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욕설과 사망소재, 유혈묘사가 등장합니다. 트리거가 눌리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난무하는 글입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고 읽어주세요. 다소 징그러운 표현이 존재합니다.
공룡, 안녕!
-공룡 지각-
휘이잉- 뼛속까지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이 날씨에 굳이 여행을 가자고 한 덕개가 참 원망스럽다. 하지만 덕개는 졸업여행은 한번 꼭 가야지~ 라고 하면서 졸업 여행 가면 좋은 이유를 줄줄이 설명했고, 뭐 추억도 쌓이고 사이도 더 돈독해지고... 하여간 쓸데없는 곳에만 집착해요. 그리고, 펜션을 하필이면 산 쪽으로 잡아서 전철 타고도 1시간을 더 걸어가야 하는데, 팬션잡은 놈 누구야 딱대 시발. 아무튼, 어찌어찌 도착했긴 했다. 수영장도 있고, -겨울이라 수영은 못하지만 이뻤다.- 2층에 옥상까지. 외관은 뭐 그럭저럭 완벽하네. -팬션잡은 놈 누구야 잘했어.- 자, 이젠 가장 중요한 내관을 볼 차례다. 일단 현관문 고급스러운 거부터 합격. 수도? 오케이. 전기장판 불도 뜨뜻하게 잘 들어오고, 와 방 4개! 화장실 3개! 이거 완전 혜자네. 부엌도 인덕션에 별 세 개 냉장고도 있고, 거실은 말할 것도 없다. 큰 87인치 티브이에, 존나게 안락한 넓은 소파. 진짜 놀란 건, 실내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영장이 있는 거다.
누나, 빨리 와! 이제 밥해야지.
라더가 소리쳤다. 한참 구경을 즐기던 잠뜰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저녁 7시, 슬슬 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중에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끽해봤자 계란후라이 정도. 하지만 우리들은 K-고삼, 공부 중 공복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 라면 6봉지와 밥 3공기만으로도 우리 6명이 먹기엔 충분했다. 순서를 정리해보자면,
1. 존나 큰 냄비 준비
2. 물 쪼르륵~
3. 라면 6개 투입.
4. 스프 휘리릭~ 건더기 휘리릭~
5. 달걀 한손으로 멋지게 넣어보겠다며 달걀껍데기 빠뜨린 정공룡 저주하기
6. 다시 달걀 이쁘게 4개 넣고 밥까지 넣으면 완성~
완성도 됐겠다, 이제는 존나 행복하게 먹을 시간이다. 후루룩, 수현이 한입 먹은 후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다.-당연히 과장된 표현이다.- 어찌나 맛있으면 눈물을 흘리겠는가. 가장 빨리 태어난 새끼도 먹었겠다, 나머지들도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하긴, 전철 타느라 점심도 패스했다. 먹은 거야 아침에 토스트와 환승하면서 사탕 하나 먹은 것. 그러니 이렇게 먹을 수 밖에 없지. 타닥타닥- 젓가락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10월 20일 대개봉!-
끄억-
아 더러워;;
적당히, 아니 건더기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비워먹은 우리는 어디선가 꺼내온 보드게임을 진행했다. 이름하여 전설의 그 게임 부루마블! 이것만 2시간, 또 어디서 가져왔는지 젠가를 가져왔다.
쟨 진짜 저 가방 하나만 들고 온 거 맞아?
에이, 맞는다니까? 다 방법이 있지요~
뒤이어 펭귄팡팡, 루미큐브 등등 많은 보드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정공룡이 챙겨온 것 이였다. 한 새벽 2시 쯤 이였나, 똑같은 게임도 많이 했고, 모두가 졸리고 지쳤던 시간이었다. 딱 한명 빼고. 아직도 쌩쌩한 공룡은 귀여운 공룡 맨투맨을 금세 공룡 후드티로 바꿔입고 몬스터를 사 들고 오겠다며 마스크까지 쓰고 준비했다. 각별은 위험하다며 같이 가겠다고 친절하게 말했지만,
와~ 천하의 그 김각별이 호의를 베푼다고? 나 뒤졌냐? 다른 세곈가 ㅋㅋㅋㅋㅋ
저 시발새끼가.
이딴 반응에 혼자 나가서 뒤지라고 저주를 내리는 각별을 뒤로한 채, 황수현이 여기 고라니 많이 나온다고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김각별 대신 나간다는 거에 저 새끼, 아니 정공룡은
어이쿠야, 내가 많이 걱정되나 봐? 하 진짜 나 피곤해~
공룡아..^^
쟤도 참으로 사람 빡치게 하는 거에 뭐가 있나 보다. 라더가 던진 한마디에 알겠다는 둥 수현에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완전 깡시골 산속 깊은 곳은 아니었다만, 그렇다고 편의점이 가까운 건 아녔다. 이미 잠은 다 깼지새키들 밤새워야지 ㅋㅋㅋ 쫄보쉨들. 이라고 약 올리는 정공룡-사람 빡치게 하는데 진짜 뭐 있나 보다.-때문에 하필이면 승부욕 센 애들한테 불붙였다.
존나, 야 사와 30캔. 누가 이기나 보자 3일 동안 한 번도 안졸고 누가 버티나 내기해 시발
개빡친 잠뜰의 말에 공룡도 질 수 없이 말을 뱉어냈다.
지랄하네. 수능보기 전에도 2시엔 꼭 자던 애가 풉키풉키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싸우는 잠뜰과 공룡에 라더는 저새끼들 참 유치하다 라며 박잠뜰이 오늘 5시도 못넘겨서 잠들 거란 거에 전 재산, 20만원을 걸었다.
싸운 지 30분, 작작 싸우고 나가라는 덕개의 말에 공룡은 살기의 눈초리로 잠뜰을 바라보며 대충 슬리퍼 구겨신고 수현과 함께 나갔다.
으, 추워.
2월 이다. 굉장히 추운 날씨. 롱패딩도 안 입고 얇은 후드집업만 입고 나온 공룡은 존나 춥다며 핫팩좀 달라고 수현에게 질척거리다가 그 순하던 수현에게 쌍욕먹고 조용해졌다. 편의점 까진 걸어서 20분. 춥기도 하고 친구들도 기다리니까 뛰자는 수현의 말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천천히 걷는 공룡은 방금 수현이를 개빡치게, 진짜 개빡치게 할 뻔했다. 뒤에서 쌍엿 날리는걸 인지했는지 공룡이 빙~ 돌아서 수현을 바라보았다.
하, 그래. 이까짓 거.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걸래?
내기 중독자.
에이, 늦게 도착한 사람이 사기다!
저 미친새끼.
공룡은 제 말이 끝나자 마자 미친 듯이 뛰어갔다. 수현의 말은 무시한 채.
한 5분쯤 뛰었을까, 헉헉대는 수현을 바라본 공룡은 좀 쉬어가자고 제안했다. 수현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아니? ㅎㅎ
정공룡 뒤통수를 휘갈기고 재빠르게 뛰어갔다.-누가 토끼 아니랄까 봐-
아, 진짜 저새끼. 야 시발 함 떠? 떠?
공룡도 수현을 따라서 존나 뛰었다. 저만치 앞에있던 수현을 앞지를 정도로 뛰었다. 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수현을 앞지른 공룡은 편의점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체력없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더 힘을 내긴 힘들었다. 머지않아 수현도 도착했고, 공룡은 웃으며
새키 존나 느리네ㅋㅎ 네가 사 와라, 30캔.
.. 라고 말했다. 수현은 순순히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긴 했다. 생얼음을 몇봉지 사서 정공룡 머리에 쏟으려고 했으나... 정공룡도 춥다며 따라 들어온 바람에 수현은 얼음이 있는 곳으로 가던 발걸음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알바생의 눈을 피해 음료수 진열대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는 동네에 하나뿐인 작은 편의점, 30캔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씨, 별로 없네. 있는 거만 챙겨서 가자.
언제 뒤에 있었는지 모를 공룡이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19캔. 19캔이면 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대로 계산하고 나가려 하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룡과 수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알바생은 괜찮다며 원래 여기 주변에 고라니 많이 산다고 이거 고라니 울음소리라고 말해줬지만 어째서인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그들 이였다. 평소에 공부 안 하고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댄 공룡은 망상회로 존나게 돌렸다. '저 소리가 사실은 사람의 비명이라면? 누군가 이 근처에서 살인을 했다면? 우리가 도망가야 한다면? 아직 다리는 많이 아픈데, 우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물음표만이 가득 채운 그의 생각이었다. 알바생은 또 한 번, 여기는 고라니가 많이 살아서 고라니 울음소리라고. 걱정 말라고 설명했다. 계속 편의점에서 기다릴 순 없기에 공룡과 수현은 애써 괜찮은 척 인사하고 나갔다.
아아아아아아악!
이건 틀림없다. 편의점을 나오자 마자 들리는 높은 목소리. 고라니는 이런 톤이 나올 수 있나? 이건 여성의 비명이다. 공룡은,
이거 고라니 울음소리 아니다. 사람 목소리야.
... 이어지는 수현의 침묵. 소리가 난 곳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공룡의 행동을 본 수현은 이거 괜히 안좋은 일에 엮인다고, 그냥 신고만 하고 가자고 정공룡을 말렸다. 정공룡은 씩 한번 웃어주고 소리 난 곳으로 달렸다. 수현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정공룡 따라 뛰었다. 편의점으로 달릴 때와 획실히 다른 속도지만, 그들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들이 소리가 난 곳에 도착했을 땐 차들이 별로 안 다니는, CCTV도 없는 음산한 도로였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진짜 고라니 울음소린가- 하고 발걸음을 돌릴려던 그때, 수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룡아... 저거 뭐야?
공룡은 수현이 가리킨 쪽으로 다시 허리를 돌려 미간을 찌푸려 보았다. 남성과 여성의 시체. 잠시만, 시체?
공룡아, 이건 신고해야해.
공룡은 당황한 건지, 충격받았는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시체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검은, 그나마 가로등 불빛에 비쳐 검붉은 색을 띄고 있는 피들을 보며 수현마저 말을 잃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수현은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고 숫자판을 천천히 눌렀다. 1... 1... 공룡아, 이건 119에 해야 해 112에 해야 해? 수현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왜 소설에서 이런 주인공들을 보고 어리석다고 낄낄대며 웃었을까. 조금은 후회된다. 모르겠다. 어느하나 전화하면 알아서 해주겠지. 수현은 다시 천천히 숫자를 눌렀다. 112. 잠시 후 남성의 음성이 나왔다.
여기... 성인 남자랑 여자 시체가 있는데요... 네 여긴... 네네. 네 제발 빨리 와주세요. 제발요. 시체에... 짐승에 물린 자국이 있는데요 무서워요 빨리좀 와주세요 빨리좀요 빨리..
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전화를 끊은 뒤, 수현이 고개를 돌려 공룡을 봤을 땐 이미 정공룡은 시체 앞에서 기웃대고 있었다.
너 미쳤어? 시체엔 병균 많은 거 너 알잖아. 빨리 뒤로..
수현이 공룡을 잡아당기려 공룡의 옆으로 가자마자 수현도 입을 벌리지 못했다. 희번떡 떠져있는 눈이 그들의 등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팔, 다리, 얼굴, 몸. 모든 부위에 이빨에 물린 자국들이 난무했다. 기괴하게 꺾인 팔들과 다리들은 수현과 공룡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도 물려 너덜너덜해진 살점들은 충분히 그들을 무섭고, 당황스럽고, 왠지 모를 오싹함에 수현의 발은 펜션으로 향하길 바랬다. 아쉽게도, 충격받은 수현의 뇌는 발을 조종할 힘이 없었다. 그 시체가 움직이기 전까지.
잠시만,
움직여?
저건 시체다. 틀림없이 죽었고, 숨도 끊겼다. '사후경직... 그래 사후경직 이겠지.'라고 생각하던 수현은 점점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시체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고, 공룡이와 함께 도망쳐야 한다. 이건 게임에서나 보던 좀비다. 영화에서나 보던, 만화에서나 보던. 그런 비현실적인 생물체였다. 빨리, 빨리. 경찰이 도착하면 해결해 줄 거고, 우린 빨리 펜션으로 도망쳐야한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땐 이미 시체의 피부는 초록색과 파랑빨강의 핏줄이 뒤덮여있었다. 공룡의 손목을 잡고 뛰려고 한 순간, 좀비는 공룡의 발목을 잡았다. 수현은 안간힘을 다해 공룡을 잡아당겼다. 저 미친 괴물은, 그니까 좀비는 어찌나 힘이 센지 공룡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수현아,
다른 좀비가 일어섰다.
나 버리고 빨리 도망가.
수현과 공룡은 몇십분 전만 해도 편의점을 향해 뛰었고, 편의점에서 몬스터를 고르고 계산까지 했었다. 근데, 갑자기 장르 변경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린 몇시간 전만 해도 각별, 잠뜰, 라더, 덕개와 함께 졸업여행을 왔었고, 하하호호 행복하게 밤새울 준비를 했었다. 절망적인 심정의 수현은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돼 공룡아. 너 아직 살날 많아. 우리 이렇게 헤어지진 말자. 응? 저 좀비들 손만 잘라내면,
좀비가 공룡의 어깨를 잡았다. 아니, 물었다. 공룡의 입에서 나오는 짧은 윽 소리. 공룡의 눈에 점점, 점점 초점이 없어진다. 피부가 파래진다. 공룡의 목과 손등으로 핏줄이 울긋불긋 튀어나온다.
공룡아, 안돼. 내가 그러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잖아..
공룡의 발목을 잡던 좀비도 공룡을 물었다. 아니, 뜯었다.
수현, 아. 빨리 도망, 가. 빨, 리.
공룡의 말이 뚝뚝 끊긴다. 수현은 그런 공룡의 모습을 더 지켜볼 수 없었다.
몬, 스터 꼭 챙. 기고.
공룡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수현에게 달려들지 않는 저 좀비들을 보며, 점점 초록색과 울긋불긋 핏줄들로 덮여가는 공룡을 보며. 눈물을 홈치며 몬스터 19캔이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뛰었다.
공룡, 안녕.
수현은 이 말을 나지막이 말하고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슬펐다. 화났다. 좀비 손, 그까짓 거 발로 밟고 공룡이랑 튈걸. 이깟 몬스터 던져서 좀비들 넘어뜨릴걸. 후회된다. '공룡'은 이제 없다. '좀비공룡' 이 그 자리를 채웠다. 꾸역꾸역 채웠다. 수현은 정말 슬펐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친구를 잃었다는 그 슬픔을 사람들이 알긴 할까. 또 몇십분을 달려, 슬리퍼가 다 헤질 정도로 뛴 수현은 격정적으로 도어락을 누르고, 들어가자마자 식은땀과 눈물을 흘려 4명의 눈빛을 한꺼번에 받았다.
엥, 뭐야 공룡인?
순간 수현의 귀엔 시끌벅적한 티브이 소리도, 잠뜰의 말소리도. 모든 게 뭉개져 들렸다.
황수현, 정신 차리고. 정공룡은? 또 넘어졌지?
수현이 몬스터라 든 봉지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공룡이가... 좀비에 물렸어.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Written by. 지유
Drawn by.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