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YOUR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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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f rest


[쉼표]

음악에서 음을 내지 않은 곳과 그 길이를 나타내는 표.

우리 모두는 다른 속도,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표를 향하여 각자 다르게 달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기가 되면 그 세세한 차이가 깊이 와닿는 순간이 온다.



-



「’나는 폭풍이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라고 미국의 작가, 교육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어려운 일에 겁먹지 말고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상으로 아침방송을 마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기에는 주변에 피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인다. 매년, 매 학기 달라지는 교과목, 그리고 늘어나는 공부량과 떨어지는 성적... 잠뜰이 아무도 듣지 않을 아침방송을 귀담아들으며 그런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때, 그만하고 일어나라는 듯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아 잠뜰! 나 필통 좀 빌려줘~”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물끄러미 창문을 바라보는 잠뜰이 마주친 건 아, 못 본 걸로 해야겠다. 눈을 황급히 내리깔고 영어 단어장을 집어 드는 모양에 더 신나서는 남의 반에 무단 침입해서 보채는 그에게 잠뜰은 질렸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가 얼굴을 들이미는 걸 밀어내고 샤프를 그쪽으로 꺼내두었다. 필기구를 빌리고 싶으면 콕 집어서 빌려달라고 하지 필통을 빌려달라고 하는 건 또 뭔데? 그는 그런 잠뜰 생각은 모른다는 듯 샤프를 집어 들고 앉아서 외면하는 잠뜰을 유심하게 요리조리 둘러보고 나서 종이로 얼굴을 가린 사람의 면전에 질문까지 던졌다. 주변에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네놈 아닐까. 자신에게 자문자답하며 한숨을 쉬고 올려다보았다.

“잠뜰 넌 새 학기부터 악보 들고 공부하냐, 예체능 아니랄까 봐 아침부터 광고를 해라 광고를.”

“뭐..? 분명 영어 단어..”

아뿔싸.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넣어놓은 파일이 단어장이 아니라 악보였을 줄이야. 그래 이 녀석 특기가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거였지. 사실 구색만 챙기려고 가져온 걸 이렇게 꺼내게 되리라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잠뜰은 짜증을 넘어서 두통이 오는 듯싶었다.

“됐고, 넌 새 학기부터 그렇게 뭘 빌리러 다니냐. 넌 문과면서 이과까지... 남의 반에 그만 좀 들어와, 작년에 그렇게 혼나고도 들어오고 싶어?”

“넌 또 그때 얘기냐, 잠깐 노트 빌리러 왔다가 교무실 한번 불려갔던 게 뭐 대수라고 하여간 속 좁기는.. 그래서 내가 너 미안하다고 피자까지 사줬잖아. 아이고 슬퍼라~ 공룡 19년 차 인생에 13년 지기 친구라고 너 하나밖에 없어서 온 건데 완전 이거 뭐.. 사람 잡네 사람 잡아.”

그렇게 섭섭한 티를 내던 공룡 앞에 한숨을 쉬던 잠뜰은 앞문 쪽을 떨떠름하게 쳐다보며 반문했다.

“너 13년 지기 친구 하나 아니거든, 저기 들어오네.. 쟤한테 가서 친한척하던지.”

돌아보던 공룡이 헐, 한마디와 함께 앞 문을 열고 들어오는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그래 제발 저쪽으로 가라, 잠뜰은 간절하게 보내는 텔레파시가 닿기를 바랐다.

“각별! 너 왜 이렇게 오랜만인 거 같냐. 이리 좀 와봐. 잠뜰 아침부터 지 예체능이라고 광고.. 아! 왜 때려! 난폭한 잠뜰!”

각별은 공룡 쪽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잠뜰에게 고생하라는 사인을 대충 보냈다. 잠뜰은 그런 각별의 태도에 더더욱 공룡이랑 붙어먹고 있기 싫었다. 전에는 잘 구슬리면 나가더니 오늘따라 꽤 질척거리는 게 괜히 더 싫어서 잠뜰은 쓴소리를 했다.

“난폭한 잠뜰은 뭐냐, 내가 너 반으로 좀 꺼지랬지. 광고는 너가 그렇게 떠들어 대는 게 광고겠다. 시끄러우니까 나가. 우리 이제 고3이야, 애들 공부해야 돼.”

“예, 어디 악보 공부 열심히 해보시던지.”

끌까지 저러네, 공룡이 한바탕 휩쓸고 간 제 자리에서 잠뜰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새 학기의 시작인 첫 주는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고 매일매일이 피하고 싶은 새로운 것들 투성이였기에 많은 학생들이 적응을 하는 데에 몰두할 즈음 잊고 있었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동아리, 학교에서는 입학 이후부터 필수적으로 하나의 부서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1학년 때 선택한 동아리를 3년 내내 지속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3학년들은 대부분 학습을 위해 동아리가 면제되었는데.. 유일하게 예체능 동아리만큼은 예외였다. 그건 잠뜰, 공룡, 각별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 그냥 동아리 시간에 실기연습을 더 했더라면, 동년생들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수다를 떨던 잠뜰의 머리에 문득 지나친 생각이었다. 교육 쪽은 하나도 관심 없지만 마땅히 음악 관련 동아리가 많지 않은 편이라서 음악교육 동아리에 들어왔는데.. 간판만 번지르르하지 막상 들어오니 다 무너져가는 동아리라서 실망했던 게 아직도 생생한 듯 한숨을 폭 쉬었다. 아직은 새 학기라서 2학년 3학년만 모여있는 교실에 원래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시지도 않던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그러리라 생각도 못 하고 떠들던 학생들이 눈치채고서는 제자리를 잡았다.

당연하듯 새 학기를 안내하고, 동아리 홍보에 대한 부분은 2학년들이 맡기로 결정이 되었지만 담당 선생님은 뭔가 할 말이라도 있으신 듯 3학년을 불러 모았다.

“올해부터 예체능 계열 동아리끼리 모여서 새로운 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그게 3학년한테만 해당되는 사항이라서...”

긴 듯 짧은 설명이 끝나고 잠뜰은 모처럼 심각한 고민에 빠진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설명하신 ’예체능 활동 조직’은 언뜻 보기에는 예체능 활동을 도모하고 새로운 활동을 하게 하는 것 같지만 새로운 학생회의 일종처럼 들렸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 조직에 명부를 올린 동아리에 속한 3학년 학생들은 동아리에서 하는 예체능 활동에 있어 교내 봉사점수를 준다는 것.. 하는 일은 같으면서 봉사점수를 준다면 당연히 하겠다고 나서겠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 점수 필요하기는 한데.. 이거 일단 하면 좋은 거 아냐?”

생각과는 다르게 예체능 활동 조직 참여 조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본인 동아리를 총괄하고 타 예체능 동아리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할 대표자가 있을 것’ 이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 굉장히 새로운 학생회 조직이라는 느낌이 퍽 드는 듯해 자리에 있었던 잠뜰을 비롯한 동아리 3학년생들은 고민에 빠졌다. 더군다나 이미 직책을 맡고 있는 3학년 기장과 부기장을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잠뜰뿐이었기 때문에.. 이득을 보려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맞지만 예체능을 선택한 학생들은 서로가 시간과 짬을 내는 것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가 네가 하라고 선뜻 말 거는 이가 없었다.


...



다른 예체능 동아리도 다른 건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학교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네가 하느니 내가 하느니.. 이럴 거면 하지 말자는 동아리가 점차 생겨나는 와중 가장 처음으로 연극동아리가 참여를 동의하고.. 몇몇의 동아리가 모이더니 체육교육 동아리를 마지막으로 5개의 동아리와 그 대표자들이 결정되어 새 학기 3주 차 두 번째 동아리 시간 때에 그들은 처음으로 모이게 되었다.

‘예체능 활동 조직‘, 도무지 이런 발상은 누가 내는지 모르겠지만.. 강제로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참여하게 된 동아리는 총 다섯으로.. 연극부, 축구부, 음악교육부, 테니스부, 체육교육부였다. 이건..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조합이었다.

“뭐야 너가 왜... 여기 있냐.?”

잠뜰이 마주한 곳에는 피곤한 녀석이 있었다. 이런 활동에서까지 저 녀석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니, 신에게 뜻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눈을 딱 감고 공룡의 옆자리에 앉은 잠뜰은 공룡은 둘째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데..

“얘들아?”

어떻게든 진행하려던 연극부 수현이 입을 열었다.

“나는 연극부 기장 수현인데, 다들 어디 동아리야? 우리 동아리가 제일 먼저 신청해서 그런가 내가 담당 선생님한테 명부를 받긴 했는데..”

다들 이과반이라서 잘 모르겠네, 어색하게 웃으면서 테이블을 둘러앉은 모두를 향해 말을 잇던 수현이 갑자기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운을 뗐다. 갑자기 웬 자기소개람.. 도리어 더 어색해질 것만 같은 분위기에 공룡이 동참했다.

“나는 공룡인데 축구부 대표로 나왔고, 기장은 아니고 딱히 부기장도 아닌데..? 그냥 나 하라고 해서 했어.”

“나는 음악 교육부 잠뜰이야. 나도 그냥 하라고 해서 했고..”

공룡을 뒤로 잠자코 보고 있던 잠뜰이 말을 이었다. 공룡은 잠뜰이 반가운 건지 이 와중에도 찔러보고 귓속말을 하고 있는 게 참 그 다웠다.

“나는..”
“저는..”

동시에 나머지 둘이 동참했다. 서로 말이 겹친 걸 눈치챘는지 말을 멈춘 둘은 왠지 전 소개들과는 달리 사뭇 싸해진 분위기로 서로에게 차례를 넘기기 시작했다.

“아, 너 먼저 해.”

“아니 뭐, 먼저 하세요.”

먼저 하라는 말만 하고는 조용한 분위기에 나머지 셋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각별 왜 저래?‘ 공룡이 의아해하며 속닥였다. 하지만 그건 같은 13년 지기인 잠뜰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도 그런 것이 공룡은 그나마 괜히 연락해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걸 즐겼지만 잠뜰은 각별이랑은 거의 5년 이상을 연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학교도 같이 나오고 동네도 가까웠지만 연락 안 한 기간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저런 사소한 기싸움까지 알 리가 없었다.

“나는 테니스부 기장이면서 조장이고, 각별이야.”

각별이 조금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잠뜰의 생각에 솔직히 각별은 크게 개의치 않았을 거라고 보긴 하지만 상대는 좀처럼 어떨지 알 수가 없었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수현과 공룡도 마찬가지였다.

“라더라고 하고, 체육교육 동아리 기장이야. 잘 부탁해.”

소개가 끝나자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별 탈 없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내가 선생님한테서 몇 개 전달사항을 가져왔는데.... 우리 예술 활동 조직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걸 다 같이 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은 드렸었는데.. 이렇게 한 명씩 뽑아서 조직 위원회..? 아무튼 이거를 만들게 된 게 이유가 있더라고.”

침착하던 수현이 말을 조금 뜸 들이다가 기침 두어 번을 하고는 이었다.

소개가 끝나자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별 탈 없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내가 선생님한테서 몇 개 전달사항을 가져왔는데.... 우리 예술 활동 조직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걸 다 같이 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은 드렸었는데.. 이렇게 한 명씩 뽑아서 조직 위원회..? 아무튼 이거를 만들게 된 게 이유가 있더라고.”

침착하던 수현이 말을 조금 뜸 들이다가 기침 두어 번을 하고는 이었다.

“평소 하던 활동에서 봉사활동이 누적이 되는데 그건 그냥 부원들에 해당하는 이야기고, 우리는 가끔씩 교외로 나가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고, 다 생활기록부에 들어간다고 하시긴 하셨어.”

그냥 기록만 여기에서 하고 평소처럼 동아리활동을 하는 게 아니었어? 모두가 속았다는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았지만 이는 수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같이 속았는데.. 선생님 대체 왜 알려만 주시고 다른 동아리 관리하러 가신 거죠? 수현의 억울함이 넘치다 못해 표정에까지 다 드러난 모양인지 공룡이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우리 맨 처음에 할 게 뭐야? 어차피 해야 될 거면 빨리 듣고 실행해야지. 겨우겨우 다섯 명 모아서 결성된 거니까 결과라도 빨리 나와야 좀.. 그 뭐라고 해, 체면이 살지 않겠어? 우리 예체능 활성 본부인지 활동 본부인지 뭔지~ 이왕 모인 거 뭐라도 해보자.”

활동 조직이거든, 잠뜰이 비웃자 그게 그거라며 따지는 공룡에 각별이 피식 웃었다.

“본부나 조직이나, 조직에 본부가 있을 수도 있지 어, 어차피 조직이 동아리 전체면 본부도 맞는 말 아냐?”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정확한 명칭을 쓰자는 거지.”

무슨 폭력조직이냐, 본부라고 하게. 쿡쿡 웃으며 각별이 말장난에 기꺼이 동참했다. 수현은 작게 웃으며 그들 사이에서 어우러지는 듯했고 라더는 그저 언짢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일단 우리한테 귀띔해 주신 것 중에 교내 숨은 공간 활성화가 있는데.. 맞다, 활동하면서 영상을 중간에 한 번씩 꼭 찍어달라고 하셨거든.. 그것도 합쳐서 축제 같은 데에 쓴다고 하시더라고..”

말 끝을 흐린 수현이 교내 활성화를 조금만 구체화시켜서 해보자며 기획에 박차를 가했다.

...





다섯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미술도 아니고.. 음악 연극 체육이 모여서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숨은 공간을 활용한다는 거지?

축제처럼 부스를 열어야 하나? 머리를 굴리다 보면 모두 그 정도에서 생각이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 다음 동아리 시간까지는 정해야 할 텐데]
[정했어?]

있지도 않던 단체 카톡 방을 만들고 연락을 건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라더, 사실 이 학교에서 라더를 모르는 사람은 적었다. 전교 상위권으로 유명하며 공부면 공부, 전공이면 전공 못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특히 전공인 태권도로 많은 무대에 섰고 예체능 과가 없는데에도 학교에서 띄워 주는 인물이었다. 결국, 수현도 잠뜰도 공룡도 이름을 듣는 순간 결코 그를 모르지 않았으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부스는 좀 그렇지..?]

공룡이 선뜻 제시했다. 사실 부스는 일회성 때문에 진작 이야기에서 빠졌지만, 그것만큼 간편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지속해서 얘기가 나오는데에도 이상하게 모두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아니면 말고. 다른 거 아이디어 있는 사람?]

고작 다섯 명 의견 맞추기가 이렇게 힘들일 인가. 잠자코 듣고 있던 수현이 다른 아이디어 있느냐는 말에 반응했다.

[부스 말고.. 야외에 골목길 같은 공간을 좀 활용하는 건 어때?]

[거기를 좀.. 꾸미는 거지 너무 미술 쪽으로 말고]

[체육이라고 하면 피구 라인을 그리고, 연극이라고 하면 무대를 만드는 거야.]

생각이 많은지 세 번을 끊어 말한 수현의 말에 다시금 조용해졌다. 억지인 감은 있지만, 부스도 미술도 아닌 정확히 두 개가 섞인 무언가였기 때문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찬성으로 가득 찬 의견은 금방 확정되었다.





...



새로운 시작이고 고민이 하나도 없이 모두 발맞춰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모든 조별활동이 그렇듯이 그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툭하면 삐걱거리는 의견과 같은 의견에서도 천차만별로 다른 생각들이 인원도 적은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활동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고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범주가 될 지경이었다.

잠뜰의 생각에 수현의 의견은 항상 번거로웠고 공룡의 의견은 너무 단순했으며 각별은 바빠서 회의에 참여하는 둥 마는 둥 했으며 라더의 의견은 대부분 전에 나온 의견에 살을 붙이는 정도였다. 저도 대단한 역할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 잠뜰이 점심시간을 빌어 생각이 깊어지자 내쉰 한숨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특히 말을 얹었다.

“뭔 한숨을 그렇게 쉬어, 땅 꺼지겠네.”

아니 별건 아니고, 본부에 재료 미리미리 다 가져다 두었느냐며 잠뜰이 물었다. 재료를 옮겨두는 것은 대부분 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각별 담당이었기 때문에 각별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무거운 무대만 빼고 다 가져다 뒀어, 근데 아직 다 제각각인 것 같던데 이거 괜찮냐?”

특히 물끄러미 보며 잠뜰을 향해 물었다.

“뭐 괜찮겠지.”

괜찮다고는 했지만, 아까의 생각처럼 정리되지 못한 게 너무도 많아서 수현에게 찾아가 하나씩 짚어내라기로 결심하고는 각별에게 같이 갈거냐는 의사를 물었다.

어찌저찌 잠뜰, 각별 둘은 문과반으로 향했다. 수현이 공룡이랑 같은 반이라고 했었는데, 둘은 전에 했던 얘기들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지만 수현은 자리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반에 들어가 졸고 있던 공룡을 흔들어 깨운 후 묻자 제가 알리가 있느냐며 덜 깬 목소리로 화내고는 다시 엎드렸는데..

잠뜰은 이를 쌤통이라고 생각하며 반에서 나와 각별과 함께 수현을 기다렸다. 매번 뭐 필요할 때마다 축 내러 오는 게 한 번쯤 당해봐야 알지. 그때, 각별이 가리키는 곳에 수현이 오고 있었다.

“어? 잠뜰이랑 각별 이잖아~ 잠깐 교무실 좀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무슨 일이야?”

간단하게 설명하자 아차 싶은 표정으로 교실에서 정리된 노트를 들고 나왔다.

강당 뒤편 넓은 공간은 피구를 하는 곳으로, 별관 뒤의 좁은 공간은 전통놀이 공간으로, 도서관 옆의 풀이 자란 언덕은 무대 공간으로, 주차장 쪽의 벽은 교가 후렴구 악보 벽화로 만들기 위한 재료와 순서 정도가 적혀있었다.

나무 무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정한 재료가 잘 지워지는 분필 등의 가루였는데. 페인트를 하자는 의견이 줄곧 무시된 결과였다. 이에 대해 계속 주장하던 라더는 꽤 불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페인트나 다른 테이프 재료를 활용한다 하면 작업이 오래 걸릴 것이고 계속해서 얘기했기 때문에 그도 이해한 듯싶었다.



....


[그럼 내일 동아리 시간에 첫 작업이야.]
[그때 보자!]

그 일이 있던 이후, 톡방에서의 수현의 말을 시작으로 공부와 실기.. 모든 학업을 챙기면서도 그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우선 무대 설치를 시작했다. 과거에 사용했었던 간이 무대가 있어서 언덕에 가져다 두기에는 적당할 듯했다.

그런데.. 얘는 누구야? 잠뜰은 처음 보는 얼굴을 마주하며 공룡에게 물었다.

"얘? 노예야 내 노예"

"뭐? 형 자꾸 그럴래? 아이고 선배가 후배더러 노예라고 하네 아이고.."

평범한 선...후배라고 하기에는 친해 보이는데, 공룡을 제외한 자리에 있는 모두가 궁금한 의사를 표하자 그제야 평범한 소개를 시작했다.

"아 여기는 이제 나랑 같은 축구부 후배고, 사실 사촌 동생 친구였는데 동네가 다 같다 보니까 꽤 오래전부터 친해졌어."

이름은 덕개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잠뜰은 공룡이 나무무대 드는 데에 인원이 부족할까 봐 데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보수로 치킨 산다고 했다는데..

"그럼 우선 나무바닥을 체육부들이 들고, 장식 같은걸 수현이랑 잠뜰이 들자."

그런 결과로 팻말이나 장식을 수현과 잠뜰이, 나무바닥을 나머지 넷이 들고 옮기게 되었다.

"덕개 똑바로 들어~ 치킨값 못하면 안 사준다."

"아 형! 나 아예 안 한다."

"이야 이거 악덕 선배잖아?"

"각별, 조용히 해"

인원이 있음에도 무게 때문인지 느려진 4인조가 뒤쪽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잠뜰과 수현은 무사히 무대를 언덕 쪽으로 가져다 두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나무무대 배달도 완벽하게 끝났다. 기다리는 동안 어느 정도의 자리선정을 하며 있었던 수현 잠뜰의 노력에도 애석하게도 나무무대가 둥근 바닥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방향으로든 기울어졌다.

"아...! 이 정도면 평평하다고 생각했는데..!"

수현이 아쉬움을 표정으로 다 드러내고선 한숨을 섞어 쉬며 말했다.

"그냥 여기에 두고 잘 끼워 맞춰보든지 하는 건 어때?"

그런 수현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 잠뜰이 말을 얹었다.

"그래 잠뜰이 말대로 이거 밑에 신문을 끼운다든지 뭐 시험지를 끼운다든지 해서 수평을 대강 맞추자. "

"괜찮은데요? 딱 좋겠다."

각별이 낸 아이디어에 덕개도 공룡도 전부 동의를 표현하고 있는 가운데에 유독 한 사람의 기분만은 그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언짢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라더는 뜸을 들이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거, 잘못하면 되게 흉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라더가 말을 이었다.

"흔들리는 것도 그래, 하다못해 교탁 같은 거 밑에 그런 거 끼워둬도 그렇게 막 안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밑을 조금 파서 수평을 맞추는 게 어때"

라더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결국,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고 임시방편이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하는 김에 완벽하게' 같은 신조를 가지고 있는 듯한 라더라면.... 미흡해 보일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흉해 보이면 흙으로 덮으면 되고 여기 생각보다 둥글어서 파낼 거면 꽤 많이 파내야 할 거야. 너, 할 수있어?"

각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져서는 라더의 눈을 빤히 마주 보았다. 이대로 괜찮은가? 싶었는지 공룡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찰나 라더가 입을 열렸다.

"더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거면 그렇게 해. 아무래도 땅 파내는 거는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인정을 한 듯한 라더가 한 발을 빼고 나머지의 의견에 양보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상은 나머지 네 명의 구성원 모두 라더의 꼼꼼하기만을 바라는 성향이, 성격이 의견을 모으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모두 애써 웃었다. 그나마 덕개만이 이 상황을 그저 우연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자주 삐거덕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봐야 나무무대를 옮길 때와 재료를 선정할 때 정도, 그래도 몇 번을 그러다 보니 다른 부원들은 이유가 있었음에도 의견을 우리가 너무 무시했나? 하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





한주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동아리 시간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 작업을 앞두고 각별은 라인기를 강당 뒤편으로 옮기고 있었다.

"정말 그거 쓸 거야?"

또 라더다. 얘는 왜 자꾸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재작년 일 때문에? 각별은 늘 그렇듯 뭐 그렇다며 라더에게 단답형을 하고 지나치지만, 도무지 그가 저에게 그러는 타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나마 이유 같은 이유라면 재작년..1학년 때의 일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일이라면 사실 내가 더 기분 나빠야 하는 게 아닌가? 짚이는 구석이 생기자 찝찝해진 각별은 라인기를 가져다 두고 기다리면서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각별의 앞에 넷.. 아니 공룡은 언제 또 덕개를 데려왔담. 아무튼, 다섯 명이 얼굴을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피구 필드 작업은 생각보다 꽤 빠르게 끝나갔다. 아무래도 간단한 이용수칙을 적고 라인기로 라인을 그리는 게 끝이다 보니 이미 준비한 이용수칙을 붙이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었고, 라인도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거 봐 잠뜰 내가 각별 그림.”

잠뜰이 바라본 곳에는 구석에 라인 기로 낙서하고 있는 공룡이 있었다. 야 그걸로 낙서하면 안 돼! 그렇게 잠뜰이 공룡한테서 라인기를 뺏어오는 사이. 라더가 한숨을 쉬더니 한마디를 툭 던졌다.

“빨리빨리 좀 하자. 이거 붙이는데에도 꽤 오래 걸렸어 우리.”

방금까지 벽에 붙인 종이들을 툭툭 치며 모두를 바라본 라더는 묵묵히 잠뜰한테서 라인기를 받아들고 빠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실려서인지 이런 일이라면 실수하든 일이 없든 라더의 발밑에 다소 미흡한 라인이 그려졌다.

“넌 그런 식으로 할거면 처음부터 혼자 하지 그랬냐?”

차가운 공기를 끊은 건 각별이었다.
모두 터질게 터졌다는 양 다른 곳을 바라봤고 상황파악이 덜 된 덕개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잖아. 옛날부터 쭉.”

각별은 그런 라더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허허 웃으며 날 선 어조로 말했다.

”라더, 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

”착각을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닐까? 내가 1학년 때 봤던 너 모습이 아직도 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쭈 이젠 말도 끊네? 역시나 그때일 때문이었다는 양 당황한 기색 없이 각별은 답을 이었다.

”그러는 너도 그 모습이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냥 내가 또 알아서 할게, 각별 너는 들어가던지.“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각별은 들어갔고 말이 없어진 채로 그들은 라인을 다 완성하고 나서야 팀을 철수할 수 있었다.




...



다음다음 날쯤 되어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잠뜰은 문득 밖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라 잠뜰은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테니스장에서 팀과 열심히 뛰고 있는 각별이 눈에 들어왔다.

각별은 중학 시절부터 운동을 한다고 꽤 바빴었다. 그건 공룡도 마찬가지였지만.. 각별은 오래전부터 유난히 하나에 몰두하면 집중했기 때문에.. 운동에도 그랬고, 관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저랑 조금 멀어지기도 했겠지만.. 저렇게 밖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잠뜰은 어릴 적에 이상한 짓 하다가 다른 애들이나 울리던 각별이 맞나 싶었다.

”뭐야 이건. 갑자기 웬 아이스크림? 나한테 뭘 사주고 별일이네.“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10분 정도 남은 점심시간을 만끽하려 코트를 나올 때. 잠뜰이 대뜸 먹을 걸 내미는 것에 각별은 적잖이 당황했다.

”뇌물이야 뇌물. 어디 앉아서 좀 같이 먹자.“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눈치 빠른 잠뜰은 특히 별달리 저를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는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매점에서 산 먹을 거라도 건넨 것이었다.

”열심히 하네.“

”그럼 열심히 하지, 님 학원 다니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래도 같은 예체능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있었다. 그걸 위안 삼으며 잠뜰은 전하려 했던 말을 입에서 꺼냈다.

”너.. 화해하면 안돼? 일 더 커지기 전에 잠깐이라도“

뇌물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각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그리고 너 라더한테 못 말하니까 나한테 온 거 아냐? 걔한테 말하면 화낼걸.”

각별의 말에 잠뜰은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뭐..그건 맞는데. 그럼 왜 그런 지라도 알자.”

이거 아주 긴데 10분 안에 얘기할 수 있으려나. 각별은 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했다.

...

그때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사소한 거라면 사소한 것이었는데.. 1학년 때 둘은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우연히 둘이서 2인 1조의 같은 팀이 되었고 지금과 비슷한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라더는 그런 각별을 참고 별말 하지 않았겠지만, 각별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고 이미 라더는 각별을 포기하기 시작했었다고. 라더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신경 써주지 않는 각별이 싫었을 것이고 각별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포기해버린 라더가 싫어졌을 것이라고 잠뜰은 생각했다.

잠뜰은 도리어 그 말을 들으니 라더에게 큰 오해를 한 것만 같았다. 고집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우리보다도 큰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계속 참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게 절대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면 뭐해, 잠뜰이 이 얘기를 들은 지로부터도 벌써 1주일이 지났다. 곧 중간고사시즌이고.. 예체능 활동 본부는... 활동에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그 누구도 연락을 선뜻하지 못했다.

"어! 라더선배, 집 가는 거에요?"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네, 진짜 나더러 혼자 하라는 건가. 라더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곧 공부량이 더 많아질 텐데 이런 시답잖은 관계에나 신경을 쓰고 있는 자신이 그저 답답했다.

"그 공룡이 후배.. 덕개..였나? 어, 나야 뭐.. 집 가는 버스 기다리고 있었지."

"네 맞아요! 선배 혹시 저녁 약속 없으시면 저랑 저기서 떡볶이 드실래요?"

갑자기 분식..? 친하지도 않은 저한테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의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라더가 한마디 먼저 했다.

"먹을 거면 친구나 공룡이랑 먹지. 나 저녁은 안 먹긴 했는데... "

그에 왠지 시무룩한 목소리의 덕개가 대답했다.

"제가 사실 쿠폰을 두 장이나 모아서.. 떡볶이가 두 컵이거든요. 오늘 완전 필이 와서, 이거랑 순대까지 같이 시켜먹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그리고 친구들은 다 학원가고 공룡 형도 바쁘대요. 나중에 사달라고 하기만 해봐."

쿠폰을 두 장씩이나? 라더가 작게 웃고는 한번 소개해보라는 고갯짓을 했다. 버스가 늦게 오던 평범한 하루에서 나름의 이벤트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런데 쿠폰 두 장이면 여기서 얼마나 사 먹은 거야?"

분식집에 착석한 라더와 덕개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덕개의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분식집이 학교 근처 이곳이라는 이야기. 그 정도면 학교도 집 근처라고 치는 게 아니냐는 라더의 농담. 그런 이야기부터 좋아하는 음식, 하는 전공, 각자 성격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까지.

그러다 문득 라더가 진지한 운을 띄우며 말 걸었다.

"맞다. 나 성격하니까 생각났는데.. 그... 공룡이 나 싫다는 얘기하니?"

덕개는 그 말에 정말 의외의 얘기를 들었다는 듯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좀 각별선배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정도만 얘기했지.. 거기 분들 다 좋으신 것 같던데."

뜸을 들인 후 덕개가 말을 이었다.

"라더선배 싫어하는 사람 없을걸요."

그 말에 라더는 걱정이 한시름 놓이는 듯했다. 오히려 저를 부르지 않은 건... 라더 자신에 대해 배려를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나도 그렇게 생각해. 고마워 덕개"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덕개가 물었다.

"선배.. 이건 진짜 얘기하기 싫으시면 안 해도 되는데요.. 각별선배하고 무슨 일.. 있었어요?"

"아, 각별이랑.. 별일은 아니었지."

덕개의 질문에 숨이 턱 막히는 듯했지만 더 이상.. 숨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좋든 싫든 앞으로 같이 활동해야 하고.. 이 명예 부원이 조금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날 떡볶이 맛있었지. 덕개는 공룡과 카톡을 하다가 문득 떠올렸다. 예체능 활동 본부였나? 그거 잘 되고 있겠지. 덕개는 제방 침대에 누워 남 걱정이나 하는 자신에게 한숨을 쉬었다.

"어휴, 내 걱정이나 해야지"

하여간 라더선배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나가질 않는다니까. 하며 또 라더의 말을 떠올리는 덕개였다.

"간단히 말하면 각별하고는 1학년 초에 같은 반이었어 단둘이 같은 조가 됐고.. 성격은 정말 안 맞지만 진행하기에는 다 좋았는데, 나를 각별이 험담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어. 2학년 때나 되어서... 아니라는 걸 알게 됐는데, 소통을 안 하고 기 싸움만 했다 보니까.. 말하기에는 이미 늦었더라고."

"걔는 아마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했겠지. "

덕개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오해라면..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그 일로부터 2주째 되어가고 있었다. 활동은 완전히 멈춘 것 만 같았고 수현조차도 별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사실상 해체였다.

“각별, 누가 너 부르는데?”
갑자기 아침 쉬는 시간부터 날 부르는 사람? 각별은 기지개를 한 번 펴고는 어슬렁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가자 의외의 얼굴이 보였다.

“... 왜”

마음을 먹고 각별을 찾아갔지만 라더는 대뜸 말하는 것도 어이가 없을 거로 생각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얘기 안 할 거면 들어갈게.”

잠깐만. 라더가 각별의 교복 자락을 한차례 붙잡았다.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할 얘기는 아닌 거 아는데. 우리 활동도 해야하고..”

각별은 예상 밖의 진정성 있는 사과에 머리가 한번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1학년 때 미안했어. 그런데.. 너 계속 고집부릴 거면 사과도 안 해줬으면 좋겠어.”

침묵이 이어졌다. 고집.. 뭘 이야기하는지 라더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성격이 안 맞는 건 상관없어, 나는 각별 너가 나랑 조까지 했으면서 제멋대로라고, 안 좋은 소문을 냈다고.. 알고 있어서. 그래서 그랬던 거지.. 포기하려고 했던 게 아냐.”

무슨.. 소문? 각별은 제 귀를 의심했다. 대체 누가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냈었던 거지? 이간질에 단단히 도가 튼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냐.. 정말 나는 아냐. 대체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은 거야? 그럼 지금까지 오해하고.. 그랬다는 거야?”

특히 혼란해하는 것에 라더는 침착하게 답했다.

“아니, 그 소문이라는걸 시작한 게 너가 아니었어.. 험담을 당한 사람도 내가 아니었고. 완전히 오해라는 거는 작년에.. 진작 알았는데.. 말할 타이밍을 놓친 거지. 네가 아직도 나 싫어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심술이라도 부렸다는 건가. 그래도 찜찜했던 마음이 한결 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뭐어..
“라더, 말해줘서 고마워.”

“각별, 사과 받아줘서 고마워.”

복도에서 그러는 것을 잠뜰은 지켜보았다. 누구한테도 말할 생각은 없지만.. 타인의 싸움이나 화해는 원래 구경하는 게 최고 재밌으니까. 그날 하루, 또 학원에 가서도 한참 둘에 대해 생각을 했다.



...



오해야말로 정말 박자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양손 모두 열심히 달려도 박자가 맞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되어버리는 피아노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같이 달려도 한번 어긋나면 그 오해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서로 인정한 뒤에 다시 마주 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통 악보에서는 그걸 쉼표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냥.. 잠시 쉼표를 사용했다.

잠뜰은 웃으며 휴대폰에 온 연락을 바라보았다.

[선배님들! 저도 명예 예체능 활동 본부래요!]

한 식구가 더 늘어나서, 앞으로 활동이 더 정신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라더까지도 농담을 하는 걸 보니.. 두 식구가 늘어난 건가? 잠뜰, 수현, 각별, 공룡 모두는 작게 웃으며 한번 한숨을 쉬고는 카톡으로 다음 회의를 시작했다.


우리에게 잠깐의 쉼표가 갔으니 이제 다시 합을 맞춰볼 시간이다.




Written by. 아이캐롯
Drawn by. 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