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YOUR DREAM
  • Home
  • Portfolio
  • About
    • Biography
    • Client
    • History
  • Contact

무제


덕개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원래도 그는 딱히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라더는 덕개의 친형이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아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덕개가 구급차 신세를 지는 일은 보기 드문 편이 아니었으니 이번에도 감기가 심하게 걸렸나, 하며 라더는 학교가 끝나고 저녁 즈음에 병문안이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생각이라면 가는 길에 편의점이나 들러서 야채죽이나 사갈까. 맨날 가던 병원에 있는거 맞겠지? 요 며칠 사이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더니 결국 이러는구나, 정도.
 
 
 
"이번에도 감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폐에 문제가 생겼대."
"폐에? 무슨 일인데."
"몰라. 원인불명이라고 하던데."
 
 
 
...위험한거야? 응, 많이. 난치병이래. 덕개는 그 말을 하고선 고개를 푹 숙이고 라더를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라더는 덕개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거 거짓말이지, 그치? 덕개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1초, 3초, 7초, 10초. 그 이후로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라더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덕개를 뒤로하고 중환자실을 빠져나가 의사에게로 갔다.
 
 
 
이게 말이 되나? 라더는 병원 카운터 앞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난치병이랜다, 덕개가.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고 길어봐야 내년. 17살짜리 애한테 난치병이라니. 신이 있다면 정말이지 한대 쳐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잘난 의사들도 스테로이드제로 연명하는게 고작이라고 했다. 결국은 올해 겨울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_
 
 
 
 
 
"너 병원에 계속 있으면 안 갑갑해?"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애."
"밖에 잠깐 나가자. 링거 꽂고 있으니까 멀리는 못 나가겠고, 그냥 앞에 공원 같은데라도."
 
 
덕개는 거의 근 일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링거를 붙잡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한 십분즈음 걸었을까, 라더와 덕개는 자판기에서 아메리카노 한 캔과 이온음료 한 캔을 사서 공원 분수대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공원 스피커에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포말같은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꽤 괜찮은 노래였다. 동시에 공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더해졌다. 공원의 사람들은 짧은 가을이 이미 가버리고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아는지 두꺼운 기모 옷이나 조금 얇아보이는 패딩을 입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날짜상으로는 겨울이 아니었지만 이미 반쯤은 겨울인 셈이었다.
 
 
라더는 캔을 따서 안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에 씁쓰름한 커피 향이 둥글게 입 안에서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입맛이 변해가기라도 하는 것인지, 오늘따라 유독 커피가 쓰다. 입맛이 변한게 아니라면 옆에 있는 덕개 때문일려나. 라더가 풍선을 들고 정신없이 공원에서 뛰는 아이들을 눈으로 흘깃 바라보고 생각했다. 이쪽 공원에는 풍선 같은 것도 파나? 곧이어 저 먼 발치에 동글동글한 고래 모양 풍선을 파는 상인이 보이자 라더는 풍선을 하나 사서 덕개의 손에 쥐어줬다.
 
 
"받아."
"뭐야, 화장실 간 줄 알았더니, 이거 사러 갔다온거야?"
"너 이런거 좋아할 것 같아서. 아니더라도 병원에는 이런거 없으니까 한번 사봤어."
"고래모양 짱 귀엽다."
 
 
덕개는 고래 풍선의 머리 부분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하늘고래는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다던데, 부럽다. 너도 몸 나으면 나중에 가고싶은 곳 가. 응, 나으면 아이슬란드 가서 오로라도 보고 여기저기 다 돌아다닐거야. 덕개는 이 말을 끝으로 공원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
 
 
 
 
 
"형은 왜 맨날 와? 수능 얼마 안남았잖아."
"최저만 맞추면 돼. 몸은 좀 괜찮아?"
"괜찮을 리가. 항상 똑같지 뭐."
"그래. 그것보다 너 무슨 노래를 그렇게 듣냐."
 
 
같이 들을래? 덕개가 버즈 한쪽을 라더에게 내밀었다. 덕개는 라더가 한쪽을 받아 끼는 것을 보고 잠시간 멈추었던 노래를 다시 재생했다. 잔잔하고 여린 클래식 곡이다. 너 원래 이런 곡 잘 듣는 편 아니었잖아. 사람은 원래 변해. 그러냐. 노래가 점점 막바지에 이르러갈 때쯤 덕개는 잠이 들었다. 라더는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이 몇개나 재생되는 동안 덕개를 하릴없이 계속 바라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이 그리 미웠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지금은... 그저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네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인간의 삶에서 한 철도 살지 못하고 폐병에 죽어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을 텐데.
 
 
바람이 한바탕 세게 부는가 싶더니 진눈깨비가 내렸다. -사실 진눈깨비라고 하기에는 비의 양이 더 많았다.- 라더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밤이 오늘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덕개가 시린 비와 눈에 잠에서 깨도 혼자 긴 밤에 떨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는 뻑뻑한 눈을 감고 아직 덕개가 괜찮았을 적이었던 올해 여름을 떠올렸다. 분명 너무 더워 정신이 어지럽던 날이였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기억이 잘 떠오른다.
 
 
 
 
교실이 조용하다. 곧 비가 올 참인지 바깥 날씨가 얄궂게 우중충하다. 펜만 딸깍거릴 뿐인데도 이마에서 땀이 진득한 공기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 덕개가 어깨 한쪽에만 가방끈을 걸치고 라더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빠져나간 삼학년 교실로 걸어들어왔다. 형 집에 안가? 이것만 다 풀고 갈거야. 문제 푸는거 재밌어? 재밌겠냐.
 
 
덕개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던 라더의 바로 앞 책상으로 느릿느릿 걸어가 그 위에 턱 엎어진 채로 말했다. 안 더워? 난 더워서 죽을 것 같은데.
 
 
"미니 선풍기 있어? 있으면 나 빌려주라."
"없으니까 이러고 있지 멍청아. 있어도 안 빌려 줬을걸."
"나보다 두살이나 많은 주제에 쩨쩨하기는. 그것도 능력이다 능력."
"니가 더 쩨쩨해 임마."
 
 
의미없는 한담이 계속 이어질 때쯤 창문 밖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산 없는데. 문제집 같은건 그냥 집에서 풀걸 그랬나. 라더는 국어 문제를 45번까지 전부 풀고 고개를 슥 들어올려 자신을 바라보는 덕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 우산 있냐? 아니,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어서 안 가져왔어. 나도 안 가져왔는데 어떡하냐. 그냥 둘이 비 맞고 가자. 별로 많이 오는 것 같지도 않잖아. 그래, 그럼 더 쏟아지기 전에 가자. 라더가 문제집을 가방에 대충 쑤셔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비오니까 신발장에서 쉰내나. 아니 원래도 났었나? 여튼 이거 형 발냄새 같아서 기분 나빠.
뭐래 니 발냄새거든.
난 발냄새 안나는데. 형 신발 다 신었지? 하나 둘 셋하면 가방 머리에 쓰고 뛰는거다?
응.
하나, 둘...이 자식아 왜 둘에 뛰어가!
아직도 이런 뻔한 거에 속는 사람이 있었냐. 너 진짜...
 
 
"형, 형. 일어나."
 
 
덕개가 라더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깨웠다. 아무래도 잠깐 눈만 감고 있는다는게 깜박 졸아버린 모양이다.
 
 
"창문 봐바. 비도 섞여있긴 한데, 그래도 지금 밖에 눈온다!"
"그거 오늘 새벽부터 왔는데."
"뭐야, 나만 이제 본거야? 치사하게. 좀 깨워주지..."
 
 
너 내일 종양 수술하는데 어떻게 깨워. 컨디션 안좋았다가 문제 생길 일이라도 있냐. 라더가 무뚝뚝한 투로 대답했다. 너 밤에 움찔거릴 때마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말이 그렇다는거지. 지금이라도 봤으니까 난 만족해."
"그러냐. 나 밖에 나갔다 올건데 뭐 사다줄까?"
"아니, 괜찮아. 내 신경쓰지 말고 그냥 갔다와."
 
 
병원 바깥의 밤공기가 시리다. 시린 날에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걸어가고 가로등은 켜지고 도로의 차들은 움직이고 초목은 원래 있었던 자리에 건재하게 자리하고 있다. 라더는 낮은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그 모습들을 관찰했다. 세상은 잔인하다. 라더의 소망이 삐걱대며 멈추어도, 덕개의 몸이 하루하루 빛을 잃어 꺼져가도 세상은 그들의 사정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을 신경쓰기에 세상은 너무 바빴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채로 변화하고 흘러간다. 단지 그것 뿐이라는 사실에 라더는 마음이 아팠다.
 
 
 
 
 
-
 
 
 
 
 
덕개는 등 뒤의 벽에 몸을 기대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내일이면 폐 종양 수술. 수술이 성공적이라면 내년 봄은 보고 갈 수 있으려나. 겨울은 실로 말해 죽음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봄은 죽음 위에 오는 것인가? 죽고 나서는 봄을 볼 수 없으니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니, 차라리 봄 같은건 보지 않아도 괜찮으니 짧은 겨울 안에 그간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었다.
 
 
"형, 같이 아이슬란드 갈래?"
 
 
덕개가 병실로 들어오는 라더에게 나즈막이 말했다.
 
 
"너 그 몸으로 어딜가게."
"형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적 있어?"
 
 
"있잖아, 나는 죽는게 너무 무서워. 더이상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진짜 싫어, 싫은데..."
 
 
이제 정말 얼마 안남았대. 덕개가 가느라단 눈물을 끊지 않은 채로 줄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년 봄을 보지 않아도 좋아. 원래보다 더 일찍 죽어버려도 괜찮아. 그냥 하고 싶었던거 할래. 못하고 죽으면 나 진쩌 후회할 거 같애. 그러니까 형 수능 끝나면 같이 오로라 보러가자, 응?"
 
 
라더는 잠자코 덕개의 말을 듣고 있다가 달아오른 눈가를 들키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꽉 깨물고서 얇은 덕개의 몸을 여리게 그러안으며 울음을 눌러담아 막힌 목소리로 그래, 하며 답했다. 라더는 잠시동안 피가 난 입술이 무안할 만큼 서럽게 울었다.
 
 
"형, 나 괜찮아. 왜 울어. 나 진짜 괜찮아..."
 
 
 
 
 
.
 
 
 
 
 
덕개가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수술 도중에 문제가 생겼댄다. 그래서 수술하는 동안 병원 직원들이 수술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나보다. 인공호흡기 사이로 공기가 가득 들이찼다가 빠져나갔다. 바라보는 라더도, 바라보아지는 덕개의 낯빛도 양쪽 모두 어둡다. 라더는 도망치듯 병실을 뛰쳐나갔다. 덕개의 얼굴을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의사가 며칠만 있으면 깨어난다 했지만 그래도 역시 쓰러진 덕개의 얼굴을 보는건 심장 한켠이 버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라더는 며칠간 수능 공부를 핑계로 4일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때 덕개는 언제나처럼 맑게 웃고 있었다.
 
 
"왔어? 안 와서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
"일 같은거 없어. 그냥 공부하느라 조금 바빠서."
 
 
라더는 덕개의 옆에 앉아 하얀 노트북을 켰다.
 
 
"갑자기 웬 노트북? 보여줄거라도 있어?"
"병원에서 가는 여행같은거. 그럴 일 없겠지만 직접 아이슬란드 못 갈 수도 있으니까. 미리 노트북으로라도 보자. 약간 유치한데, 우리 이걸로 여행가는거야."
"그럼 우리 극지방으로 가는거야?"
"응."
 
 
덕개는 라더에게서 노트북을 받아 가는 손으로 검색창에 아이슬란드를 입력했다. 노트북 자판을 쳐보는 것은 오랜만이라 고작 다섯글자를 치는 데에도 오타가 세번이나 났다. 둘은 검색 결과에 나온 한참동안이나 조잡한 글과 사진과 지도를 보며 말을 붙였다. 그것이 아마도 덕개의 마지막 여행이였을 따름이었다.
 
 
 
 
 
.
 
 
 
 
 
수능이 끝났다.
 
 
라더는 가채점도 하지 않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켜 알람을 확인했다. 평소 연락 올 곳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오늘은 무언가 반드시 연락이 와 있을것만 같았다. 켜진 핸드폰에는 아니나다를까 부재중 전화가 열일곱통에 문자가 다섯통 와 있었다. 문자의 내용은 다섯통 모두 덕개가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라더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라더는 시험장을 나와 병원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발의 박자가 엇나가도 중요치 않다. 맥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한 것을 몇번이고 다시 지탱해 계속 달렸다. 내가 인생 살면서 이리 빠르게 뛰었던 적이 있었나. 아, 제발, 제발, 제발... 하나님 부처님 아버지 제가 빌잖아요. 그러니 한번, 딱 한번만. 이때까지 소원같은거 한번도 들어준 적 없으니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네?
 
 
마지막은 제가 지켜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더는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다. 덕개의 심박수는 떨어져가고 있었다. 덕개는 숨을 내몰아쉬며 우는 라더를 보고 옅게 웃으며 그에게 작은 유에스비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숨을 뱉어 말을 전했다. 형, 우리 다음에는 꼭 진짜 여행 가자? 하고 십초나 흘렀을까, 심박수가 멈추었다.
 
 
라더는 덕개가 죽은지 꼬박 삼일이 지나서야 유에스비를 노트북에 꽂았다. 안에는 덕개가 하얀 병실에서 찍은 영상 하나와 전에 들었던 클래식 노래가 담겨 있었다.
 
 
라더는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어, 어...안녕.
 
 
갑자기 영상편지 같으거 찍으려니까 어색한데... 편지보다는 이게 낫잖아. 그래도 혹시나 형이 없을 때 내가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물론 형이 이걸 안 본다면 제일 좋겠지만, 아니. 형이 이걸 안 봤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계속 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 이제 막 일어나서 이거 찍고 있어. 형 지금 수능 치고 있을텐데 최저만 맞추면 된다지만 그래도 잘 쳤으면 좋겠고... 아, 이미 볼 때 쯤이면 다 치고 왔으려나. 뭐 어쨌든.
 
 
형이랑 가고싶은 곳도 되게 많았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되게 많았는데 못해서 아쉽다. 아이슬란드는 꼭 형이랑 가고 싶었는데.
 
 
어... 형 맨날 전기포트에 라면 물 올려놓고 핸드폰 하느라 까먹지 말고, 물 식으면 또 끓여야 하잖아. 그리고 형 공부한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러다 몸 상해서 나처럼 될라. 이건 극단적인가? 그냥 그만큼 힘들게 하지는 마라는 뜻이야. 또, 아무리 수능 끝났다지만 학교도 꼬박꼬박 나가. 요새 나 병간해주느라 학교에서도 자기만 하고 급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며. 얼마전에 수현 형이 와서 다 말해주고 갔으니까 시치미 떼지 말고. 맞다, 형 그때 기억나? 우리 올 여름에 학교에 있다가 갑자기 비와서 비 맞으면서 뛰어갔던거. 그때 형이 하나, 둘에 먼저 나갔었잖아. 일초 먼저 나가서 도망가다가 형 넘어지고 나도 넘어져서 둘다 쫄딱 젖었어서 진짜 웃겼는데.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음... 이건 영상편지로 해도 오글거리긴 한데 마지막이니까.
 
 
형 없었으면 병원 생활 힘들어서 뛰쳐나왔을지도 몰라. 눈 뜨면 하연 병실에, 하얀 침대에.. 그래도 형이 계속 와서 공원도 같이 가고, 노래도 듣고, 노트북으로 여행도 가고 해서 좋았어. 나 아직도 공원 갔을때 사준 풍선 가지고 있다. 이거 보여?
 
 
어, 그리고, 그리고...
 
 
나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마. 영화보면 이런 말 자주 나오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고. 형은 이제 이십대니까 팔팔한 청춘이잖아. 죽어버린 나한테 형 청춘 쏟지 마. 그거 진짜 낭비니까. 알겠지? 형이 내 얼굴 다 까먹고 목소리도 가물가물해질때, 그러니까 한 백년 뒤에 오면 내가 여권이랑 짐 챙겨서 아이슬란드로 여행 갈 준비 미리 다 해둘테니까 그때 꼭 가자.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게.
 
 
아, 나 진짜 바보인가봐. 궁상맞게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 오늘 안 죽을건데, 진짜 혹시 몰라서 찍는건데. 아무튼 이제 꺼야겠다. 그동안 진짜 고마웠어. 안녕."

 
 
 
라더는 영상이 끝나고 나서도 노트북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

Written by. 287
Drawn by. 문제집