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YOUR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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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그만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유라 말미암을 것도 없었다. 그저 삐쩍 마른 그 몸을 질질 이끌며 살아가는 너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냥 편히 눈을 감고 저 하늘 위에서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게 너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 이기심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이기적인 나를 위해 네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과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뒤섞여 엉켜버린 모양새였다.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일주일간 너와 함께할 여행을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시간도 없는 너에게 이 추운 겨울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여행일까, 라고. 그냥 병실에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눈들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네가 무슨 여행이냐고. 솔직히는 너를 원망했었다. 꼭, 아프지 않게 되어서 나랑 대학을 같이 가주겠다고, 성인이 되는 그날 밤 나와 함께 알코올을 들이킬 거라고. 그 확신에 찬 너의 웃음을 보지 못할 테니까. 그게 그렇게 원망스러워서, 너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뱉었던 것 같다. 그래. 그렇지만,

그냥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너는 무거운 공기의 흐름에 저항하며 그저 여느 귀한 집 자식들 처럼 웃어 보였다. 정정하자면 애써 웃어 보이려 입꼬리를 올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는 내 모진 말을 시작으로 말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고속버스가 아스팔트 길을 내달렸다. 아직 이른 새벽 공기를 가르고 고속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몇 없었기에 버스 내부는 조용했다. 너는 늘 들고 다니던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이어폰과 연결했다. 이내 그것들은 너를 외부의 소음과 단절 시켜주었고 창밖을 바라보던 너의 금안도 느리게 감겼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책임져줄 작은 배낭을 품에 안은 너는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각별. 일어나. 아침이야. 정확히 오늘은 여행길에 오른 지 닷새가 되던 날 아침이었다. 그간 별다른 일을 없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기로 바다, 공원, 노을이 지는 하늘. 딱 그 정도만 찍었다는 점? 사진기를 들 때 마다 기웃거리던 네게 카메라를 들이밀자 거절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딱히 걸리는 것 같진 않았다. 이걸로 벌써 다섯번 째 너의 이름을 불렀다. 하루 이틀 정도야 뭐. 늦잠을 자는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서 썩기만 하다가 여행을 하니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장악했었으니 원. …그런데 다섯번이 넘어가도 일어나지 않는 너를 보고 있자니 괜한 불안감이 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결국 내가 소리를 치게 만들었다. …응... 그제야 정신이 든 건지 짧은 웅얼거림이 귓가에 들리고 나서야 요동치던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이렇게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데, 이 이상의 여행은 너를 더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그만하자. 돌아가자. 집에가자. 수많은 상황을 예측했다. 언제나 웃어 넘기는 너였으니까, 별 다른 말 없이 돌아갈 거라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 병원으로 돌아가자. …너 더 못 돌아다녀. “

" …싫어. "

" 미쳤어? 너, 일주일 치라고 들고 온 약도 다 떨어져 가잖아. 어쩌려고? 너는 너 하나 죽으면 속이 시원해? 병원에서 썩다가 나오니까 병원은 답답하고 미칠거같아? 그럼 아프지 말았어야지, 그럼…! "

" …그래, 내가 길바닥에서 죽는 꼴 못보겠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네 말대로 병원에 있으면 미칠 것 같고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아. 어차피 병원에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내가, …내가 죽는다는건 변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내가 뭐하러 병원에서 죽어야해? 넌 모르잖아. 이도 저도 싫어? 그럼 차라리 네가 날 죽여. "

말 한마디 한마디가 총탄이 되어 돌아왔다. 심장을 파고드는 그 마디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손을 들고 항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가장 힘든 건 너일 텐데, 내가 아파. 결국에는 내가 이기적인 거였어. 결국 하는 수 없이 네 의견에 맞추어 1월의 찬 바람이 기다리는 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이 뒤의 기억은 아마 찬 바람이 가져간 게 아닐까.



눈을 떠보니 여섯째 날이었다. 웬일로 네가 일찍 일어나있었다. 창문 밖 세상은 안개가 눌러앉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뿐인가. 찬 바람이 건물 사이사이를 드나들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공룡아. 바람이 차니까 오늘은 나가지 말자. 네가 먼저 여행길을 거절했다. 응. 그러지 뭐.

" 약은? "

" …이게 마지막이야. "

" 그럼 내일은, 내일 모래는? "

" …공룡아. 나한테 내일은 없어. 너도 알잖아. "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는 너를 보았다. 아 …그래. 뒷말을 삼켰다. 짧은 대화가 오가는 작은 방은 산소가 부족한 온실이었다. 부족한 산소에 화초는 맥없이 시들어간다. 그게 나와 너였다는 점이 더는 말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겠네. 너 죽고 싶어 했잖아. 혹여 내가 내뱉었다면, 웃으며 넘길 네가 훤히 보였기에. 너의 그런 얼굴이 나를 끝없는 어둠으로 몰아붙였다. 헤어나와서는 안되는, 죽을 때까지 너를 그리며 후회할 나의 어둠으로.

그날 밤이었다. 유난히 증세가 심해진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있지만 하지 않았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훤히 알고도 너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도 않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상체를 숙여가며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네게 그저 물 한잔을 건넸다. 손사래를 치는 네 손에 머그잔을 쥐여주었다. 마르다 못해 앙상해진 손으로 들기에 머그잔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는지 머그잔은 힘없이 날카로운 조각으로 둔갑하였다. 파편을 대충 발로 밀어서 치웠다. 어디 한 곳 안 베이길 바랬지만 세상은 마음대로 흘러가질 않는다. 화끈거리는 발바닥을 뒤로하고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언제까지나 자주 있던 일이니까. 마른기침이 멎어 들어갔다. 손을 떼고 일어나 핸드폰을 집으려던 참이었다.

" …아... 공룡,아 나 죽기 싫어… "

죽기 싫어… 네 붉어진 눈가를 따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죽기 싫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더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길로 숙소를 박차고 나와 공원 벤치에 걸터앉았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네가 죽으면 모두가 편해질 거라 믿었다. 유명한 양파 실험이 떠올랐다. 좋은 말을 해준 양파는 잘 자라지만 이에 반대로 모진 말을 들은 양파는 금방 썩어버린다고. …그렇다면 너의 죽음을 앞당긴 요인은, 원인모를 병이 아니라 나 였던 것일까. 그럴 리가. 내가 너를 죽일 리가.



한참을 서성이다 매서운 칼바람에 등 떠밀려 숙소로 향했다. …그래도 약을 사가면 쓸모는 있겠지. 열아홉 인생에 크게 아픈 적이 없어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담아달라고 했다. 멍청하게. 궁상맞게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아까 박차고 나온 숙소 문 앞에 이르렀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건네볼까. 딱 한 마디만, 한마디면 충분하겠지 싶은 마음을 안고 문을 열었… 거짓말, 장난치지 마.

너도, 나도, 하늘도. 모두 너의 마지막을 내다보았다. 오늘 너의 죽음도 인생의 수 많은 운명 중 하나 였을 것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시들어버린 너의 청춘을 내려다보며, 늦었지만 절망(切望)했다. 거짓말. 아직 12시 안넘었어. 안넘었다고. 절망했기에 부메랑 마냥 돌아오는 절망(絕望)에 휩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나간 네 핸드폰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오늘 하루는 참 이상했다. 늘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던 네가 먼저 일어나 있었고. 바람이 장악한 거리의 소음에 지친 건지 여행을 마다했다. 내 손으로 널 죽이라 하던 네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 모두. 시계는 12시 14분을 막 지나는 참이었다.

짧은 탄식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말 없이 사체가 된 너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 차갑다. 늘 들끓던 열이 모두 공기 중으로 빠져나간 듯 했다. 산소를 들이마시지도, 이산화 탄소를 내뱉지도 않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네 호박 빛 눈동자가 벌써 기억에서 사그라들었다. 요동치던 심장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이다.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라고. 아무 말도 못 전하고 끝이라니.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낮게 깔렸다. 너무 허무해서, 너무 미안해서, 거지 꼴통 같은 운명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네가 너무 가여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네 말이, 그렇게 간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죽기 싫다면서… 어디서 내리는지 알 수 없는 비와 더불어 볼품없이 갈라지는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스며들어 갔다.

미안해.
다 내가 잘못했어.



…이제 와 우리의 마지막을 곱씹어보자면, 난 정말 못난 놈이었고 우리의 이별은 퍽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나는 고작 열 아홉인 너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세웠던 그런 못난 놈이었다. 그리곤 후회했다. 신은 왜 우리에게 일 분도 더 하사해 주시지 않았냐고. 구름 한 점 없고 유난히 새파란 하늘 아래서 너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카세트테이프를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오늘따라 시린 바람에 긴 코트에 손을 묻었다. 존재하지 않는 너를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다 헤져서 끊어져 가는 이 테이프를 붙들고 살아간다. 그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본다라.
나는,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切望(절망) : 간절히 바라다.
絕望(절망) : 모든 희망이 사라지다.


이편지는영국으로부터시작되어··· [중략] 팀

Written by. 애파
Drawn by. 세미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