 나 갈래! ”
“ 이런 추운 날씨에? 아서라, 난 빼줘. ”
“ 나도, 지금 입수했다간 얼어죽을걸? ”
“ 이런 날씨에 진짜 들어가기라도 하겠어? 그러면 뭐 진짜 웃기긴 하겠다~ 라더야, 넌 어쩔래? ”
수현의 질문에 라더는 잠시 흘깃 잠뜰과 각별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 뭐, 구경만 할게. 오랜만에 보는 바다니까 좀 더 가까이서 보고싶긴 하다. ”
“ 좋아, 그럼 제군들 돌격! ”
“ 와아! ”
그리 외치면서 뛰어나가는 공룡을 따라 신난 덕개가 뒤따라 뛰어갔고 수현과 라더는 함께 천천히 둘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잠뜰과 각별은 그렇게 둘만 남게 되었고 어색한 침묵 만이 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한 번 잠뜰이 각별에게 감정을 쏟아낸 이후 둘은 그저 어색할 뿐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며 지냈지만 그 때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던 점은 마찬가지였다.
저멀리서 들려오는 넷의 재잘거림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둘은 아무 말없이 계단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얼마 안 가 각별이 먼저 입을 떼었다.
“ 좀 어때? ”
“ 응? 뭐가? ”
“ 그냥 이래저래. 뭐, 이 여행이라던가 몸 상태라던가. ”
그 말에 잠뜰은 고개를 돌려 각별을 바라봤고 각별은 여전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에 조금 머쓱했는지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며 잠뜰은 그 물음에 대답했다.
“ 여행이야 즐겁지, 쟤네 넷끼리 이런 귀여운 계획을 세웠을지 누가 알았겠어? ”
“ 그럼 그렇지, 솔직히 처음 급식실에서 그 얘기가 나왔을 때 진짜 당황했어. 아무것도 없이 여행가자! 라고 하다니. ”
“ 그러니까. 정말이지 아무 계획 없다니까? 누가 이런 때에 여행을 가자고 해, 그것도 1, 2학년들이. ”
“ 근데 난 라더가 그렇게 과감함 녀석인지 몰랐다. 전혀 그래보이던 놈은 아니었는데. ”
“ 걔 한다면 하는 애야, 너 라더가 게임하는 거 못 봤어? ”
“ 그냥 좀 의외였거든, 그 때는 좀 다혈질이긴 했지만 평소에는 좀 조용했으니까. ”
“ 그거 왠줄 알아? 너랑 안 친해서야~ 왜 2년이나 알고 지냈으면서 아직도 둘이 어색한지 모르겠어, 정말. ”
잠뜰은 그 말과 함께 웃어보였고 어느새 잠뜰을 돌아본 각별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이내 각별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는 사라졌고 입술을 살짝 깨물던 각별은 다시 말을 꺼냈다.
“ 저...잠뜰. ”
“ 응? ”
“ ...미안. ”
“ 갑자기? 왜 미안한데. ”
“ 그냥, 너무 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나봐. 정작 정말 알아줘야 할때는 지레짐작하기만 하고 하나도 몰랐으면서. ”
“ ...너 지금 그 때 일 때문에 이러는거야? ”
잠뜰의 질문에 각별은 고개를 돌려서 다시 바닷가를 바라보았고 이에 잠뜰은 조금 확신을 가졌다.
잠뜰도 바닷가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바다에는 파도가 치고 있었고 넷은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
공룡과 덕개는 모래사장 위에서 뛰어놀고 있었고 수현과 라더는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멀어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희미한 웃음소리에 즐거워보인다 생각하며 잠뜰은 눈을 감았다.
자신도 모르게 각별에게 쏟아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이와 함께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각별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각별이 그런 표정을 지은 건 잠뜰도 처음 본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자신을 걱정해준 것도 처음이었다.
잠뜰은 천천히 눈을 뜨고 각별에게 띄엄띄엄 말을 전했다.
“ 넌 노력한거잖아, 내가 걱정돼서. 그걸 내친 건 나였고. ”
그 말에 각별은 조금 놀라 잠뜰을 바라보았고 잠뜰 또한 각별을 바라보며 옅게 웃어보였다.
“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양심없는 것 같지만 우리 화해하자. 사실상 화해라고 하기도 애매하네. ”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잠뜰은 각별에게 손을 내밀었고 각별은 이에 피식 웃으며 그 손을 잡으려 했다.
그 때 저 멀리서 공룡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놀라 소리가 들린 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린 잠뜰과 각별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공룡이 또 무슨 사고 쳤나보네. ”
“ 그러게 말이야, 내가 진짜 못 살아. ”
그 말과 함께 잠뜰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 칸 계단을 내려가다 각별을 돌아보고 말을 이어갔다.
“ 너도 같이 가야지, 안 그래? ”
“ 그래야지, 그 녀석이 또 어떤 사고를 쳤을까~ ”
잠뜰과 각별은 그렇게 계단에서 내려와 넷에게 달려갔다.
공룡은 잔뜩 울상이 된 채 우는 시늉을 하며 잠뜰과 각별에게 들러붙었다.
“ 으헝헝, 잠뜰~ 각별~ ”
“ 뭐야, 뭔 일인데?”
“ 공룡이 까불다가 한쪽 발 바다에 담궈버렸대요~ ”
“ 이야, 진짜 너도 참 징하다~ 여기서까지 사고를 치는거냐? ”
“ 뭐, 왜 뭐. 불만이냐? 물도 있다, 깔깔꼴꼴~ ”
“ 그래, 니 한쪽 발이 소금물에 푹 절여졌지. ”
“ 우씨, 너무하네들. ”
공룡은 그렇게 말하며 툴툴거렸고 다들 이에 웃어보였다.
그래도 다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공룡은 발이 시렵다며 툴툴댔고 다들 네가 잘못한거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소에 돌아와 발을 녹인 공룡은 또다시 재잘거렸고 다들 어이없어 했지만 그래도 웃어보였다.
그렇게 게임개발부의 두 번째 쉼표가 끝마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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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은 아무 생각없이 자신이 지내는 숙소의 방을 둘러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찬장 위에 올려진 무언가, 각별은 이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꺼내려고 손을 뻗었을 때 문득 덕개가 각별을 불렀다.
“ 형, 뭐해? ”
“ 응? 저기 위에 뭔가 있어서, 뭔지 좀 보게. ”
“ ...어? 어, 음...그냥 두는 게 어때? 이 숙소 주인 분이나 이전 방문객이 두고 가신 거일지도 모르잖아. ”
“ 으음...그런가? ”
“ 자, 됐고! 빨리 나가서 붕어빵 사와. ”
“ 뭐? 내가 왜? ”
“ 뜰누나도 나갈거야, 한 4봉지 정도 사오고 절반은 팥, 절반은 슈크림! ”
“ 아니, 나 나간단 얘기 안했거든? ”
“ 형 나갈거지? 나간다고? 알겠어, 빨리 준비해! ”
속사포로 말을 내뱉은 덕개는 능청스레 웃으며 문을 쾅 닫았고 각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일단 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패딩을 입으며 각별은 덕개가 저러는 이유를 곰곰히 궁리해봤다.
그래도 알 방도가 없어 각별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까 자신의 주위를 끌었던 것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을 잠시 바라보다 각별은 방문을 열고 나왔고 자신처럼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듯한 잠뜰과 함께 반쯤 떠밀려 숙소를 나왔다.
그렇게 밖에 나온 잠뜰과 각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추위에 발갛게 변한 볼에 핫팩을 대며 잠뜰이 말했다.
“ 갑자기 애들이 왜 저럴까? ”
“ 낸들 알겠어? 그냥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었나보지. ”
각별은 태연한 척 그 말을 하고는 괜스레 입김을 후- 내뱉었다.
그런가, 잠뜰은 그 대답을 중얼거리며 길에 있던 자그만 돌을 발로 찼다.
바닥에 몇 번 튕기고는 데구르르 굴러가다 멈춘 돌을 지나치며 다시 잠뜰이 입을 떼었다.
“ 넌 졸업하면 뭐할거야? ”
“ 나? 글쎄, 일단 같이 졸업한 애들이랑 술 한 잔 딱- 때리지 않을까? ”
“ 야,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
“ 알아, 농담이야. 나야 이미 취직했으니까, 바로 그 쪽에 다니겠지. 그렇게 돈이나 벌고. ”
너는? 각별은 그 말을 덧붙이며 잠뜰을 바라봤지만 씁쓸히 웃고 있는 잠뜰의 표정에 아차싶었는지 말을 이었다.
“ 미안해, 아무 생각없이... ”
“ 아니야, 오히려 그러길 바랐어. 그만큼 우리가 일상스럽게 지냈다는 것일테니까. ”
잠뜰은 쾌활하게 그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고는 붕어빵을 팔고 있는 곳으로 총총 달려갔다.
그렇게 4봉지의 붕어빵을 산 잠뜰과 각별은 품 속에 붕어빵을 2봉지씩 안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구워내 따끈따끈한 붕어빵에서는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이는 얼었던 손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각별은 조심스레 봉지 안에 있던 붕어빵을 꺼내 한 입 베어물었다.
은은한 팥 향과 함께 입 안에 퍼지는 달달함에 각별은 맛있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각별을 따라 붕어빵을 한 입 베어문 잠뜰은 이가 뜨거웠는지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뜨거운 숨을 뱉어냈다.
그렇게 둘 다 붕어빵을 하나씩 다 먹고 난 후 잠뜰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 너 아까 나한테 졸업하고 무엇을 할거냐고 물어봤지? ”
그 질문에 각별은 고개를 돌렸고 그 끝에는 바다가 보였다.
어제처럼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각별에게 잠뜰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내 졸업은 너의 졸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어쨌든 난 졸업하면 너희들을 지켜볼거야. 잘 지내고 있는지, 힘든 것은 없는지 말이야. ”
잠뜰은 그 말을 하고는 배시시 웃어보였지만 각별은 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에 각별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잠시 머뭇거리다 잠뜰은 각별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 ...괜찮아? ”
“ ... ”
“ ...울어? ”
“ ...아니. ”
“ 그럼 좀 돌아봐줘, 나 때문에 그러면 마음이 좋지 않단 말이야. ”
각별은 그 말에 잠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 잠뜰을 돌아보았다.
각별의 발개져있는 눈가에 잠뜰은 씁쓸히 웃어보이며 말했다.
“ 야, 왜 그래. 평소에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하면 웃으면서 파티나 하겠다고 했잖아. ”
“ 농담이었지, 그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
“ 다 알아, 나도 농담으로 꺼낸 얘기야. ”
잠뜰의 말에 각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잠뜰을 바라보다 잠뜰과 함께 걸어갔다.
그러던 중 각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애들도 까먹은 것 같던데, 얘기 안해줄거야? ”
“ 응, 그럴거야. 아직 여행은 하루나 남았고 죽는 건 내일인데 벌써부터 우중충하게 분위기 처져있게 하고싶지는 않아. ”
잠뜰은 자신이 내일 죽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양 덤덤히 말을 내뱉었고 각별은 묵묵히 잠뜰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 조금은, 나도 조금은 더 즐기고 싶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 일상을 느끼고 싶어. ”
지금의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과분하지만, 잠뜰은 뒤에 이어질 말을 애써 삼키며 다른 말을 뒤에 갖다붙였다.
“ 그래서 그 녀석들한테는 안 알려줄거야, 알려주더라도 내일 알려줄 생각이고. 얘기해주면 또 침울해질게 불보듯 뻔하잖아? ”
잠뜰은 싱긋 웃으며 각별에게 말했고 이에 각별도 피식 옅은 웃음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 때 둘의 눈 앞에 하얀 무언가가 날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에 잠뜰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각별, 우리 붕어빵 애들이랑 다 먹고 눈싸움하러 나가자고 하자. 그 때 쯤이면 조금 쌓이지 않았을까? ”
“ 그래, 그러자. 빨리 돌아가자, 붕어빵 식겠다. ”
각별의 말에 잠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달려나갔고 이를 보며 각별은 같이 가자며 뒤따라갔다.
그렇게 잠시 후 숙소에 도착한 둘은 열쇠로 문을 열었고 앞에서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는 공룡이 서있었다.
“ 뭐야, 이제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
“ 생각보다 멀리 있어서. 어쨌든 사왔잖아, 그걸로 된거지. ”
“ 자, 여기. 이건 팥이고 이건 슈크림이야. ”
그렇게 4봉지의 붕어빵을 받은 공룡은 웃어보였고 이와 함께 덕개와 수현이 현관 복도 옆에 있던 화장실에서 튀어나와 잠뜰과 각별의 눈을 가렸다.
“ 뭐야, 뭔데? ”
“ 후후, 얌전히 따라오라고. 애송이들~ ”
“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이길래... ”
잠뜰과 각별은 조심조심 공룡이 이끄는대로 따라들어갔고 이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이 사라지자 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 마치 생일파티 때 걸어두는 긴 깃발같이 각각 ‘게임개발부 졸업식’ 가 한 자씩 쓰여져 있었고 라더는 웃으며 뒤에 무언가를 숨긴 채 둘을 반겨주고 있었다.
둘은 이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공룡은 쾌활하게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 자, 이제부터 제 1회 게임개발부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 뭐...뭐? 잠시만, 졸업식? ”
“ 그래, 졸업식! 어때, 근사하지? ”
수현은 그 말을 하며 웃어보였고 아직 얼떨떨해보이는 잠뜰과 각별에게 라더는 자신의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보여줬다.
“ 잠시만, 이거 졸업장이잖아?! ”
“ 이거 보고 지금 나 뇌정지왔거든?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래? ”
“ 그러니까 이건 둘을 위한 졸업식이야, 잠뜰 누나는 애초에 졸업식 빠졌을테고 각별 형은 여행 때문에 빠지게 되었잖아. ”
덕개는 그리 말하며 어딘가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고 수현이 말을 이어갔다.
“ 그래서 우리끼리 간단하지만 특별하게 졸업식을 진행해보려고. 사실 이 졸업식 아이디어는 라더가 냈지만. ”
“ 교장실 갔을 때 문득 생각나서 부탁드려서 누나랑 선배 꺼 받아왔어. 사실 나도 가서 생각난거지만. ”
“ 내가 저 깃발 때문에 지각했던거다! 진짜 여기서 그나마 저런 거 할 만한 사람이 나뿐이니... ”
공룡의 투덜거림은 덕개의 환호에 묻혔고 덕개는 밝은 표정으로 두 개의 작은 꽃다발을 들고 왔다.
“ 찾았다! 여기 꽃다발도 있다고, 진짜 졸업식 같지 않아? 그리고 나 진짜 놀랐다? 각별 형이 용케도 위에 졸업장 숨겨두려고 올려둔 거 발견해서 꺼내려고 하더라고, 타이밍이 맞아서 다행이었어. ”
“ 뭐야, 그럼 그게 졸업장이었다고? ”
“ 응, 진짜 몰랐단 말이야? ”
“ 너는 저기 위에 손톱만큼 삐죽 튀어나온 것만 보고도 뭔지 분간이 가냐? ”
각별은 그리 말하며 얼굴을 조금 찡그렸고 공룡은 장난스레 웃어보였다.
“ 자, 그럼 누가 졸업장 읽고 줄거야? ”
“ 당연히 라더가 해야지. ”
“ 뭐? 어째서! ”
“ 형이 아이디어 낸거잖아, 제공자가 그런 것도 해야지! 게다가 졸업장 형이 들고 있기도 하고. ”
그 말에 잠시 미간을 짚던 라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을 떠미는 공룡과 수현의 손길에 둘은 라더 앞에 나란히 섰고 목을 가다듬은 라더는 졸업장을 펼치고 천천히 이를 읽어갔다.
“ 졸업장. 성명 잠뜰. 위 사람은 고등학교 3개년의 전 과정을 수료하였으므로 이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20XX년 1월 X일... 게임개발부 일동. ”
라더는 말을 마치고 웃으며 잠뜰에게 졸업장을 덮어 넘겨줬고 덕개가 잠뜰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각별에게도 졸업장과 꽃다발을 준 뒤 그들은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고 둘은 아직도 반쯤 어안이벙벙해보였다.
그 때 각별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나왔고 이에 모두가 당황했다.
“ 뭐야, 각별 울어? ”
“ 헐, 형이 운다고? ”
“ 아니, 그러니까 나도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
그 말을 내뱉자 어째서인지 눈물이 더욱 새어나왔고 서둘러 각별은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다섯은 각별이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눈물이 그치자 수현이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카메라를 들고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 이 참에 우리 마지막 여행 사진도 찍자, 일단 타이머 설정 해두고... ”
“ 와, 각별 흑역사 전시! 눈물 찔찔 흘려서 눈 퉁퉁 부은 거 사진에 찍힌다! ”
“ 조용히 해, 공룡! ”
“ 으음...됐다! 타이머 돌아간다, 다들 자리 잡아. 뜰누나랑 각별형은 가운데에 서고, 손에 있는 졸업장이랑 꽃다발 잘 보이게 좀 들어. ”
그렇게 포즈를 잡고 이내 셔터 소리가 안에 울려퍼졌다.
여섯은 사진을 보며 내가 잘 나왔네, 네가 못 나왔네 등 실없는 얘기를 하며 붕어빵을 먹었고 잠뜰은 좀 이따 나가서 눈싸움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넷은 좋다며 웃어보였고 셋째 날 또한 그렇게 저물어갔다.
—————
라더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하품을 하며 커튼을 걷은 라더는 갑작스럽게 눈에 비친 햇살에 눈살을 조금 찡그리며 손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밖은 맑고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자신들이 나가서 만든 눈사람은 녹은건지 들어간 후 더 내린 눈 때문인지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라더는 뒤에서 들린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가워 일어난 각별은 하품을 했다.
“ 아, 깼어요? ”
“ 으응... 커튼은 왜 걷은거야. ”
“ 그냥, 밖을 좀 보고 싶어서요. 혹시 그것 때문에 깼나요? ”
“ 맞긴 한데... 뭐, 상관없어. 이 참에 애들이나 빨리 깨워야겠다. ”
“ 그럼 각별 선배가 잠뜰 누나 깨워주세요. 저는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셋 깨우러 갈게요. ”
“ 그래, 혹시 공룡 녀석 안 깨면 물이라도 얼굴에 부어버려. 그러면 놀라면서 일어날걸? ”
“ 뭐, 그건 염두해두겠습니다. ”
라더는 옅게 웃어보이고는 방을 나갔고 각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조금 빗다가 잠뜰에게 말했다.
“ 잠뜰, 일어나. 해 떴어, 어제 그렇게 불태웠다고 기절한 건 아니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에 각별은 잠뜰을 돌아봤고 곤히 잠들어있는 잠뜰을 흔들었다.
“ 일어나라니까, 오늘 아침당번 정해야... ”
몇 번 흔들어도 안 깨어나는 잠뜰에 불현듯 각별은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럴리가, 벌써? 각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며 잠뜰에게 말했다.
“ 잠뜰, 자는거야? 맞지? ”
역시나 잠뜰은 대답하지 않았다, 각별은 손을 잘게 떨며 잠뜰의 호흡을 확인했다.
이는 멎어있었다.
이미 잠뜰의 생명은 사그라들어있었다.
그 순간 각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명 어제도 이랬는데, 그 때의 각별은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그 때의 눈물은 이별에 대한 미련이 담긴 눈물이었다.
각별은 그렇게 울었다, 그 소리에 놀라 각별과 잠뜰이 있는 방에 달려온 넷은 우는 각별과 평온히 눈을 감고 있는 잠뜰을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수현은 주저앉았다, 덕개는 눈물을 터뜨렸고 라더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으며 공룡은 고개를 돌렸다.
쉼표와 마침표의 차이는 꼬리 하나 뿐이다, 그게 떨어지면 결국 쉼표도 마침표가 되고 만다.
그렇게 게임개발부의 졸업 여행에, 잠뜰에게 마침표가 찍혔다.
Written by. 으메웅
Drawn by. 아침노랑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