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은 누구보다 휴식이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
구 선도부장은 학생회 회계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좋은 아침이네. 눈앞에 바로 다가온 얼굴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불쾌함의 감정이 눈 앞을 채운다. 이거 안 치워? 좋은 아침은 얼어 죽을. 입으로는 욕을 담고, 얼굴에는 살의를 품었다. 내가 너 죽이기라도 했니, 어이 없다는 듯 왼손으로 볼 죽 늘린다. 이건 또 뭐 하는 짓인지, 눈 가늘게 떴다. 대체 뭐가 문젠데? 네 존재 자체가 문제야. 아무 의미 없는 말만 주고받는다. 어이가 없어도 참. 각별은 혀를 차며 멱살 잡힌 손 탁 쳐냈다. 이렇게 시답잖은 짓 할 시간에 교과서라도 한 장 더 보겠네. 교문 앞 잠뜰을 뒤로하고 각별은 유유히 본인의 교실로 향한다.
─ 오늘은 부실 한 번 들러.
─ …….
내가 앞으로 영원히 안 잡겠다 선언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오히려 저런 반응이니 진짜로 영원히 접고 싶기는 한데, 그러면 조금 전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예 죽이려고 들겠지. 그래. 잠깐 쉼표를 찍은 것 뿐인데 말이야. 중요한 시기인데 저 애들은 잠시 쉴 생각이 없는 걸까? 아니야.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망하면 알아서 망하는 거고 본인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지. 그러면서도 각별은 속으로 그들의 성적이 바닥을 치길 빌었다.
정갈하게 줄맞춰진 책걸상. 결벽증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더니. 정말 소름 끼칠 정도다. 아주 교실 안의 광을 내 놨네. 작은 한숨. 가장 뒤 창가 자리에 대충 가방 던지고 안을 뒤진다. 휘적휘적. 내가 오늘 어떤 과목 자습을 하려 했었지. 가장 심각한 것부터 하려 했는데.
아니지? 마침 참고서도 전과목을 쟁여 왔는데, 오늘부터는 점심도 거르고 정말 책상에만 붙어있어야겠다. 저녁 시간까지 쭉. 심하다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 나잇대에는 이가 당연한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데. 이번 한 번이 무너진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완벽한 성적들과 높이는 어디에서 보상받아. 아직 시간이 조금이나마 더 남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그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물론 지금도. 입술에 남은 씹힌 상처.
■■.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중요한 시기라 그렇게 떠올리고 강조했으면서 책 한 권 안 챙겨오는 게 어디 있어. 각별은 눈 크게 뜨고 가방 안 살폈다. 책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왜? 아침에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그것들을 풀고 정리했는데. 가방에 구멍이라도 나서 떨어뜨린 것이라 하기엔 그렇게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 교문을 지나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안은 가득 차 있었다.
교문.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자 마자 각별은 자칫하면 깨질 정도로 세게 창문 열어젖혔다. 와, 진짜 징한 ■■■ 자식. 내가 저걸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 바라볼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긴 머리칼 쓸어넘기고 각별 쪽 바라보며 웃는다. 손 흔들어주면서, 아니지. 각별의 문제집 흔들어주면서 말이다. 인상 잔뜩 구긴 채 바라본다. 사람 하나 끌고 오려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사탄보다 더한 ■■. 각별은 마른 세수를 두어 번 했다. 진짜 이놈의 동아리를 해체시키던가 해야지. 소리 나게 이를 갈며 담임의 발걸음 따라 걸상 끌듯 빼내었다. 오늘은 가서 담판을 짓자, 더 이렇게 늘러붙지 말라고. 쉼표? 그딴 거. 마침표로 바꿔버릴 테다.
Written by. HB
Drawn by. 럭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